34㎝ 더 큰 피아노의 비밀…열음의 가을, 소리가 달랐다
6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 위 피아노가 유독 커 보였다. 건반부터 뒤쪽 끝까지 3m8㎝나 되는 이탈리아 파지올리 F308 피아노였다. 이번 공연을 위해 지난 3일 국내에 들여왔다. 이날 피아니스트 손열음 독주회에서 이 거대한 피아노의 소리는 강력했다. 전 음역대 소리가 공연장 구석까지 골고루 전달됐다. 손열음은 베토벤부터 얼 와일드까지, 피아니스트를 겸했던 작곡가 작품을 연주했다. 피아노로 낼 수 있는 다양한 소리와 음악적 구절이 들어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공연의 라이브 녹음을 맡은 톤마이스터 최진은 “가로 폭이 넓은 예술의전당 객석을 꽉 채우는 파워풀한 사운드의 악기였다”고 평했다.
이 무대에서 보통 연주되는 피아노는 독일 스타인웨이앤선스의 모델번호 D274다. 스타인웨이 중 가장 큰 콘서트 모델(2m74㎝)로, 예술의전당에 10대가 있다. 손열음이 이날 연주한 파지올리 F308은 현재 콘서트 그랜드 피아노 중 가장 큰 모델로, 페달도 일반 피아노보다 1개 더 많은 4개다. 안정적이고 음색도 고른 ‘피아노의 벤츠’ 스타인웨이 대신, 손열음은 왜 이 거대한 악기를 빌려서까지 무대 위에 올렸을까. 그는 공연 당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피아노를 고르는 기준을 이야기했다.
지난해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 손열음은 예술의전당 무대에서 오스트리아 뵈젠도르퍼를 선택했다. “피아노 브랜드마다 소리의 결이 다르다”고 운을 뗀 그는 “스타인웨이가 ‘강철 51·나무 49’의 소리라면, 뵈젠도르퍼는 ‘나무 51·강철 49’로 느껴진다. 모차르트는 사람의 목소리로 노래하는 걸 연상할 때가 많았기 때문에 뵈젠도르퍼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파리에서 라벨의 독주곡을 녹음했는데, 작곡가의 시대에 만들어진 플레이엘 피아노로 녹음했다. 지난 8월에는 폴란드에서 시게루 가와이를 연주했다. 몇 년 전에는 독일에 몇 개 안 남은 수작업 피아노 슈타인그래버를 말로만 듣다가 처음 연주했다”고 덧붙였다.
이번에 고른 파지올리 F308는 ‘소리의 대비가 분명한 악기’라는 기준에 맞았다. 그는 “이번 공연은 소곡집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다양한 음량의, 범위가 넓고 민첩한 피아노를 원했다”고 말했다. 같은 악기를 10여년 전 연주해봤다고 했다. 이날 연주한 파지올리에 대해 그는 “큰 소리뿐 아니라 작은 소리까지도 잘 표현해주는 재빠른 악기였다”고 평했다.
피아니스트에게는 ‘피아노의 딜레마’가 있다. 자신의 악기를 갖고 다닐 수 없다. 하지만 잘 관리된 좋은 악기가 있다면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도 있다. 연주하려는 음악에 잘 맞는 악기를 찾아내기도 한다.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는 스타인웨이를 선택한다. 임윤찬은 지난 6월 독주회 때 예술의전당 피아노 중 일련번호가 115로 끝나는 피아노를 선택했다. 조성진도 지난 5월 도쿄 필 협연 때 같은 피아노로 연주했다. 예술의전당 측은 “2013년 도입한 스타인웨이인데, 소리가 밝다는 이유로 가장 많이 선택된다”고 설명했다.
몇몇 피아니스트는 스타인웨이 일색에서 벗어나 자신의 색을 찾아낸다. 지난달 20일 포르투갈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는 예술의전당에서 파지올리 F278로 독주회를 열었다. 피레스가 연주한 악기는 피아니스트 브루스 리우가 2021년 쇼팽 국제콩쿠르에서 연주해 우승했던 피아노였다. 안드라스 쉬프는 2022년과 지난해 예술의전당 공연에서 뵈젠도르퍼를 선택했다. 전용 피아노와 조율사까지 대동하는 크리스티안 짐머만 같은 피아니스트도 있다. 손열음은 “사실 공연용 피아노는 평상시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며 “악기의 성격과 색채보다는 관리의 세심함과 조율의 역량이 더 중요한 척도가 되곤 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 공연장 피아노 중에선 스타인웨이 점유율이 높다. 한국은 유독 더 그렇다. 예술의전당에 스타인웨이가 아닌 피아노는 야마하 1대뿐이다. 롯데콘서트홀에는 스타인웨이만 4대다. 마리아 조앙 피레스의 쇼케이스를 열었던 풍월당 박종호 대표는 “공연장 피아노 브랜드도 다양해질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손열음도 “유럽의 경우 다양한 피아노를 여기저기서 만날 수 있어 피아니스트들도 호기심을 키워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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