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운 실리콘투 대표 조선미녀 키운 K뷰티 선봉장 [CEO LOUNGE]
이들 사이 공통점이 보인다. 한 업체를 통해 해외 진출 성공 스토리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실리콘투 얘기다. 실리콘투는 국내 화장품의 해외 진출을 돕는 글로벌 벤더(중간상인) 회사다. 브랜드만 있으면 해외 물류, 현지 마케팅, 온오프라인 유통망 구축 등은 알아서 해준다. ‘그게 될까?’ 싶은데 지난 3년 새 메가 브랜드(매출 1000억원)가 된 인디 브랜드 대부분이 이 회사를 거쳤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너도나도 실리콘투와 손잡으려 ‘문전성시’다.
이는 고스란히 호실적으로 이어졌다. 2019년만 해도 매출액은 649억원 정도. 그러던 것이 2021년 1310억원을 기록, 처음으로 천억클럽에 가입했다. 이후 성장세는 더 무섭다. 지난해 매출액은 단숨에 3429억원으로 급증했다. 증권가는 올해 실적은 여기서 또 2배 이상, 3년 내 매출액 1조원 돌파도 무난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는다. 당연히 주가도 뜨겁다. 지난해 10월만 해도 7000원대였던 주가가 올해 10월 4만원대에서 움직이고 있다. 1년 만에 5배 이상 급등했다.
창업자는 김성운 대표(52).
회사 이름에서 미뤄 짐작할 수 있겠지만 2002년 당시만 해도 반도체 무역이 주력이었다. 한국에서 생산된 메모리반도체를 들고 MP3, 전자사전 등을 제조하는 외국 가전기기 업체에 내다 파는 사업이었다. 그런데 아이폰이 등장하면서 분위기가 180도 급변했다.
판로가 막히면서 김 대표는 새 아이템을 개척해야 했다. 2010년대 초반 여러 아이템을 테스트해보다 마케팅 효율이 잘 나오는 업종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K뷰티다. 한국 중소기업 화장품을 떼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종전 거래선 혹은 신규 거래처에 소개했는데 반응이 즉각 왔다.
김 대표는 이런 트렌드에 편승해 국내 중소 화장품 회사를 찾아다니면서 해외 진출 대행을 맡겨보라고 설득했다. 다만 원칙이 있었다.
“반도체 수출을 하면서 자연스레 몸에 밴 사업 철칙이 ‘무자료 거래는 하지 말자’ ‘단순 수출대행에서 그치지 말고 현지 마케팅까지 도와주자’ ‘오프라인보다 온라인 판매에 적합한 시스템을 갖춰놓자’였습니다.”
이런 전략이 처음에는 잘 먹히지 않았다. 한창 중국에서 K뷰티 붐이 불 때 현금 싸들고 한국 마스크팩을 사 가겠다는 중국 상인 때문에 적잖은 계약을 눈앞에서 놓친 적도 부지기수다. 하지만 우직하게 신용장 개설, 세금계산서 발행 등 투명한 회계 정책을 고수했다. 여기에 호응한 K뷰티 업체가 하나둘 늘어나면서 2010년대 중반부터 느리지만 의미 있는 성장을 일궈내기 시작했다.
中 대신 美 시장 개척 ‘실적 반등’
대신 실리콘투는 격전지인 중국 외 시장에 일찌감치 눈을 돌렸다. 원래 반도체 수출대행을 할 때도 미국 시장이 더 편했던 터였다. 현지 창고를 마련하고 마케팅 전략도 큰돈이 드는 언론 홍보, 광고 대신 당시 뜨고 있는 인스타그램, 틱톡 등 소셜미디어(SNS)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대체했다.
현지 인플루언서 심층 인터뷰를 통해 시장조사를 해보니 이들의 잠재 욕구는 ‘늘 새로운 브랜드, 제품을 소개해야 트렌드세터(유행을 이끄는 사람)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이 깔려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이들에게 생소한 다양한 K뷰티 제품을 소개했다. 특히 미국 소비자는 외출할 때 색조 화장에서는 강점을 보였지만 평소 피부관리에 도움이 되는 기초·선블록 등에는 지갑을 열지 않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19가 터졌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모바일 콘텐츠를 보는 현지인이 급증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외출을 못하는 동안 오히려 피부관리에 눈을 뜨는 ‘홈뷰티족’이 크게 늘어났다. 이런 때 K뷰티 사용 영상 후기를 남기는 인플루언서가 대거 등장하면서 K뷰티 붐의 서막이 열렸다. 조선미녀, 코스알엑스, 달바 등이 순식간에 급성장한 배경이다. 물론 이들 뒤에는 한결같이 실리콘투가 자리했다.
증권가는 실리콘투 성장세가 ‘이제 시작’이라고 평가한다. 미국 외 지역 성장세도 만만찮아서다. 특히 유럽, 중동 등 신규 시장 진출에 높은 점수를 주는 보고서가 많다. 참고로 실리콘투는 올해 6월 싱가포르와 영국 법인을 설립하는 등 해외 지사를 계속 늘려나가고 있다.
김성운 대표 역시 같은 판단이다.
“미국은 아마존이 사실상 온라인 독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그러다 보니 K뷰티 브랜드 간 출혈 경쟁이 벌써부터 일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미국 시장에서는 온라인보다 지금은 오프라인 시장 개척에 좀 더 공을 들이고 있고요. 반면 하나의 온오프라인 플랫폼이 독점하지 못하고 있는 유럽, 일본, 중동 시장 등은 오히려 기회입니다. 최근 유럽 한 뷰티스토어에 갔는데 10~20유로대 선블록 제품 매대에 여전히 K뷰티 제품은 찾아볼 수 없었어요. 역으로 틈새시장 개척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말입니다. 중동에도 실제 가보면 K뷰티 브랜드 존재감이 아직 미미합니다. 미국 시장 개척했던 노하우를 여기서 좀 더 세밀하고 다양하게 업그레이드시켜보니 훨씬 현지 반응이 좋아요. 당분간 신흥 시장 개척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물론 실리콘투도 마냥 꽃길만 걷는 건 아니다. 사입(직접 구매) 후 해외 시장에 뿌리는 전략을 쓰고 있는데 유통 과정에서 일부 제품은 재고가 쌓여 주가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일부 브랜드의 ‘가격 후려치기’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비슷한 기초 화장품을 내놓고 아마존이나 여타 글로벌 온라인 플랫폼에서 비슷한 광고 키워드 마케팅을 전개하면서 ‘밀어내기’를 시작한 업체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김 대표는 “브랜드 경쟁력 없이 ‘미투(베끼기)’ 제품이 계속 나오면 업계가 공멸할 수 있다”며 “중국 화장품 특수가 한 번에 사그라든 것도 외교 문제 외에 업계 간 출혈 경쟁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K뷰티는 5년 이상 계속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다.
“K뷰티는 계속 진화할 겁니다. K뷰티를 대체할 문화적 배경을 갖춘 나라가 당장은 없고요. 세계적인 생산 인프라를 구축한 곳도 한국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해외 유통 채널을 개척하면서 성장하는 K뷰티 시장 한 축을 실리콘투가 담당하고 있다는 인식을 계속 심어주고 싶습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9호 (2024.10.09~2024.10.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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