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기사 경고에도 화재경보기 껐다…7명 숨진 부천 호텔 화재 '인재'
투숙객 7명이 숨진 경기 부천 호텔 화재가 소유주와 직원 등이 안전 관리와 초동 대처를 제대로 하지 않아 벌어진 전형적인 인재(人災)로 드러났다. 호텔 직원이 화재경보기를 임의로 껐다가 2분가량 뒤에 다시 켜 투숙객들의 대피 골든타임을 놓친 탓에 피해가 컸다.
8일 경기남부경찰청 소속 부천 호텔 화재 사고 수사본부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건물 소유주 A씨(66) 등 4명의 사전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들 중에는 호텔 운영자 B씨(42), A씨의 딸인 C씨(45), 호텔 매니저 D씨(36)도 포함됐다.
A씨 등은 지난 8월22일 오후 7시37분께 부천시 원미구 중동 호텔에서 안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발생한 객실 화재로 투숙객 7명을 숨지게 하고 12명을 다치게 한 혐의 등을 받는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 결과 등을 토대로 7층 810호 객실에 설치된 벽걸이형 에어컨에서 처음 불이 시작한 것으로 판단했다.
국과수는 에어컨과 실외기를 연결하는 전선에서 '아산화동 증식'이 식별됐다며 전기적 발열이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경찰에 밝혔다. 아산화동 증식은 저항이 커져서 접촉부가 산화해 발열하는 현상이다.
2004년 준공된 이 호텔을 2017년 5월 인수한 A씨는 1년 뒤 모든 객실의 에어컨을 교체하는 과정에서 영업 지장 등을 우려해 전체 배선을 바꾸지 않고 기존 전선을 계속 쓴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에어컨 설치 업자는 전선의 길이가 짧아 작업이 어려워지자 기존 전선에 새로운 전선을 연결하고도 절연 테이프만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기설비기술기준에 따르면 에어컨 전선은 통선(하나의 전선) 사용이 원칙이며 불가피하게 두 전선을 연결할 경우 습기나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각종 안전 조치를 해야 한다.
이후 호텔 관계자들은 에어컨 정비 기사로부터 전선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조언을 듣고도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에어컨 정비 기사는 '2018년 말부터 2020년까지 여러 차례 '올해도 배선 상태가 엉망'이라고 호텔 측에 얘기했다고 한다"며 "총 63개 객실 가운데 15개 객실은 맨눈으로 볼 때도 20년 된 전선의 상태가 부실해 보였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번 화재에서 큰 인명 피해가 발생한 이유로 처음 불이 난 810호 객실 현관문에 '도어 클로저'(자동 닫힘 장치)가 설치돼 있지 않은 사실을 가장 먼저 꼽았다. 이 호텔 객실 문은 상대적으로 방화 성능이 좋은 '갑종 방화문'으로 설치돼 있었지만, 도어 클로저가 없어 불이 난 810호의 객실 문은 화재 당시 활짝 열려 있었고 연기가 복도와 위층으로 급속히 퍼졌다.
또 호텔 측이 환기를 이유로 7∼8층 복도의 비상구 방화문을 '생수병 묶음'으로 고정해 열어둔 상황도 피해를 키웠다.
김종민 경기남부경찰청 광역수사단장은 "현재 관련 법상 방화문이 닫혀 있어야 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 도어 클로저 설치와 관련한 내용은 없다"며 "이번 화재를 계기로 스프링클러가 설치돼 있지 않은 호텔은 도어 클로저 설치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관계부처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화재 당시 경보기가 울리자 호텔 매니저 D씨가 일부러 기계 작동을 멈춘 사실도 수사 결과 드러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에 올라간 그는 화재를 확인하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와 화재경보기를 다시 켰지만 이미 골든타임인 2분 24초가 지난 뒤였다.
경찰은 사망자 7명 가운데 7∼8층 투숙객 5명은 화재경보기가 꺼지지 않았다면 살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D씨는 경찰 조사에서 "예전에 화재경보기가 잘못 울려 투숙객들의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며 "비상벨이 울리면 일단 끄고 실제 화재인지 확인 후 다시 켜는 것으로 내부 방침이 정해져 있었다"고 주장했다.
모든 객실에 있어야 하는 간이완강기도 63개 객실 가운데 절반가량인 31개 객실에는 없었고, 9개 객실의 완강기 로프 길이는 각 층 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등 피난 기구 관리도 소홀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또 호텔 운영자이자 소방 안전관리자인 B씨는 관련 교육을 받지 않았으며 소방 계획서 역시 부실하게 작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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