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이재명 결단만 남았다" 또 대표 입만 바라보는 거대야당 [현장에서]

성지원 2024. 10. 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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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재명의 결단만 남았다.”

〈YONHAP PHOTO-3272〉 심각 (서울=연합뉴스) 신준희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굳은 표정을 하고 있다. 2024.9.27 hama@yna.co.kr/2024-09-27 10:14:32/ 〈저작권자 ⓒ 1980-202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더불어민주당이 4일 의원총회에서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 유예 여부 결정을 지도부에 위임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당 핵심관계자가 한 말이다. 이 관계자는 “지도부 개개인의 생각도 이미 다 들었다. 이제 더 의견을 청취하거나 할 문제가 아니다. 남은 건 대표의 의사”라고 덧붙였다.

당시 의총에선 격론이 오갔지만, 금투세 시행 유예 혹은 폐지론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의원들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지도부에서도 “윤석열 대통령이 (유예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해 예정대로 시행하게 되면 혼란스러운 상황이 닥치고 민주당만 더 욕을 먹고 끌려다니게 된다”(김민석 최고위원)는 ‘사실상 폐지론’이 우세하다고 한다. 한 최고위원은 “4년이 걸릴지 5년이 걸릴지 모르겠지만, 주식시장 개선에 올인(All-in)하고, 그 이후 적정한 시기에 시행하는 게 맞다는 게 대체적인 흐름“이라고 전했다.

그런데도 이 대표는 결단 대신 장고에 들어간 듯하다. 의총 이후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별도의 지도부 회의는 없었다고 한다. 7일 최고위원회의 직후 황정아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금투세 결론이) 언제 나올지 모르겠다. 마감시한이 결정된 바 없다”고 말했다. 이날 주식 투자자 온라인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엔 “도대체 몇 달을 끄는 거냐. 시간 끌기가 이재명 특기냐”는 글이 여러 건 올라왔다.

애초 내년 1월 금투세 시행은 여야가 합의한 사안이다. 법에 손을 안 대면 그대로 시행되는데, 주식시장이 침체하자 '유예냐 폐지냐 시행이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우여곡절 끝에 결과적으로 민주당이 결정 책임을 떠안은 모양새다. 이 대표로선 억울할 법하다.

그러나 금투세 논쟁을 촉발한 건 이 대표 본인이다. 이 대표는 7월 전당대회 때 “금투세 시행 시기를 고민해 봐야 한다”고 군불을 땠다. 이후 “공제 한도를 5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올린 뒤 시행하자”, “자본시장 구조 개혁이 수반돼야 한다”는 식으로 입장이 오락가락했다. 이 대표의 한 측근에게 “원래 대표는 ‘보완 후 시행’을 주장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게 유예와 같은 말”이라는 답변이 돌아오기도 했다.

이런 틈새를 여당이 노렸다. 국민의힘은 일찌감치 폐지 입장을 정하고 “금투세는 ‘이재명세’”라는 프레임을 짰다. 지난달 24일 민주당 금투세 토론회에서 나온 “인버스(하락장에 투자하는 파생상품) 투자” 실언은 투자자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민주당이 금투세 결정을 지도부에 위임하기로 한 데 대해 6일 “그게 뭔가. 계속 못난 모습을 보이고 있다”라고 비꼬았다. 여당뿐 아니라 야당 중진도 “지도부가 실기했다”고 자평했다. 결국 석 달 혼란 끝 1400만 투자자가 이 대표 입만 바라보는 상황이다.

〈YONHAP PHOTO-3135〉 5·18 묘지서 기자회견하는 이재명 대표 (광주=연합뉴스) 천정인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5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4.2.5 iny@yna.co.kr/2024-02-05 10:10:05/ 〈저작권자 ⓒ 1980-2024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는 22대 총선을 두 달 앞두고 벌어진 ‘선거법 논쟁’과 닮았다. 민주당 주도로 도입했던 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 여부를 놓고 이 대표는 지난해 11월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며 병립형 비례대표제 회귀를 시사했다. 연동형으로 가자니 또다시 위성정당을 만들 명분은 없고, 위성정당을 안 만들자니 선거에서 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었다. 그러나 진보진영에서 “선거법을 후퇴시키면 안 된다”는 논란이 커지자 이 대표는 입을 닫았다. 당 최고위는 “이 대표에게 선거제 관련 포괄적 권한을 위임하겠다”고 결정했다.

이 대표는 2월 5일 광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연동형 유지’를 깜짝 발표했다. 이 대표는 당시 “(여당이) 칼 들고 덤비는데 맨주먹으로 상대할 수는 없다”며 연동형을 유지하고, 위성정당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같이 칼을 들 수는 없지만 방패라도 들어야 하는 이 불가피함을 조금이나마 이해해달라”고 했지만, 당에서도 “결국 연동형을 유지할 거면 뭐하러 3개월 넘는 논쟁으로 상처만 키웠느냐”는 불만이 제기됐다.

이때처럼 금투세 논쟁도 결국 이 대표의 입만 쳐다보게 됐다. 수권정당이라는 민주당의 비민주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셈이다. 민주당 한 중진은 ”속이 부글부글한다“고 말했다. 혹시나 ‘역할극’이었다 해도, 관객도 배우도 별로 얻어간 게 없는 듯하다.

성지원 기자 sung.ji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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