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렬 반대 뚫고 구치소 완공했더니 주변 아파트 인기 폭발 [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강주안 2024. 10. 8.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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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상 짓고 보니 장점 더 많은 교정시설〉


강주안 논설위원
10년 전인 2014년 10월 경남 거창군에선 초등학생들이 등교를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정부가 거창에 구치소를 설립하기로 하자 “학교 앞 교도소를 절대 반대한다”며 일부 주민이 강력히 반발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10월 18일 거창구치소가 문을 열었다. 등교 거부 시위 후 10년이 흐른 지금 거창은 어떤 상황일까.

「 초등생까지 등교 거부하며 반발했던 거창구치소 신설

주민투표로 1년 전 문 열자 도로 확장에 상권 활성화
거창 주민 10명 정규직 공무원 채용…추가 유치 기대
최첨단 건물 이전한 대구교도소 주변 상인 “매출 늘어”

지난달 23일 오후 3시쯤 거창구치소를 찾아갔다. 영화에서 본 우중충한 건물이 아니라 대학이나 연구단지 같은 모습이다. 교도관 안내를 받아 재소자들이 사는 수용동에 들어섰다. 겹겹의 철문과 철저한 보안은 비슷하지만, 재소자들이 생활하는 모습은 서울구치소나 안양교도소같이 낡은 교정시설과 판이하다.
저녁 시간에 자유롭게 모여 바둑을 두거나 책을 읽는 게 가능하다. 방에서 작은 상을 놓고 밥을 먹는 여느 교정시설과 달리 이곳 수용자들은 식당에서 식사한다. “정원을 초과한 방에 갇혀있는 게 가장 큰 고통”이라는 게 교도소를 다녀온 전직 고위 관료의 얘기다. 밥이든, 자유 시간이든 방에서 나갈 수만 있다면 큰 혜택이다.


구치소 안팎 모두 평온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지 않는데도 별 사고가 없다. 구치소 주변도 평온해 불과 몇 년 전까지 반발이 극심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는다.
구인모 거창군수가 2019년 10월 던진 주민투표 승부수가 반전을 불렀다. 주민 52.8%가 투표에 참여해 64.7%가 찬성표를 던졌다. 침묵하는 찬성자가 많았다는 얘기다.
이도곤 거창구치소장(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달 23일 오후 수용자 도서실에서 지난해 거창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지채용에 합격해 교정 공무원이 된 이석형·조혜란·김민경 교도(왼쪽부터)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법무부]
주민들의 혜택이 가시화했다. 거창에 5년 이상 거주한 사람만 응시자격을 주는 교정직 공무원 ‘한지(限地) 채용’으로 남녀 5명씩 10명을 뽑았다. 남자 경쟁률이 40.4대 1에 이를 정도였다.
경기도 수원에서 대기업 강사를 하다 고향으로 돌아온 이석형 교도는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 본 수용자 재사회화 업무가 매력적이어서 지원했다”고 말했다.
방호원과 조리원 등 공무직 근로자도 11명 채용됐다.
월평균 400여명의 면회객이 음식점과 시장, 숙박업소를 들른다. 돼지고깃집 ‘흑돈’을 운영하는 강형섭(57)씨는 “구치소 직원 등 손님이 많아졌다”며 “거창에선 지난해 개청식에 온 한동훈 당시 법무부 장관이 구치소 자리에 살던 한센인을 따뜻하게 대해준 걸 아직도 얘기한다”고 말했다.
주민들 사이에선 구치소 건립에 반발했던 사람 중 상당수가 구치소 앞에 들어선 더샵 아파트로 이사 왔다는 얘기가 회자한다. 구치소를 반대했던 주민 생각은 어떨까.

반대했던 교사 "찬성 얘기가 맞는 듯"


지난달 24일 오전 7시 30분쯤 거창 종합시장 부근에서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을 하던 전직 교사 오 모(58) 씨는 “아이들이 등교하지 않아 텅 빈 교실을 보면서 구치소 설립에 반대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인구소멸이 걱정인 상황인데 한 모임에 가보니 구치소 직원 가족이 새로 나왔더라”며 “찬성론자와 반대론자가 했던 주장을 기억하는데, 찬성 의견이 일리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18일 개청한 거창구치소 전경. 영화에서 보던 음침한 이미지와 달리 첨단 보안 시스템을 갖춘 현대식 건물이다. 이 구치소 인근 신축 아파트는 입주 경쟁이 치열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 [사진 법무부]
거창주민으로 신규 채용된 조혜란 교도는 “직접 근무하면서 보니 안전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했다. 역시 한지채용된 전종효 교도는 “어머니도 예전엔 걱정하셨는데 요즘엔 ‘다른 시설 더 안 들어오냐’며 기대하신다”고 설명했다.
이도곤 거창구치소장은 “스마트 보안시스템을 구축해 안전 염려는 안 하셔도 된다”며 “우리는 수형자가 출소 후 사회의 일원으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교도소 과밀은 심각하다. 8일 법무부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전국 교정시설의 수용률이 지난해 118.4%까지 올라갔고 서울구치소는 152.9%에 이르는 점을 지적했다.
헌법재판소는 2016년 과밀수용에 대해 위헌 결정을 했다. 법원에서도 과밀 수용을 당한 재소자에게 국가가 배상하라는 판결을 계속 내리고 있다. 법무부 교정기획과 최효진 교감은 “과밀을 해소하려면 교정 시설을 새로 지어야 한다”고 말한다. 주민 반대가 걸림돌이다. 1963년 지어진 안양교도소는 증·개축을 못해 흉물로 남아있다.
인권위원회가 지적한 교정시설 과밀 수용 실태.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하고 법원이 계속 국가배상 판결을 내리고 있어도 과밀 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공간이 비좁아 수용자들이 가로 세로로 교차해 자야 한다. 그림에서 보면 4명의 발냄새를 맡으며 자야하는 수용자도 있다. [거창구치소 개청백서]
이에 비하면 지난해 11월 대구 달성군 하빈면으로 이전한 대구교도소는 다행스럽다. 지난달 24일 오전 9시 30분쯤 교도소를 방문했다. 각종 첨단 보안장치가 눈에 띈다. 수용동에 들어가려면 신분증뿐 아니라 얼굴 인증도 해야 한다.
이곳에도 자치수용동이 마련됐다. 모범적인 S1 수형자는 거창구치소처럼 저녁에 방에서 나와 넓은 공간에서 지낼 수 있다. 옆에는 다음 등급인 S2 수형자의 완화수용동이 있다. 등급이 낮은 S3, S4 수형자에게 태도 개선의 동기를 부여한다. 낮은 등급은 상향을 위해, 높은 등급은 하향을 피하려 조심한다.

새 건물서 사고 준 대구교도소


1971년 지은 화원읍 소재 옛 대구교도소 시절과 폭력 건수를 비교하면 올해 6~8월 평균 수용인원(2570명)이 지난해(2216명)보다 늘었는데 징벌자는 218명에서 188명으로 줄었다. 교도소 측 양해를 구하고 모범 재소자와 잠시 대화했다. S1을 뜻하는 1자가 가슴에 적혀 있다.
-새로 지은 교도소 환경이 작년까지 있던 옛 교도소와 차이가 큰가.
“그렇다. 예전엔 쪼그려 앉는 변기였고 공간이 좁아 덩치 큰 사람은 씻기도 어려웠는데, 여기엔 좌변기가 있어 편하다.”
-시설 개선이 교화에 도움이 되나.
“우리도 규칙과 규율이 있다. 혼거실에 사람이 많아지면 다툼이 생긴다. 독거실이 많아져서 좋다. 반성에 도움이 된다.”
-형기가 많이 남았나.
“….”
-언제 출소하나.
“무기수다.”
-몇 년 복역했나.
“24년 됐다.”
40대인 그는 20대 때 저지른 죄를 뉘우치며 지낸다고 했다. 한 교도관은 “가장 모범적인 수형자”라고 귀띔했다.
주민이 교정시설을 기피하는 주요 이유는 탈주 등에 대한 염려다. 외벽 지하에도 콘크리트를 타설해 여기선 땅을 파는 탈출도 불가능해 보인다.
수용자가 2000명이 넘고 600여명의 제복 공무원이 근무하는 대구교도소는 유사 시 신속한 출동을 위해 기동순찰팀(CRPT)에게 신형 이동 장비를 지급했다. 긴 복도의 끝에서 끝까지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다. [사진 법무부]
한태환 대구교도소장은 “제복 공무원 600여명이 24시간 교대로 상주하니 치안이 좋아진다”며 “최근 연구결과를 보면 교정시설이 들어선 지역이 인프라 개선 등으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다”고 설명한다.

무도실무관 못지않은 교도관


얼마 전 윤석열 대통령이 출소한 흉악범을 감시하는 공무원의 활약을 그린 영화 ‘무도실무관’을 추천해 화제가 됐다. 그런데 이런 흉악범을 형기 내내 24시간 감시하는 사람이 교도관이다. 보안시설 안에서 벌어져 안 보일 뿐이다. 교정시설 하나가 생기면 제복 공무원인 교도관 수백 명이 출퇴근길과 식당·카페에서 시민 곁에 머문다. 대구교도소에만 태권도 4단, 유도 4단, 주짓수 지역대회 수상자 등이 기동순찰팀(CRPT) 요원으로 근무한다.
태권도 3단인 거창구치소 CRPT 김종덕 교도는 “아직 거창 주민이 범죄 피해를 보는 현장을 본 적은 없지만, 그런 상황이 생기면 경찰 대처 등에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구교도소 한태환 소장(오른쪽)과 최창호 부소장이 부설 어린이집 화장실을 점검하고 있다. 대구교도소는 좋은 시설을 갖춘 이 어린이집을 대구 시민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고령화 추세 때문인지 지원자가 모자라 운영을 시작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 법무부]
대구교도소 2㎞ 거리에서 진주식당을 운영하는 권성명(55)씨는 “준공 전까진 동네 어른들이 반대했지만, 교도소를 참관한 뒤엔 평온해졌다”며 “확실히 매출은 늘었고, 밤에 산책하다 보면 교도소가 야경 하나는 끝내준다”고 말했다.
거창구치소 앞엔 보호관찰소와 검찰·법원 청사가 추가로 들어설 예정이다. 신용해 법무부 교정본부장은 “선진국에선 구치소와 법원·검찰청을 같은 공간에 둔 ‘저스티스 콤플렉스’를 조성하는 추세”라고 설명한다.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은 “교도소를 방문하고 범죄 통계를 분석하면 억압과 분노를 해소할수록 재범률이 떨어지는 게 명백하다”며 “과밀을 해결하기 위해 교정 시설 유치 지역에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고 밝혔다.
법무부 교정기획과 최정필 교정관은 “교도소 신설 지역 지원 방안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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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이 소멸해 가는데 님비 따질 때인가"

구인모 거창군수는 초등생 등교 거부 시위까지 벌어졌던 거창구치소 문제 해결을 위해 주민투표를 선택했다. 구치소 유치로 지역에 많은 혜택이 생기자 또다른 기피시설인 화장장 신설도 추진했다. 그 결과 9곳이 신청하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사진 거창군청]

구인모 거창군수(사진)는 “구치소 논란을 끝내려고 군수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했다”고 말했다. 진입도로 예산 353억원과 주민편의시설 25억원 등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구치소 계획에 반대가 극심했다.

“원래 한센인들의 축사가 있어 악취가 심했던 곳이다. 선거를 거치면서 갈등이 심해졌다.”

-정부 조율도 쉽지 않았을 텐데.

“검찰 간부 상가에서 김오수 당시 법무부 차관을 조우했다. 이렇게 대화를 시작해 신뢰가 쌓였다.”

-초등생 등교 거부까지 했었다.

“막상 들어서니 지역 건설업체와 사무 가구, 생활용품 업체 등이 혜택을 본다. 서울 남부구치소 등 교정시설 사례를 조사해봤다. 주변 지역이 오히려 더 안전하더라. 반대하던 분들도 구치소 인근 아파트 분양에 많이 참여했다.”

-구치소에 이어 화장장까지 선정했다.

“인센티브를 분명히 제시하자 무려 9곳에서 유치신청을 했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지난 5월 선정했다.”

-기피 시설을 반대하는 ‘님비’ 현상이 심각하다.

“구치소 직원과 가족이 이사 오면서 군민이 131명 늘었다. 지역 인구 증가는 어려워도 감소 폭을 줄여야 한다. 경남에서 거창이 그래도 가장 적게 줄었다. 지방 자체가 소멸해가는데 지금 님비를 따질 때인가.”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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