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나를 깨우는 자 누구인가?
마틴 스코세이지의 ‘더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는 조던 벨포트라는 주식 사기꾼의 흥망성쇠를 그린 영화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벨포트와 그의 동료들이 마약에 취해 흐느적거리는 장면이다. 이때 배경음악으로 남자가 낮은 음조로 더듬거리는 듯 부르는 노래가 나온다. 헨리 퍼셀의 세미 오페라 ‘아서 왕’에서 겨울신이 부르는 ‘나를 깨우는 자 누구냐?’다.
무대는 깊은 숲속. 아서 왕의 적수인 마법사 오스먼드는 아서 왕의 연인 에멀린에게 구애를 한다. 오스먼드는 마법을 부려 숲을 혹독한 겨울 나라, 얼음의 나라로 만들어 버린다. 바로 그때 사랑의 신 큐피드가 내려온다. 큐피드는 잠자고 있는 겨울 신을 깨운다. 큐피드의 거듭된 부름에 겨울 신이 마지못해 일어난다. 그는 자기를 깨우는 자가 누구냐고 투덜댄다.
“나를 깨우는 자가 누구냐? 영원한 눈을 침대 삼아 자고 있는 나를 마지못해 천천히 일어나게 만든 자가.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에 나는 너무 늙었어. 제발 나를 다시 얼음 속으로 돌아가게 해다오.”
눈 속에서 잠자고 있을 때는 편안했는데, 큐피드가 강제로 깨우는 바람에 혹독한 추위를 겪게 된 겨울 신은 잠이 덜 깬 목소리로 투덜거린다. 현악기가 각각 8분음표 네 개로 이루어진 화음의 시퀀스를 연주하는 동안, 겨울 신은 더듬더듬 말을 이어간다. 첫 음인 C음에서 시작해 한 시퀀스가 끝날 때마다 반음씩 올라간다. 그러다가 힘겨운 듯 다시 아래로 차례로 내려온다.
벨포트를 비롯한 월스트리트의 사기꾼들은 광란의 파티에서 마약에 취해 흐릿한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본다. 그 모습이 슬로모션으로 펼쳐진다. 그 장면에 겨울 신의 늙고 지친 투덜거림이 깔린다. 그들은 마약의 포근한 겨울잠에 취해 있다. 겨울 신처럼 그들 역시 잠에서 깨어나기를 원치 않는 것이다. 왜? 현실을 잊고 늘 황홀한 꿈속에서 살고 싶으니까.
진회숙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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