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 호재에도 신경전 벌이는 LIG넥스원과 한화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4. 10. 7.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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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말이 맞나…천궁 둘러싼 미묘한 갈등

약 3조7000억원 규모로 체결된 천궁-Ⅱ 이라크 수출 계약을 두고 방산 업계가 시끄럽다. 무기를 생산하는 두 업체 LIG넥스원과 한화가 무기의 납기 일정·납품 가격을 두고 신경전을 벌인다. 한화는 LIG넥스원이 상호 협의 없이 무리하게 계약을 진행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LIG넥스원 측은 계약을 앞두고 한화 측에 검토를 요청했지만, 제대로 응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두 업체 갈등이 첨예해지자, 주무 부처인 방위사업청이 중재까지 나섰다. 방산 업계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가 방위 산업이 겪는 성장통이라고 내다본다. 내수 중심 산업에서 수출 산업으로 영역이 커지면서 업체끼리 충돌이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천궁 -Ⅱ의 이라크 수출을 둘러싸고 주체계업체인 LIG넥스원과 부체계업체인 한화가 이견을 내놓는다. 납기일, 납품단가를 둘러싸고 상당한 갈등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사진은 천궁 -Ⅱ의 모습. (LIG넥스원 제공)
‘이라크 수주’ 둘러싸고 갈등 심화

LIG넥스원의 무리수? 한화의 몽니?

천궁-Ⅱ는 국내 기술로 개발한 지대공(지상에서 공중을 공격하는 무기) 유도무기다.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의 핵심 자산으로 꼽힌다. 미사일과 통합체계는 LIG넥스원, 레이더는 한화시스템, 발사대와 차량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각각 생산한다. LIG넥스원이 사업을 주도하는 주체계업체, 한화가 부체계업체로 역할을 도맡았다.

LIG넥스원과 한화는 ‘원팀’으로 수출 시장에서 쏠쏠한 활약을 해왔다. 함께 호흡을 맞춰 UAE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까지 수주 계약을 따냈다. 그러나 이번 이라크 계약에서 두 회사가 처음으로 ‘어긋난 행보’를 보였다.

내막은 이렇다. 9월 20일 LIG넥스원은 이라크와 천궁-Ⅱ 수출 계약을 맺었다고 공시했다. 3조7000억원 규모 대형 수주였다. 그런데 해당 계약 발표 이후 부체계업체인 한화시스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부터 강한 반발이 튀어나왔다. 한화와 협의 없이 LIG넥스원이 독단적으로 계약을 마무리 지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2개 이상 기업이 방산 수출에 뛰어들면 계약에 앞서 국내 기업끼리 납기 일정과 단가 등을 협의한다. 이후 주체계업체가 거래 상대국과 최종 계약을 맺는다. 이라크와 수출 계약을 맺기 전, 한화 측은 이라크 정부가 요구한 납기 일자가 지나치게 빠듯하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국군용으로 제작 중인 무기체계를 수출용으로 돌리는 방법 등 납기일을 맞추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선 참이었다. 대응책을 마련하기도 전에 수출 계약이 확정되자 한화 측은 크게 당황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한화 직원 사이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 물량도 빠듯한데 이라크 물량까지 감당이 가능한가’ ‘공장 증설 없이 생산량을 늘릴 수 있나’와 같은 반응이 쏟아졌다. 방산 업계 관계자는 “한화 내부에서는 이라크가 빠른 납기를 원해 ‘큰손’이자, 먼저 천궁을 주문한 사우디 정부가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지 않을까라는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또 납기 시기 외에도 납품 단가를 두고도 양측에 갈등이 상당했다. 현재는 LIG가 다소 성급했다고 보는 게 현장 의견”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LIG넥스원은 무리수 계약이라고 보기 힘들다고 주장한다. 계약 전 한화와 충분히 협의를 진행했다는 입장이다. 이현수 LIG넥스원 해외사업부문장은 “이라크와의 협상은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에 비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며 “지난 3월 말 이라크 국방부 장관이 방한한 이후 이라크 사정상 긴급한 사업 진행이 필요하다고 언급해 불과 6개월 만에 계약이 체결됐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이라크 측 요청으로 체계종합업체로서 많은 협상을 했었고 매번 협상 전후로 (한화 측과) 협의를 계속해왔다”고 덧붙였다. LIG넥스원 측은 적기에 한화로부터 회신이 오지 않아, 이라크와의 계약을 먼저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LIG넥스원 관계자는 “다른 국가와 달리 이라크 수출은 기술이전이나 현지생산이 포함되지 않는 완성품 공급 사업 형식이다. 때문에 충분히 검토할 만한 계약이었다”고 주장했다.

다만, 두 회사 모두 갈등이 더 이상 확전되는 것은 원하지 않는 분위기다. 방위사업청 중재 아래 문제를 매듭짓고 수출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신익현 LIG넥스원 대표는 “통상적인 비즈니스 과정인데, 너무 와전된 것 같다. 각 회사 입장과 요구가 다른 만큼, 협상을 통해 조율해나갈 것이며, 방사청 주관 수출협조회의에서 하나씩 협의해나가기로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화 관계자는 “정부의 방산 수출 기조에 맞춰 최대한 협력해나갈 것이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발생하지 않던 일

K방산에 주어진 새로운 과제

경쟁업체가 아닌, 협력업체끼리 다툼을 벌이는 경우는 과거에 없었던 일이다. 다만, 앞으로는 이번 사건과 같은 사례가 자주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방산 업계 주된 의견이다.

이유는 한 가지다. 국내 방위 산업의 위상 상승이 배경이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만 해도, 국내 방산업체 주 거래처는 한국 국방부였다. 애초에 업체끼리 갈등이 일어날 여지가 적었다. 방위사업청이 요청한 대로 자신이 맡은 물량만 생산하면 끝이었다. 해외 수출을 진행은 했지만, 수주 물량이 적어 기존 생산 시설로 충분히 감당할 만했다.

상황은 2022년부터 바뀌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국 방산업체를 향한 관심이 높아졌다. 빠른 납기, 검증된 성능, 탁월한 가성비에 한국산 무기를 찾는 수요가 급증했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 방산업체는 급격한 성장세를 일궈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2022년 이후 한국 방산업체 무기 수주액은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러우 전쟁 이전, 한국은 해당 순위에서 10위권에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생산 가능 물량은 기존과 똑같은데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난 상황. 발주처도 다양해졌다. 한국 국방부에 맞춰주면 끝나던 과거와 달리 각국 정부의 요구사항을 다 들어줘야 한다. 납기 순서, 납품 단가 등 사업에 참여하는 업체끼리의 이해관계가 더 복잡해졌다. 천궁-Ⅱ만 해도 2022년 UAE(35억달러), 2023년 사우디아라비아(35억달러), 올해 이라크(25억달러) 등 대형 수출 계약을 매년 체결했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연구·조달·생산 시스템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방산 업계 관계자는 “이번 이라크 천궁Ⅱ 수출 과정에서 나타난 주체계(LIG넥스원)·부체계(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업체 간 이견은 해외 수출 규모 확대에 따른 자연스러운 상황이라고 봐야 한다. 수출이 이렇게 활발한 적은 방위 산업 역사상 처음이다. 기업도 대규모 수출을 해본 경험이 없어, 이런 갈등을 겪은 적도 없다. 일종의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다. 추후 경험이 쌓이고 나면 불협화음은 사그라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방위 산업 위상이 커진 만큼 방산업체 간 긴밀한 협력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치열한 국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최대한 힘을 모아 시너지를 끌어내야 한다는 것. 신익현 대표는 “단일업체만의 K방산은 있을 수 없다. 현재 한국을 견제하는 글로벌 상황들이 급격히 증가하는 상황이다. (각 기업의) 각개전투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국내 방산 기업 간 협력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9호 (2024.10.09~2024.10.1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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