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경제는 트럼프" vs "낙태권·약자엔 해리스"…반쪽 난 美 대선 격전지 펜실베이니아 가보니
트럼프·해리스 초박빙 대결
펜실베이니아서 웃어야 백악관행
선거인단 19명으로 경합주 최대
트럼프 지지층, 경제·이민 정책 찬성
해리스 지지자는 생식권 보장·약자 보호에 표
대선 최대 쟁점 경제…샤이 트럼프 결속 관건
"트럼프는 미국 경제를 호황으로 돌려놓을 겁니다. 여론조사는 믿지 않아요. 트럼프를 지지하는 침묵하는 다수가 있습니다".
"다음 대통령은 당연히 해리스여야 합니다. 그녀는 생식권(낙태권)을 보장하고, 중산층을 지지합니다. 다른 선택지는 없습니다".
미국 대선을 한 달여 앞둔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찾은 펜실베이니아주(州) 필라델피아 시청. 11월5일 대선을 앞두고 사전 투표가 시작되면서 유권자들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투표소가 있는 시청 청사를 찾았다. 역대 어느 선거보다도 뜨거운 관심 속에 시청 앞에서는 민주당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캠프와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캠프 직원들 모두 유권자들에게 투표 참여를 독려하고 있었다.
펜실베이니아 이겨야 백악관행…선거인단 19명 '경합주 최대'
펜실베이니아는 미 대선 승패를 좌우할 경합주 중에서도 최대 격전지로 꼽힌다. 미 대선은 총득표수가 아닌 각 주(州) 선거 결과를 토대로 확보한 선거인단 수로 대통령을 결정한다. 선거인단 총 538명 중 과반인 '매직 넘버' 270명을 확보하는 후보가 승리한다. 대부분의 주에서 지지 정당이 뚜렷하게 정해져 있어 통상 경합주 7곳에서 승부가 판가름 난다. 경합주 가운데 쇠락한 공업지대인 러스트벨트(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미시간)는 친노조 성향의 민주당 텃밭인 '블루 월'이었으나 백인 남성 노동자를 중심으로 트럼프 지지세가 높아지고 있다. 남부 선벨트(조지아, 애리조나, 네바다, 노스캐롤라이나)는 공화당 우세 지역이었지만 최근 민주당 지지율이 상승세다. 이에 선거인단이 19명으로 경합주 중 가장 많은 펜실베이니아를 누가 가져가느냐가 백악관행을 결정짓는다.
펜실베이니아의 표심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대도시인 동쪽의 필라델피아, 서쪽의 피츠버그는 민주당 지지 경향이 강하다. 반면 두 도시 사이에 자리한 교외 농촌 지역에서는 공화당 지지세가 두드러진다. 펜실베이니아는 2016년에 공화당 후보인 트럼프 전 대통령, 2020년에는 다시 민주당 후보인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번갈아 표를 줬고 이 지역에서 승리한 후보가 백악관에 입성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웃는 자가 마지막에 웃는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 필라델피아 시청과 거리, 펜실베이니아대(유펜) 등을 둘러본 결과 흑인과 젊은층은 대부분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했다. 특히 해리스 부통령을 향한 흑인 유권자들의 강한 응집력이 확인됐다. 여성의 낙태권 보장, 인권 이슈를 중요시하는 것도 공통분모였다. 반면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은 경제, 이민 이슈를 주요 지지 사유로 꼽았다.
"트럼프 경제·이민 정책 지지" vs "해리스, 생식권 보장하고 약자 보호"
펜실베이니아 시청 앞에서 만난 60대 백인 여성은 자신을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로 소개하며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경제"라면서 "인플레이션이 하락하고 있지만, 물가는 이미 오를 대로 올랐고 이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바이든-해리스 정부는 경제에서 실패했다"며 "트럼프는 미국 경제를 다시 제 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름과 사진 촬영이 가능한지를 묻자 그는 "미안하다"면서 "나와 내 친구들은 대부분 침묵하는 트럼프 지지자"라며 황급히 자리를 떴다.
30대 흑인 여성인 몰리 씨는 시청을 직접 찾아 해리스 부통령에게 사전 투표했다. 그는 해리스 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를 묻자 "해리스가 당선되면 미국 역사상 두 번째 흑인, 첫 번째 흑인 여성 대통령이 탄생한다"며 "해리스는 소수자의 배경을 갖고 있어 약자의 권리를 보호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라델피아 시청에서 차로 10분 남짓 거리에 있는 유펜 캠퍼스에서 만난 대학생들 역시 대부분 해리스 부통령 지지자였다. 올해 처음으로 대선 투표권을 갖는 신입생 소니아 씨는 "해리스는 여성의 생식권을 보장하고 저렴한 의료 서비스를 공약했다"며 "중산층에게는 기회의 경제를 약속했다"고 지지 사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아시아계 흑인 여성인 그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미국의 가치를 상징한다"며 "트럼프가 당선되면 민주주의는 후퇴할 것이다. 해리스가 훨씬 안전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날 캠퍼스에서 만난 10명 남짓의 학생 중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는 한 명이었다. 유펜 경영대학원인 와튼스쿨 조교수의 도움을 받아 수업 시간에 만난 대학원생 A씨는 "너무 많은 불법 이민자들이 미국에 유입되고 있다"며 "미국인들은 이들을 지원하는 데 천문학적인 세금을 쓰고 있지만, 우리에게 돌아오는 건 늘어나는 범죄뿐"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예고한 '폭탄 관세' 정책에 대한 견해를 묻자 "인플레이션 등 일부 부작용이 있을 수 있지만, 상대국에 따라 현저히 낮은 관세를 올려 왜곡된 무역 구조를 해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선까지 경제 이슈 부각 전망…'샤이 트럼프' 결속도 관건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초박빙 대결을 펼치고 있다. 5일 미 정치전문매체 더힐과 선거 전문 사이트 디시전데스크HQ(DDHQ) 분석 결과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전국 단위 지지율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3.4%포인트 앞섰다. 다만 7개 경합주의 경우 해리스 부통령은 미시간, 네바다,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4개 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애리조나, 조지아, 노스캐롤라이나 3개 주에서 우위를 나타냈다. 경합주별 지지율 격차는 0.2~2%포인트로 오차범위 이내여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팽팽한 승부가 이어지고 있다는 평가다.
두 후보 모두 경합주에 선거 자금을 쏟아붓고 유권자 표심을 확보하는 데 화력을 집중하는 모습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날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함께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를 찾았다. 그는 지난 7월 첫 번째 암살 시도를 가까스로 모면했던 이곳에서 "우리가 펜실베이니아에서 이긴다면 전부 이기게 될 것"이라며 유권자의 지지를 호소했다. 기자가 방문한 필라델피아의 경우 펜실베이니아 내에서도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탓인지 도심 곳곳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광고가 체감상 더 많이 눈에 띄었다. 해리스 부통령은 오는 10일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 함께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를 찾는다.
관건은 선거가 임박할수록 부각되는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와 '샤이(shy) 트럼프' 결속 여부다. 미국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경제는 트럼프"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최대 승부처인 펜실베이니아에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 성향이 강한 65세 이상 인구와 백인 인구가 경합주 중 가장 많다는 점도 변수다. 여론조사에는 잡히지 않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실제 선거에서 2~3%포인트 더 득표하는 샤이 트럼프 결집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악화일로인 중동 전쟁과 허리케인 피해 대응도 민주당에는 악재가 될 수 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유권자들이 경제 이슈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대선 승패의 키를 쥔 펜실베이니아는 프래킹, US스틸 매각 논란 등으로 경합주 중에서도 경제 이슈가 가장 중요한 지역"이라며 "해리스가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지만, 격차가 근소하고, 경제에 강한 트럼프가 남은 한 달간 전력을 집중해 치고 올라올 수 있어 이번 선거는 막판까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초박빙 승부가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필라델피아=권해영 특파원 roguehy@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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