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해리스와 트럼프가 모두 말하지 않는 것
회계연도 시작… 감당 못하면
눈길은 동맹국 곳간 향할 것
미국 연방정부는 매년 10월 1일 새로운 회계연도를 시작한다. 세금을 징수하고 기관별 예산을 심의한 결과를 토대로 예산안을 작성해 의회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 과정의 복잡함을 고려해 새해의 시작인 매년 1월 1일보다 3개월을 앞당긴 회계연도를 적용하고 있다. 이미 10월로 넘어온 지금은 미국에서 2025회계연도의 1분기에 해당한다.
예산안이 10월 1일 0시까지 의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연방정부는 업무를 중단하는 ‘셧다운’에 들어간다. 미국 상·하원은 오는 12월 20일까지 정부 지출 규모를 현행에 준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3개월짜리 임시예산안을 지난달 25일 80% 이상의 찬성표로 처리했다. 이로써 미국은 셧다운을 막았고, 그 대가로 막대한 빚 위에 새로운 빚을 얹어 2025회계연도를 출발했다.
미국에서 연방 부채는 초읽기에 들어간 시한폭탄과 같다. 이미 국내총생산(GDP·28조7800억 달러)에 근접한 28조 달러(약 3경8000조원)를 초과했다. 연방정부는 재정 수입 1달러당 1.21달러를 지출하는데, 부채 이자를 포함하면 지출액은 1.39달러로 늘어난다. 이자를 갚기 위해 또 빚을 지는 부채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셈이다.
미 의회예산국은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올해 연방 재정 적자가 GDP의 6% 이상인 1조9150억 달러로, 지난해의 1조6950억 달러를 훌쩍 넘길 것이라고 추산했다. 미국이 이런 적자 규모에 도달했던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뿐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이 지금처럼 돈을 쓴다면 연방 부채는 10년 뒤인 2034년까지 50조 달러까지 불어나고, 이자 비용만 국방 예산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대선판에서 이런 불편한 이야기를 꺼내는 후보는 없다. 민주당 대선 후보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90분간 맞붙은 TV토론(ABC방송 주관)에서 재정 적자를 단 두 차례만 언급했다. 이마저도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 적자를 줄일 방안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미국 언론과 경제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연방 부채 증가가 성장을 저해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 신호는 이미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하향으로 나타났다. 세계 3대 국제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2011년 8월, 피치는 지난해 8월 미국의 신용등급을 각각 ‘AAA’에서 ‘AA+’로 내렸다. 아직 미국에 최고 등급(Aaa)을 부여한 무디스도 대선 이후 신용등급 위험을 분석한 지난달 보고서에서 “연방 부채 증가에 제동을 걸지 않으면 지금의 신용등급을 유지할 수 없다”며 강등 가능성을 예고했다.
해리스 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음달 5일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대선 레이스 막판에 연방 부채를 언급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결전의 날은 다가오는데, 각종 여론조사마다 오차범위 안에서 접전을 벌이는 두 후보의 공약은 나랏돈을 퍼주겠다며 유권자의 환심을 사는 방향으로 제시될 수밖에 없다.
둘 중 누가 승리하든 내년 1월에 취임하면 두 개의 재정 시험에 직면하게 된다. 첫 번째 시험은 연방 부채 한도 상향 조정에 서명할 것인지, 다음 시험은 ‘트럼프 감세안’으로 설명되는 2017년 세법 개정안의 내년 12월 31일 만료를 앞두고 연장안을 마련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감세안의 영구화를 공언했고, 해리스 부통령도 이 세법 폐기에 따른 가계 세금 인상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냈다.
그러니 미국 연방 부채의 위험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이 어느 순간 빚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동맹국의 곳간으로 눈을 돌릴 텐데, 그때의 요구는 조 바이든 행정부처럼 공장을 더 지으라거나 트럼프 전 대통령처럼 방위비 분담금을 더 올리라는 정도에서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김철오 국제부 차장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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