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코리아] 경직된 노동시장이 자영업 위기 불렀다

2024. 10. 7.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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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자영업이 위기다. 자영업은 서민 경제의 역동성을 대변해 왔다. 기업가 정신의 표상이기도 했다. 지금 그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자영업자의 수는 2017년 568만명까지 증가했다가 2018년 최저임금 상승으로 떨어지기 시작해 2022년 551만명으로 떨어졌다. 이후 자영업자의 수는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으나,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의 비중은 19%대로 떨어졌다.

9월 30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자영업자는 563만6000명으로 취업자(2854만4000명)의 19.7% 수준이며, 20% 아래로 떨어진 것은 1963년 관련통계 이후 처음이다. 김영옥 기자

「 생계 때문에 창업하는 사람 늘며
자영업 무한경쟁에 생존 어려워
노동시장 유연화로 취업길 열어야

우리나라는 사업하기 어려운 나라다. 각종 인허가와 규제를 극복하고 사업을 시작해도 종업원을 고용하는 것이 두렵다.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75%는 고용원이 없는 사업자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이 어려우면 창업을 권한다. 창업 정책은 우후죽순처럼 생겼지만, 창업 이후 살아남는 것은 창업자의 몫이다. 생계 걱정으로 사람들이 창업하고 한 달이 지나지 않아 폐업을 걱정해야 한다. 일자리 정책의 막장이 창업 정책이 된 지 오래다.

자영업이 어려운 이유는 너무도 많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다가 혹은 퇴직 이후 창업을 시도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창업으로 고통이 시작된다. 정부의 수박 겉핥기식 교육 훈련 정책은 오히려 독이 됐다. 소상공인들은 최저임금이 올라서 어렵고, 자고 나면 근처에 생겨나는 가게가 더 무섭다. 차별성 없는 가게들이 무한 경쟁하는 시장에서 최저임금 상승과 코로나 사태를 빚으로 견뎠지만, 이제 빚을 갚을 여력이 없다.

김지윤 기자

정부의 인기영합적 정책으로 돈이 풀리고, 임대료가 올랐다. 빈 상가가 늘었지만, 임대료 상승으로 자영업도 어려워졌다. 임대료만 문제가 아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 일상화한 배달 영업도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경쟁이 심한 업종에서 배달앱을 이용한 배달 영업으로 비용만 늘어났다. 배달 영업은 사업 성장의 기회를 주지만, 다른 업체도 경쟁적으로 배달 영업을 채택한다. 추가적인 이익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배달앱을 이용하지 않으면 손해는 더 커진다.

SNS의 발달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소상공인들을 어렵게 만든다. 실내 장식을 새롭게 하고 SNS로 인기몰이하는 효과도 단기적일 뿐이다. 유행에 따라 계속 비용을 더 들여 생존하더라도, 남는 것이 없다. 누구나 쉽게 진입하고 차별화하기 어려운 자영업의 본질적 한계 때문에 위기가 발생한다.

정부는 자영업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보다는 대증요법에 매달렸다. 공공 결제 앱, 카드 수수료 인하, 도서정가제 등 대증요법은 실패했다. 인위적 수수료 인하 정책은 소비자 간 교차 보조 방식으로 시장만 교란한다. 배달 수수료 인하 등 대증요법은 단기적으로 환영받을지 몰라도, 업종 내 경쟁으로 개별 자영업자의 시장이 줄어드는 효과를 막지 못해 결국 실패한다. 생계형 소상공인 적합업종 정책은 소상공인들이 아니라 상권을 장악한 중소기업에 혜택을 주는 정책이다. 이 정책은 소상공인이란 이름만 빌렸지, 대기업과 협업하는 소상공인들에게는 오히려 해를 입혔다. 사회적기본법은 자영업을 차별하는 불공정한 법이다. 대증요법은 문제를 악화할 뿐이다.

9월 13일 새벽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근 인력시장에서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뉴스1


자영업 문제는 노동시장에서 풀어야 한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으로 취약 근로자들은 갈 곳이 없다. 일할 곳을 찾다가 창업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대기업 노조, 중소기업의 노사 관행, 최저임금의 노동시장 왜곡으로 고용하기 어려운 나라다. 노동시장의 정상화가 자영업의 무한 공급을 막을 수 있다.

자영업의 경쟁력 강화도 필요하다. 근로자의 20%가 일하는 산업에서 구조조정과 경쟁력 정책이 없다. 기업형 임대업, 기업형 법률서비스, 대형 병원과 협업하는 의료서비스업, 혁신적 음식·숙박업 등으로 기존의 자영업자들이 힘을 합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제도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생산성 향상만이 자영업을 구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사람 서비스에 대해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차별화된 서비스를 인정하고, 다양성으로 경쟁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규제와 보호가 아니라 크고 작은 사업들이 조화를 이루도록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 자영업은 생계를 위해 할 수 없어 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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