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대통령이 떠나보내야 할 사랑
지지율 하락 중인 윤 대통령 존경받겠다는 노력 보이지 않아
후보 때 강조했던 ‘공정과 상식’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줘야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1532)은 정치 철학의 고전으로, 권력자의 통치술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자가 사랑받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나은지를 묻는다. 대개의 권력자는 사랑과 두려움을 동시에, 즉 경외심을 받기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결국 사랑과 두려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마키아벨리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게 낫다고 말한다. 변덕스러운 사랑보다 변치 않는 두려움이 통치에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동시에 마키아벨리는 두려움과 증오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두려움은 권력 유지를 돕지만 그 두려움이 증오로 바뀌는 순간 권력자는 위험에 빠진다. 국민은 두려운 권력자에게 복종할 수 있지만 증오하는 권력자에게는 결국 등을 돌리기 때문이다. 500여년 전 그가 말한 사랑과 두려움과 증오 사이의 미묘한 경계 문제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 대선에서 0.73% 포인트라는 박빙의 차이로 당선된 윤석열 대통령은 그를 지지하지 않는 절반에 가까운 국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기 위해 전임자들보다 더 큰 노력을 했어야 한다. 하지만 곧 임기 반환점을 도는 그의 지지율은 하염없이 하락 중이다.
정권 출범과 동시에 윤 대통령은 교육, 노동, 연금 등 핵심 개혁을 호언장담했으나 지금까지도 눈에 띄는 진전이 없다. 의료개혁을 명분으로 불쑥 꺼낸 의대 증원 대책은 반년 넘게 진퇴양난 속에 좌충우돌하고 있다. 경제와 민생 불안, 집권 여당과의 불화, 야당과의 소통 부족, 그리고 영부인 문제까지 겹쳐 대통령실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다. 세종시 관료들도 용산에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는 소문이 돈다.
이 모든 문제는 윤 대통령이 줄곧 강조해 온 ‘공정과 상식’이라는 국정 기조가 양날의 칼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만약 그가 우리 사회의 공정과 상식을 회복하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했다면 그를 지지하지 않던 국민으로부터도 사랑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만연한 공정과 상식을 무너뜨리는 반칙들, 특히 상대방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부추기는 내로남불과 제 식구만 감싸는 ‘부족 본능’ 행태를 바로잡으려면 엄격한 규제와 법 집행이 불가피하다. 그러다 보면 권력자는 어쩔 수 없이 두려운 존재가 된다.
윤 대통령은 그마저도 성공하지 못한 듯하다. 검사 윤석열은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강조하며 많은 이에게 강인한 공직자의 전형으로 각인됐다. 그러나 이제 회의석상에서 그의 호통을 직접 들어야 하는 참모들을 제외하면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전직 대통령, 야당 정치인, 심지어 여당 일부 인사조차 대통령 윤석열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다.
두려움은 자신과 남에게 동시에 엄격할 때 생기는 감정이다.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만 엄격한 권력자는 두려움이 아닌 증오의 대상이 된다. 물론 윤 대통령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한민국의 정치 전반을 봐도, 일부 극성 지지자를 제외한 대다수 국민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정치인이 보이지 않는다. 여야를 막론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만 엄격한 이들이 넘쳐난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지금부터라도 윤 대통령은 모든 국민으로부터 사랑받겠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자신에게 더욱 엄격해져야 한다. 더 나아가 지위 고하와 내편 네편을 막론하고 예외 없이 공정한 법과 상식적 원칙을 적용해 마키아벨리가 말한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을 두려워 말아야 한다. 그가 지금까지와 같이 말로만 공정과 상식을 강조하고 제대로 된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국민은 불신과 증오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다. 모두가 불행해지는 길이다.
아마도 인간 윤석열에게 가장 두려운 일은 자신이 사랑하는 영부인 김건희 여사를 야당이 주장하는 특검 앞에 서게 하는 일일 것이다. 야당의 집요한 특검 발의에 굴복하는 것은 윤 대통령에게는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겠지만 부디 그 공포심이 자신을 집어삼키지 않기를 바란다. 막상 두려움이라는 막다른 길의 끝에는 이제 더는 잃을 것 없다는 홀가분함과 두려움을 마주할 수 있는 용기가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 마키아벨리적 자기발견 속에서 국가 지도자로서 자신의 한계와 가능성을 다시금 확인하기를 바란다.
구민교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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