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병주의 시선] 검찰의 '절제'와 법원의 '적극성'
4표 이탈이 있었지만 김건희 여사 특검법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당론대로 지난 4일 재표결에서 부결됐다. 여론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터라 향후 비슷한 내용의 특검법이 발의될 경우 부결을 장담할 수 없다는 말이 여권에서 나온다. 최근 전국지표조사 결과 특검 찬성 응답이 65%, 반대가 24%로 나타났다.
앞서 지난 2일 검찰은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 무혐의 처분키로 결정했다. 이 의혹도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했던 특검법에 포함돼 있었다. 대검이 소집한 김 여사에 대한 수사심의위원회에서는 위원 전원 일치 의견으로 불기소 권고가 나왔고, 서울중앙지검의 최재영 목사에 대한 수심위에서는 8대 7로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더 많았다. 검찰은 두 명 모두 기소하지 않았다. 수심위가 불기소를 권고했는데 검찰이 기소한 경우는 몇 번 있었다. 하지만 기소를 권고했는데도 무혐의 처리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의 논리는 국민권익위원회와 대통령실, 여권이 주장해온 법 해석과 비슷하다. 청탁금지법상 공직자 배우자의 경우 처벌조항이 없다는 이유가 크다. 최 목사 처벌 여부에 대해서도 “금품제공자도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하여 금품을 준 경우여야 한다”며 직무 관련성이 없었다는 판단을 했다. 청탁금지법 8조 5항은 '누구든지 공직자나 그 배우자에게 수수 금지 금품 등을 제공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검찰이 이 조항도 적용 안 되도록 해소해 줬다는 비판이 나온다. 명품백을 준 행위가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결론이 난 이상, 받은 김 여사도 ‘공직자 등의 배우자는 공직자 등의 직무와 관련하여 수수금지금품을 받아서는 안 된다’(8조4항)는 법적 제약에서 벗어난 셈이다. 핵심 논란이었던 배우자 처벌 규정의 유무와 상관없이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사건에서 검찰은 법률 해석이 애매하거나 범죄 여부가 확실치 않은 경우 "법원의 판단을 구해보겠다"는 방식을 취했다. 적극적으로 범죄행위를 규명해 내는 게 수사권과 소추권을 가진 준사법기관의 책무라는 입장이었다. 과거 수심위의 불기소 권고에도 불구하고 기소한 사례들도 그랬다. 하지만 김 여사 사건은 “법률가의 직업적 양심에 따른 결론”이라는 표현까지 쓰면서 무혐의 결론으로 마무리했다. 보기 드문 검찰의 '절제력'이 묻어났다. 이 때문에 법률가들 사이에서도 논란은 끝나지 않고, 민주당은 더더욱 쉽게 김 여사와 검찰을 놓아주지 않을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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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백 의혹 관련자들 불기소
사법소극주의 벗어난 가처분
정치적 성격 배제된 판단 맞나
」
법원에서는 ‘사법적 적극주의’를 표방하는 판단이 하나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12부가 방송통신위원회 ‘2인 체제’의 정당성과 적법성을 따져봐야 한다는 내용의 집행정지 인용 결정을 내렸고, 현재 항고심이 진행 중이다.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지난 7월 31일 김태규 부위원장과 함께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6명을 새로 선임했는데, 임기 만료(지난달 12일)를 앞뒀던 현 이사 3명이 “절차가 부당하다니 새 이사 선임을 정지해 달라”고 낸 가처분신청이다. 이 결정으로 이미 임기가 만료됐을 방문진 이사들이 여전히 직을 유지하면서 현 정부가 추진하는 MBC 개편 작업에 제동이 걸렸다.
방문진 새 이사 선임은 방통위법 제13조 제2항 ‘위원회의 회의는 재적 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는 규정에 근거해 이뤄져 문언적으로 문제가 없어 보인다. 재판부는 방문진법의 ‘임기가 끝난 임원이 후임자 임명 시까지 그 직무를 수행한다’(제6조 2항)는 법 조항을 중심으로 해서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가 간다는 논리를 폈다.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도 결정문에 넣은 것 같다. “이 사건 임명처분의 위법성 확인 내지 불분명한 법률문제에 대한 해명을 통하여 행정의 적법성을 확보하고 그에 대한 사법통제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8쪽)
법원은 정부와 관련한 행정소송에서 대체로 사법소극주의적 태도를 취해 왔다. 삼권분립 원칙에 입각해 ‘행정부의 전문적 견해나 직무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원칙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고영주 전 방문진 이사장과 고대영 전 KBS 사장이 각자의 해임에 대해 집행정지 신청을 냈을 때 모두 기각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본안 소송에서 최종 승소했다.
검사의 '기소 절제'든, 판사의 '사법적 적극성'이든, 관례에서 벗어났다지만 어디까지나 각자의 폭넓은 권한 안에서 이뤄진 일이다. 스스로 강조했듯 법률가의 양심에 맞게, 그리고 정치적 성향에 따른 판단이 아니었길 바랄 뿐이다. 국민 다수는 자신들의 사건에서도 이런 폭넓은 권한이 발동되길 원한다는 사실도 무시해서는 안 된다.
문병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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