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필의 인공지능 개척시대] 오픈 소스 코리아

2024. 10. 7.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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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인공지능(AI)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해 왔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공개의 문화’ 덕분이라 입을 모은다. 뛰어난 AI 모델 중 상당수가 누구나 자유롭게 내려받아 활용할 수 있게 공개되어 있다. AI 모델을 공유하는 세계적 플랫폼으로 ‘허깅페이스’가 대표적이다. 지난 9월 허깅페이스는 자사 플랫폼에 등록된 공개 AI 모델 수가 백만 건이 넘었다고 발표했다. 놀라운 일이다. 이처럼 공개된 수많은 AI 덕분에 전 세계 많은 이들이 연구를 수행하고, 새로운 분야에 응용할 수 있게 되었다.

「 성장 산업 분야는 기술 독점보다
기술 공개가 장기적으로 중요
한국형 AI 생태계 성장을 위해
AI위원회는 오픈 소스 장려해야

최근 들어 일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오픈AI는 과거와 달리 더 이상 챗GPT의 내부 구조, 학습 방법, 학습 데이터에 관한 세부 사항을 공개하지 않는다. 유료 AI 서비스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불가피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AI 기업이 이러한 변화에 따르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구글, 메타 등 빅테크 기업이나 여러 AI 스타트업은 우수한 성능을 갖춘 대규모 AI 모델을 선뜻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AI 기업들이 막대한 자금을 들여 개발한 성과를 누구나 쓸 수 있게 공개하다니 의아한 일이다. 심지어 경쟁사들까지도 마음껏 활용할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실보다 득이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자사 기술을 내부에 꼭꼭 숨겨놓고 유료 서비스로 제공하면 지금 당장 돈을 더 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술을 공개해서 더 많은 이들이 참여해 기술을 발전시키면 시장 전체가 성장한다. AI 생태계가 자라나면 새 사업 모델을 만들어 더 큰 수익을 얻을 기회가 생겨난다. 그래서 AI 시장 생태계를 키우려 애쓰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태계 확장을 잘 보여주는 사례로 웹서비스 기술을 들 수 있다. 우리가 접속하는 대다수 웹사이트는 리눅스 운영체제에서 실행되는 웹서버를 통해 구동된다. 그런데 그 운영체제나 실행 소프트웨어는 소스 코드가 공개되어 있고 누구나 무료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현재와 같은 거대한 온라인 서비스 산업 생태계 근저에는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가 자리 잡고 있다. 이렇게 빠르게 발전하는 산업 분야에서는 기술 독점화가 아니라 기술 공개를 통해 시장의 파이를 키우는 전략이 더 유효할 수 있다. 또 다른 예로 테슬라 사례가 있다. 테슬라는 2014년 오픈 소스 특허 전략을 발표했다. 테슬라의 전기차 관련 특허를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풀어 준 것이다. 장기적인 시장 성장을 우선시한 전략이다.

지금 AI 기술을 선뜻 공개하는 기업들도 비슷한 미래를 상상할 것이다. 앞으로 AI 생태계가 확장되어 간다면 그 중심에는 오픈 소스 AI가 자리 잡고 있을 개연성이 크다. 기반이 되는 AI 기술 자체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하되, 이를 응용하는 부가적 서비스는 유료로 제공되는 사례가 많아질 것이다. 국내에서도 AI 모델을 오픈 소스로 공개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대학이나 연구기관이 아니라 대기업도 나서기 시작했다. 지난 8월 LG AI연구원은 자사의 대규모 언어모델을 오픈 소스로 공개했다. 거시적 안목을 갖춘 시도로 칭찬할 만하다.

오픈 소스 AI의 개발과 확산에 있어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본래 정부의 역할은 공공재로 기능하는 인프라를 잘 구축하는 일이다.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는 바로 범용 AI 모델이다. 그러니 정부는 한국어를 더욱 잘 이해하고, 한국 환경에 더욱 적합한 범용 AI 모델이 널리 공개되어, 국내 산업 인프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이러한 사업은 지난달 출범한 국가인공지능위원회가 추진해야 할 중요 임무다.

우수한 범용 AI 모델이 오픈 소스로 공개되면 AI 산업 생태계에서 고속도로 역할을 할 수 있다. 잘 구축된 고속도로가 지역 곳곳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처럼, 공개된 범용 AI는 여러 산업 분야에 걸쳐 AI 활용의 숨통을 틔울 것이다. 이때 국내 AI 기술이 AI 생태계의 기반이 되도록 해야 한다. 고속도로를 지나갈 때마다 외국 기업에 통행료를 내는 일이 없어야 하는 것처럼, AI를 활용할 때마다 외국 빅테크 기업에 대가를 치를 필요가 없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렇듯 범용 AI 기반이 잘 구축되어 있으면 구체적 응용 분야는 여러 기업이 자발적으로 발전시키면 된다. 그러면 굳이 정부가 나서서 응용 사례에 대한 실증 사업을 벌일 필요성은 크지 않다. 오히려 정부 사업으로 인해 시장이 왜곡되지 않도록 유의할 일이다. 또한 국가 연구개발 예산으로 개발된 AI 모델은 공개를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공개를 통한 검증이 가능해야 우수한 연구 성과가 도출될 수 있다. 국가인공지능위원회가 앞장서서 AI 분야에서 ‘오프 소스 코리아’를 향해 나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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