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참 특별한 시집

박향숙 2024. 10. 6.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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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복 시인 시집 <시발 詩勃> 출간회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박향숙 기자]

만약에 시간을 거슬러
전생 어디쯤에 살아진다면
사대부 양반가의 정경부인 따위
나는 싫소

(중략)

나 전생의 어디쯤 살아진다면
너 아니면 죽겠다는 당신을 꼭 만나
빠꿈살이같은 철부지로 살아도 좋겠소
욕심 없이 소박한 사랑에
눈멀어 살아도 좋겠소

전재복 시인의 시집 <시발 詩勃>에 있는 <만약에>라는 시의 일부다. 시인의 후배 낭송가(김순민)가 들려주는 시에는 칠십 넘는 평생 동안 시인이 몰래 간직해 둔 비밀이 새어 나오는 듯했다.
▲ 전재복 시인 신작<시발>출간회장 참석한 지인들이 시집을 들고 화이팅
ⓒ 박향숙
36년간 교사의 이름으로 봉직한 시인이 양반가의 부인이나 허울 좋은 효부보다 시화가무를 하는 기녀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층암절벽 높푸른 솔이 되고, 걸림 없는 바람이 되고, 창공을 찌르는 대나무가 되었다가 맑은 곡조 풀어내는 퉁소가 되고 싶다고 고백했다.

군산 말랭이마을 책방이자 1인 독립출판사인 <봄날의 산책>에서 시선집 1호를 달고 나온 시인의 시집명은 <시발 詩勃>이다. 사람들은 제목의 소리만 듣고 놀랐다. 어떤 이는 '무슨 제목이?'라고 걱정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거 참, 시원하네' 통쾌하다고 했다.

시인 평생, 욕 한번 듣지 않고 살아왔을 그녀에게 혹시나 시집의 제목으로 누가 되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작년에 이 시를 처음 만났을 때 나의 후련함이 되살아나서 제목으로 정하자고 추천 드렸다. 시인께서도 '그럽시다. 이 나이에 그 정도는 말해야지'라고 동의해주셨다.
▲ 한국시낭송예술원회원들과 전재복 시인의 신작시 <만약에>와 <흘러가며>를 낭송한 후배들, 축시를 하신 선배님과 함께
ⓒ 박향숙
전재복 시인은 1993년 '한국시'에서 시인으로 등단, <풍경소리> <개밥바라기>등의 시집과 수필, 동화들을 쓰며 왕성하게 활동하는 지역의 대표시인이다. <시발 詩勃>은 시인의 여섯 번째 작품이다. 그동안 써 왔던 순수 서정시를 포함하여 특히, 현실참여시, 지역시사시 등을 실어 밀도 높게 사유한 시인의 고뇌가 두드러진 작품이다.

2023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테러에 맞서 <시발(詩勃, 글귀시, 노할발)>을, 영화 <수라>를 보고 군산 새만금 수라갯벌의 아름다운 풍경이 사라질 위험에 처한 안타까운 마음을 <마지막 갯벌 수라>에, 군산 미군부대 확장으로 600년 하제 팽나무 멸종위기를 고함 친 <할아버지 팽나무의 큰 기침>, 그리고 일제 강점기에 군산항으로 시작하여 고깃배들의 활황시절이 잃어버린 꿈이 되어버린 아쉬움을 전한 <째보선창의 꿈>. 지역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시인의 목소리가 절절하게 흘러나왔다.

시의 구성은 각 부마다, 참여시와 서사시, 서정시를 골고루 담았다. 제1부 초록별에는 <아기돌고래의 노래>를 포함 13편, 제2부 되감는 시간에는 <아! 자선당, 돌아온 굄돌> 포함 12편, 제3부 꿈속의 꿈에서는 <老望, 애인이 되고 싶다> 포함 14편, 제4부 작은뜨락에는 <세월 그까짓 것>과 함께 13편, 제5부 다시그림(그리움)에서는 <새해를 주시려거든> 포함 13편, 모두 65편의 시가 들어있다.

출판사를 등록할 때, 맘 속으로 한 가지 약속을 했었다. 그 누구를 만나더라도 추억이 될 출간회를 열어드리겠다고. 신인이든, 기성 작가든, 글이 짧든 길든, 사회적 지위가 높든 낮든, 여자든 남자든, 어린아이든 노인이든, 그 누구라도 소중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책 묶음' 한다는 것은 얼마나 복 받은 일인가.

어쩌다 책방을 열고, 또 어쩌다 출판사라는 명패를 단 것도 다 '사람과의 인연 덕'이라고 생각한다. 세 평짜리 책방에 시집을 구비하고, 중년의 지역 선후배들이 찾아와서 시문학으로 마음을 나누는 것 도 복 중의 큰 복이다. 게다가 지역의 대 선배께서 큰 출판사도 즐비한데, 1인 독립출판사의 발전을 기원하는 맘으로 당신의 작품 출판을 허락해 준 것도 영광스럽다.

지난 5일 진행한 출간회를 준비하면서 마음으로 정성을 다했다. 말랭이 마을 축제와 같은 날이어서, 이왕이면 손님들에게 마을도 소개하고 군산시간여행축제도 함께 즐기자고 출간회를 병행했다. 시인의 이름에 먹칠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시집이 나오기도 전에 홍보도 열심히 했다.

시인을 위해, 시낭송후배들이 시인의 시 <만약에 >와 <흘러가며>를 낭송하고, 하모니카 연주 <별빛같은 나의 사랑아>로 식장의 분위기를 올리고, 즉석에서 골드팝송을 불러주는 지인도 있었다. 시인의 글쓰기 제자이며 최근에 첫 에세이를 낸 정미란 작가의 프로다운 사회로 시인의 신작을 소개하는 축복된 시간을 가졌다.

무엇보다 시인의 인생 선배인 이숙자 작가의 축시는 가슴을 촉촉이 울려주었다. 김현태 시인의 시를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서로 인연 지어진 사람들끼리,하얀 종이에 아름다운 글로 수 놓듯이 함께 걸어가자고 말하며 시인의 신작 출간을 축하해주셨다.
▲ 전재복 시인의 신작시집 <시발>포스터 군산향토를 남다른 시선과 감수성으로 신작시집 <시발> 을 출간한 전재복 시인
ⓒ 박향숙
내 나이도 어느새 '지천명'이란 수식어를 내려놓는다. 나이 육십을 '이순(耳順)'이라고 했던가. 타인의 글을 대하는 직업은 지고지난한 인내의 과정이 필요함을 느낀다. 내 말을 먼저 드러내는 것보다 상대방의 말과 마음을 무수히 듣고 또 들어야 함을 배운다. 이순을 맞았으니, 하나인 입보다 두 개인 귀의 능력을 진중하게 배워야겠다. 진심으로 전재복 시인의 여섯 번째 시집 <시발詩勃>을 축하드린다.
심심(心深)한 당신에게

치열하게는 아니어도 꾸준함으로 느리게 걸어왔
다. 돌아보니 지나온 자리마다 달팽이의 진액 같은
애쓴 자국도 보인다.
이만하면 되었다. 쌓아놓은 실한 알곡이야 없지만,
남에게 상처 주고 부끄러운 일은 만들지 않았으니!
당신 그대, 누구로 호명될지 모를 누군가에게 짧은
사유의 실마리 또는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느
린 발자국을 모아 여섯 번째 詩의 집 '시발詩勃'을 열었다 –

- 작가의 말 중에서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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