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성욕은 정년이 없다

2024. 10. 6.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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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오래전에 상처하고 시골집에서 작은 농사를 지으며 홀로 생활하고 있다. 40대에 혼자가 된 노인은 오직 자녀들을 위해 열심히 살았다. 닥치는 대로 일하며 돈을 벌어 자식들을 뒷바라지했다. 그 덕분인지 장성한 자녀들은 가정을 이뤄 건실하게 잘살고 있다.

칠순을 훌쩍 넘긴 노인은 사실 지능지수(IQ)가 60을 갓 넘을 정도로 낮고, 최근에는 경증 치매 진단을 받기도 했다. 요즘에는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고, 동문서답하는 일이 잦아서 자녀들과 제대로 대화를 이어가기도 힘들다. 이런 노인에게 둘도 없는 친구 부부가 있다. 이들은 오랫동안 이웃으로 살면서 서로 스스럼없이 왕래하며 살았다. 친구 부부는 둘 다 지적장애인이다.

그날도 노인은 평소처럼 그 친구의 집을 방문했다. 며칠 전에 캔 고구마를 삶아서 전해주려고 들른 것이다. 언제나처럼 대문은 열려있었고 하나뿐인 방문도 열려있었다. 노인은 거리낌 없이 방 안으로 들어가면서 친구의 이름을 불렀다. 거듭 불렀으나 친구는 대답이 없었다. 그렇게 들어선 방안에 친구 부인이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다.

거기서 멈춰야 했다. 고구마만 놓고 나와야 했다. 그러나 노인은 순간적인 욕정을 참지 못했다. 잠을 자고 있던 친구 부인의 가슴을 만진 것이다. 잠에서 깬 친구 부인이 깜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이에 크게 당황한 노인은 방 밖으로 도망쳤다.

다음날 노인은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친구는 이런저런 욕을 퍼붓더니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친구 부인의 동생이라는 사람한테도 전화가 왔다. ‘누님이 병원에 입원 중이다. 감빵 갈 생각 하고 있어라’며 으름장을 놓더니, ‘합의하고 싶으면 1억원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며칠 후 경찰의 출석 요구를 받았다.

노인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부끄럽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부담 줄까 봐 자식들에게 말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나마 노인을 살뜰하게 챙기는 딸에게 횡설수설하며 어렴풋이 저간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었기에, 딸은 한참 동안 노인과 대화를 주고받은 끝에서야 사건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딸은 순간 막막했다. 이미 치매가 시작된 노인이 그런 일을 벌일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 노인에게 성욕이 남아있을 거라고 짐작이나 했겠는가. 딸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한창 왕성한 나이에 홀로 자식들 키우느라 지난 30여 년 동안 그 욕망을 얼마나 억누르며 살아왔을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어쩌면 자식들 결혼시킨 후에 노인 혼자 더 외로웠을지도 모른다.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10여 년 전, 지적 장애가 있는 여인과 인연이 닿기도 했으나, 자신을 포함한 양가 자식들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하고 뒤늦은 후회를 해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우선은 닥친 일을 수습하는 게 먼저였다.

딸은 노인과 함께 피해자 집으로 찾아가서 무릎 꿇고 용서를 구했다. 평소 친자식처럼 대하고 살던 딸의 눈물 어린 호소에 피해자 부부는 용서의 뜻을 비쳤다. 그러나 피해자의 형제자매와 사촌들의 반대로 형사 합의까지는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는 조만간 ‘백세시대’도 넘어선다고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생명 연장은 욕망의 연장이기도 하다. 그 욕망엔 당연히 성욕도 포함된다. 인간의 욕망에 정년이 있을까. 개인차가 있을 수 있겠지만, 대개는 어쩔 수 없이 억누르며 산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라도 이런 문제에 사회적으로 관심을 갖고 대처해야 하지 않을까. 어느 멀리 떨어진 시골이나 도시의 뒷골목 노인들의 문제로 치부하기엔, 그리 멀지 않은 우리의 미래일 수 있으니 말이다. 오늘도 딸은 피해자의 형제자매와 사촌들이 바라는 합의금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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