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고수열전]④태림포장 정우철…설비 자동화·안전의 대가

김종화 2024. 10.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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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입사 태림포장 30년 근무, 설비 자동화·안전의 대가
품질관리·생산·영업 통달한 태림포장 1위 도약의 일등공신
"현실을 부정하지 말고, 결정했으면 앞으로 나아가라"

"현실을 부정하지 말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노력하라."

골판지 업계 품질 개발과 공장 자동화의 최고수(最高手) 정우철 태림포장 시화공장 공장장(이사)은 "거친 파도가 노련한 사공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고 부지런히 내실을 다져라"라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정우철 태림포장 시화공장 공장장(이사)이 시화공장의 설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종화 기자]

정 공장장은 1994년 제일산업 구미공장에 입사했다. 제일산업은 아세아그룹 산하 제지 생산 기업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끝 무렵인 1999년 태림포장에 인수됐다. 정 공장장은 만 30년째 한 회사에서 품질개선과 설비 자동화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1966년생인 그는 영남대 화공학과를 졸업하고 타일 유약 만드는 회사에서 1년 정도 근무했으나,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고민하던 중 때마침 산업안전기사 자격증을 갖춘 기술자를 찾던 제일산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제일산업에서 그에게 처음 맡긴 일은 폐수처리장 담당. 당시 환경에 대한 이슈가 부각되던 시절이라 폐수처리는 거의 자동화돼 할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1년 정도 그 일을 맡았는데 "내가 고작 이런 일 하려고 여기 들어왔나"하는 자괴감에 사로잡혀 있는 시간이 절반이었다. 자신의 능력에 자만했던 치기 어린 젊은 시절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의 떡이 맛있어 보인다고 지금 현실을 부정해서 무슨 소용이 있나.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긍심을 가지고 노력하면 반드시 결실을 볼 것"이라는 충고를 듣게 된다. 그는 양명모 전 구미공장 공장장으로 당시 그보다 먼저 폐수처리장을 맡았던 선배였다.

"고작 이런 일 하려고 여기 왔나" 불평할 때 선배의 충고

2014년 6월 국제포장기자재전이 열린 일산 킨텍스의 태림포장 부스 앞에 선 정우철 공장장. [사진=정우철 개인소장]

그때부터 그의 회사생활은 달라졌다. 그에게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했고, 그런 의지를 읽은 회사는 그를 품질관리 담당으로 발령을 낸다. 품질관리 업무는 원지의 입고부터 최종 형태의 박스 출하, 사후관리(AS)까지 제품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업무였다. 4명의 직원이 엄청난 양의 업무를 처리해야 했고, 실력도 빨리 늘었다.

1997년 수출은 물론, 대기업 납품을 위해서는 필수였던 국제표준화기구(ISO)인증도 따냈다. 그의 주도로 품질관리시스템인 ISO 9001과 환경관리시스템인 14001 등 2건의 ISO 인증을 따내면서 그의 회사는 세계 어느 곳으로든 수출할 수 있는 자격도 갖췄다. 당시 ISO 인증을 담당했던 한국표준협회 직원은 "사원이 주축이 돼 ISO 인증을 받은 것은 국내 최초"라면서 축하해줬다.

태림포장의 식구가 된 뒤로는 품질개선에 힘써 태림포장이 업계 1위로 올라서는데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부적합 제품 처리를 위해 다른 공장까지 가서 새벽까지 기기나 시스템을 수리해줬고, 시스템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직원들에게 최선을 다해 설명해주고, 모르는 장비에 대해서는 원활한 작동법을 가르쳤다.

그렇게 16년 동안 품질관리를 하다 보니 현장에 가면 문제점과 해결책이 동시에 떠올랐다. 품질관리 전반을 통달하니 생산공정을 맡겨도 생산효율이 높아졌다. ISO 시스템을 생산공정에 정착시켜 불필요한 공정을 없앴고, 직원 한 명당 생산성도 향상됐다.

영업에서도 탁월, 모두가 포기한 거래처 1년 만에 돌아오게 해

정우철 태림포장 시화공장 공장장(이사, 사진 맨왼쪽)이 2017년 3월 구미공장 재직시절 구미 용봉산을 등반한 뒤 사내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 찍은 사진. [사진=정우철 개인소장]

영업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선배 모두가 "그 거래처는 도저히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던 곳도 1년에 걸친 끈질긴 설득 끝에 다시 거래하게 했다. 그가 생각할 때 생판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이미 안면이 있던 사람이 그 거래처의 구매담당자라 어려울 게 없는 문제로 보였다.

아침에는 출근 전에, 저녁에는 퇴근 시간에 맞춰 그 회사 앞에 가서 기다렸다. 품질관리 하면서 제품에 대한 문제를 이미 알고 있었고, 해결책도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에 꾸준히 설득해 나갔다. 이미 다른 회사의 제품이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자사 제품도 함께 넣는 이원화 전략으로 다시 그 회사에 우리 제품을 넣을 수 있었다.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거래처 담당자가 마음을 열고 현실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간이 1년이었다.

이런 그의 역량들이 대내외에 알려지면서 강연 요청도 잇따랐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에서 품질관리 등에 대한 강연도 여러 차례했다. 중소기업 간부가 대기업에 가서 강연한 경험도 새롭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경험을 많은 사람 앞에서 풀어 놓는 것이 재미있었다고 했다. 이는 영업에도 도움이 됐다. 태림포장은 철저한 품질관리를 거쳐 우수한 제품을 생산한다는 이미지가 업계에 퍼졌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태림포장의 박스 규격이 업계 표준으로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다. 삼성과 LG전자의 대형 TV와 냉장고, 세탁기를 포장하는 대형박스를 만들 수 있는 설비와 주문 생산이 가능한 회사가 드물었고, 태림은 설비와 기술, 그리고 평판에서도 앞서가는 회사였다.

태림포장 시화공장에서는 대당 100억원에 달하는 골게터 2대가 가동된다. 2800폭짜리 대형설비다. 경쟁사와 태림포장 다른 공장에서는 2500폭짜리가 최대다. 2800폭짜리 골게터는 폭 2m 80㎝짜리 원지를 장착할 수 있는 기계다. 분당 330m의 속도로 원지가 풀리면서 골판지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8각 박스 히트, 공장 자동화 TIPA 지원도

정우철 태림포장 시화공장 공장장(이사)이 완제품으로 포장하기 직전의 박스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종화 기자]

태림포장의 히트작은 '8각 박스'다. CJ 햇반과 오뚜기 컵라면의 포장 박스로 국내에서 태림포장만 생산, 농심과 롯데음료 등 주요 기업에 납품한다. 요즘은 100% 주문생산이다. 박스의 설계도를 보내주면 그에 따라 태림포장에서 제작하는 방식이다.

대형 포장 박스와 8각 박스 같은 특수용도 박스 제작과정은 공장 자동화가 필수다. 설계에 맞춰 생산라인을 조정해야 하고, 규격에 맞는 원지와 접착제, 잉크 투입 등이 가능한 시스템을 갖춰야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으로부터 2022년 스마트공장 고도화를 위한 정책자금 2억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지난 8월 김영신 원장이 시화공장을 찾아 공장 자동화 시스템을 둘러보며 격려하기도 했다.

정 공장장은 "경쟁사보다는 공장 자동화가 훨씬 앞서 있다"면서 "그 덕분에 전주페이퍼를 포함한 태림포장의 5개 계열사는 자체 생산 제품으로 전 과정을 소화할 수 있도록 수직계열화가 잘 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의 좌우명은 '역지사지(易地思之)'다. 1990년대 후반 대기업에서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즉각 출동해 문제를 해결해줘야 했다. 당시 기술적 문제로 완성된 박스의 모퉁이가 자주 찢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정 공장장은 "그럴 경우 A사의 경우 협력사를 호되게 문책하며 납품을 철회하는 등 협력사를 힘들게 했다. 반면, 경쟁사인 B사는 협력사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면서 오히려 위로하며 문제해결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고 회상했다.

(18) 그때 A사의 무시나 비아냥에도 인상 한 번 쓰지 않고 제품을 교체해주거나, 문제점을 해결해주면서 거래를 유지했다. A사는 지금 사세가 많이 기울었지만, B사는 세계적 기업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는 "그런 기업의 문화가 지금의 차이를 낳은 것 같다"면서 "이후 A사처럼 행동하지 말자고 다짐했고, 생활에서 실천하려 애쓴다"고 했다.

일 못 해도 부드럽지만, 안전 규칙 어기면 혼내는 '만능 스포츠맨'

정우철 태림포장 시화공장 공장장(이사)이 시화공장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종화 기자]

"공장이 아무리 자동화되어도 사람의 손길은 꼭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런데 늘 인력은 부족하다. 시화공장의 경우 수도권에 있음에도 사람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시화공장에선 하루평균 박스 100만장을 생산한다. 시화공장은 공장 자동화가 60% 이상 진척된 공장임에도 고정인력은 늘 필요한 데, 인력 구하기가 힘들어 어쩔 수 없이 하루 15~17명 정도의 일용직을 쓴다. 그마저 대부분 외국인이다. 이 비용에만 매월 억대를 써야 한다.

그래서 그는 늘 직원들에게 "역지사지하라"고 말한다. 말이 안 통하고 일 가르치기가 어렵지만, 최대한 친절하게 그들을 대하라고 강조한다. 그럴수록 생산성은 더 올라가더라는 것이 그의 경험이다.

안전에 대해서도 철저하다. 태림포장은 안전모와 안전화를 착용하지 않으면 공장으로 들어갈 수 없다. 정 공장장이 전국의 공장을 다니면서 만든 철칙이다. 다른 제지업체는 아직도 안전화와 안전모 착용을 강제하지 않는다. 여름에 아무리 더워도 윗옷은 바지 속에 넣어야 한다. 끼임 사고 방지를 위해서다. 뜨거운 공장에서 상의를 밖으로 내놓고 작업하다 그에게 혼난 외국인 일용노동자들이 수두룩하다. 일 못 하는 직원에게는 부드럽지만, 안전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혹독한 사람이 그다.

그가 나서면 라인이 멈춘 이유를 밝혀냈고, 다시 라인이 가동됐다. 옷이 걸리지 않게 모퉁이를 둥글게 마감처리하고, 통로에 물건을 쌓아두지 않게 했다. 움직이는 라인을 지나갈 수 있도록 육교 같은 건널 다리를 별도도 만들었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부주의로 인한 안전사고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그의 가족은 구미에 거주한다. 2020년 구미공장에서 청원공장으로 발령 나면서 주말부부로 살았는데, 2022년 시화공장으로 오면서는 주말마다 내려가지 못하고 2, 3주에 한 번 정도 구미로 간다. 만능 스포츠맨이라 주말이면 쉴 틈이 없다. 탁구·등산·마라톤·풋살·볼링·골프 등등 못하는 종목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잡기에 능해 찾는 사람도 많다.

정 공장장은 "입사원서를 넣고 합격해 공장에 출근한 사람에게 첫 단추가 중요한 만큼 며칠 다녀보고 계속 다닐지 여부를 결정하라고 시간을 준다"면서 "아니다 싶으면 빨리 다른 길을 찾고, 결정했으면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 그러면 큰 보람을 느낄 것이라고 격려한다"고 했다. 남은 사람은 끝까지 내 식구로 챙긴다는 말이다.

◆고수의 한마디

남의 떡이 크고 맛있어 보이면 나만 힘들 뿐이다. 현실을 부정하지 말고, 긍정적인 마인드로 자긍심을 가지고 노력하면 반드시 결실을 볼 것이다. 아니다 싶으면 포기하고 일찍 다른 길을 찾는 것도 답이다. 다만, 결정했으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거친 파도가 노련한 사공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공부하면서 부지런히 내실을 다져라.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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