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는 사람 뽑아놓고 10억 내라…‘요지경 청약’ [취재수첩]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2024. 10. 5.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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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담동에 들어서는 ‘청담르엘’ 아파트 특별공급 청약 경쟁률이 313.6 대 1을 기록했다. 청담르엘 투시도. (롯데건설 제공)
서울 청담동에 들어서는 ‘청담르엘’ 아파트 특별공급 청약 경쟁률이 313.6 대 1을 기록했다. 64가구를 뽑는 데 2만명 넘게 몰려들었다. 당첨 즉시 10억원 이상 차익이 보장된 그야말로 ‘로또 청약’이다.

배정 가구 수가 가장 많았던 ‘신혼부부 특별공급’에서 당첨 선정 순위가 가장 높은 조건을 따져봤다. 정리하면 ① 7년 이내 신혼부부 중 ② 2세 미만 자녀가 있고 ③ 외벌이로 월평균 소득 100% 이하인 사람이다. ‘아이를 키우는 외벌이 신혼부부 중 소득이 700만원 이하인 사람’이다.

그런데 무언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든다. 청담르엘 분양가는 전용 59㎡(약 25평) 기준 최대 20억원, 84㎡(약 32평)는 최대 25억원이 넘는다. 당장 내야 할 계약금만 최대 7억원이다. 월소득 700만원이 안 되는 젊은 육아 신혼부부가 과연 이 돈을 낼 수 있을까. 감당할 수 없는 대출을 받아야 하거나, 아니면 최근 대출 조이기로 빚마저 낼 수 없는 이가 대부분일 테다.

비단 청담르엘뿐 아니다. 최근 서울·수도권 아파트 분양가를 보면 59㎡ 기준 10억원에 육박하는 단지가 수두룩하다. 소득이 낮은 순으로 당첨자를 뽑아놓고는 대뜸 ‘10억원을 내라’고 하는 셈이다. 금수저가 아니라면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청약을 포기하는 것이다. 현재 가장 큰 문제로 꼽히는 ‘무순위 청약 과열’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청약 무용론’이 확산되면서 정부가 청약 제도 손질에 나서는 모습이다. 주된 변화는 ‘청약통장 금리 상향’ ‘월 납입 인정액 증액’ 등이다. ‘납입 기간이 좀 짧아도 되니 통장을 해지 말고 계속 도전하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정부 정책은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 진짜 문제는 현 부동산 가격에 맞지 않는 요상한 당첨 선정 기준, 사실상 불가능을 요구하는 소득 기준이다. 근본적인 대책 고민 없는 땜질식 처방은 결국 또 다른 부작용만 낳기 마련이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8호 (2024.10.02~2024.10.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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