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요리사의 짜릿한 쾌감 [하재근의 이슈분석]

데스크 2024. 10. 5.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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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넷플릭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이 대박을 쳤다. 2주 연속 넷플릭스 글로벌 TV쇼 비영어 부문 1위에 올랐고, 국내에선 굿데이터코퍼레이션이 발표한 ‘TV-OTT 통합 비드라마 화제성’ 조사에서 2주 연속 1위에 올랐다. 한국갤럽 조사 ‘요즘 가장 즐겨보는 방송영상프로그램’에서도 1위다. 한국갤럽은 이 조사에서 2023년부터 OTT를 추가했는데, 그때 이래 웹예능 프로그램이 최초로 1위에 올랐다.

매우 놀라운 일이다. 그동안 음식 관련 프로그램이 너무나 많았다. 이젠 식상해질 때도 돼서 이렇게 신드롬급 인기가 나타날 거라곤 예상하기 어려웠다.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소재를 내세웠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본적인 성공은 거둘 거라고 예상됐지만, 막상 공개되고 보니 예상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뜨거운 인기가 터졌다.

요리사 100명이 대결을 펼친다는 설정이다. 백수저로 불리는 유명 요리사가 20명, 그리고 흑수저로 불리는 무명 요리사가 80명이다. 심사위원은 백종원과 국내 유일 미쉐린 별셋 요리사인 안성재다.

요리 대결은 기존에도 많았지만 이번 ‘흑백요리사’는 유독 재밌다. 프로그램 만듦새가 매우 뛰어나다. 한 회만 봐도 많은 자본이 투여돼 공들여 만든 수작이라는 느낌이 전달된다. 천 평에 달하는 주방에 100명의 요리사가 자리한 모습이라든가, 수십 대의 냉장고, 백 명의 평가단 모습 등이 장관이었다. 스펙터클한 블록버스터의 아우라다. 그런 모습을 300대가 넘는 카메라가 생생하게 잡아냈다.

20대 80, 유명 백수저와 무명 흑수저의 대결이라는 설정이 절묘했다.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상층 20과 하층 80으로 나뉘어져있다고들 한다. 그런 속설에 정확히 대응하는 위계구조를 만든 후 ‘계급 전쟁’을 치르도록 했다. 경쟁과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을 그대로 은유한 듯한 느낌이었고, 그래서 더 시청자들이 깊게 빠져들었다.

흑수저 요리사가 곧바로 백수저에게 도전하지는 못하고 흑수저들 중에서 20명이 추려졌다, 흑수저들이 경쟁하는 모습을 백수저들은 위에서 내려다봤다. 이런 구도가 더욱 냉혹한 현실을 떠올리게 했다.

그 속에서 흑수저 요리사 60명이 가차 없이, 그리고 신속하게 탈락했고 살아남은 20인이 백수저에게 도전했다. 이렇게 성사된 ‘계급 전쟁’ 자체가 시청자에게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는데, 심사 방식이 눈가림 심사여서 더 재미가 증폭됐다.

널리 알려진 유명 요리사들이 과연 그 이름값에 걸맞는 실력자인지, 신진 요리사와 대결하면 누가 이길지, 이런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는데 눈가림 심사 방식이 그런 호기심을 정확히 채워줬다. 한편, 심사위원들도 권위자인데 그들이 눈을 가리고 어린 아이처럼 음식을 받아먹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재미를 배가했다. 눈 가리고 맛을 봤기 때문에 기존 명성이 통하지 않는 요리의 진검승부가 펼쳐졌다.

비교적 공정한 대결처럼 보였다. 그 속에서 흑수저가 이겼을 때 시청자들은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현실에선 힘들지만 이 프로그램 속에서나마 흑수저의 계급 상승이라는 대리만족을 경험한 것이다.

이런 구도가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또, 해외 대결 프로그램에선 원색적인 격돌이 나타날 때가 많은데 ‘흑백요리사’에선 서로를 존중하는 모습이 나타나 거기에도 외국인들이 관심을 보였다. 흑수저 철가방 요리사가 중식 대가 여경래 요리사에게 이긴 후, 철가방 요리사가 여경래 요리사에게 큰 절을 올리고 여 요리사가 철가방 요리사를 다독여주는 모습은 이 프로그램만이 줄 수 있는 따뜻한 순간이었다.

‘만찢남’, ‘이모카세 1호’, ‘중식여신’, ‘급식대가’, 이런 식으로 소개된 흑수저들의 캐릭터도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 흑수저들과 백수저들 사이의 관계 등도 흥미를 유발했다. 사제간의 대결이라든가, 또는 과거 안성재 심사위원을 심사했던 최현석 요리사가 여기선 안 심사위원에게 심사를 받는다든가, 그리고 항상 권위 있는 문제 종결자로만 보였던 백수저 스타 요리사들이 ‘흑백요리사’에서 문제 해결에 급급하며 심사 받는 모습 등 많은 에피소드들이 나타났다.

백종원의 입담이야 원래 유명한데, 또 다른 심사위원인 안성재마저 터졌다. “채소의 익힘 정도를 중시한다”, “재료가 이븐하게 구워졌다” 등의 어록이 인터넷 유행어가 되고 있다. 권위 있는 심사위원들의 납득 가는 심사도 인기요인이다. 안성재 요리사는 고가의 정식 요리를 하는데 백종원은 서민적인 프랜차이즈 음식 사업을 한다. 이렇게 심사위원도 백수저 요리 전문가와 흑수저 요리 전문가로 나눈 것 같아서 흥미롭다.

이런 구도에서 마치 무협지처럼 펼쳐지는 고수들의 대결이 박진감을 느끼게 했다. 최고의 솜씨로 만들어진 음식의 향연은 쾌감이었고, 신진 요리사들의 요리를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시청자에게 유용한 정보였다.

현재 프로그램 속에서 돋보인 요리사들의 식당은 예약이 가득 찼다고 한다. 누리꾼들 사이에선 ‘흑백요리사’ 식당 명단이 돌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새로운 스타 요리사, 인기 가게를 탄생시킬 것 같다.

요즘 해외에서 한국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많았었다. 마침 그럴 때 이 프로그램이 세계적으로 방영되면서 많은 외국인들이 ‘아 한국에 저런 요리들이 있고 저렇게 뛰어난 요리사들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한국 요리 홍보, 더 나아가 한국 홍보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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