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출혈 환자 치료하다 아이디어 번뜩 [스타트업 창업자 열전]
“외과 의사들은 수술이나 출혈 부위에 녹는 거즈나 젤 타입 제품을 덮을 수 있는데 장기에는 대안이 없을까 엄청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2003년경 약 3년간 미국 유타대 약제공학과에 연수 갈 기회가 생겼다. 이때 만난 고분자 전문가들과 교류하다 보니 답이 보이는 듯했다. 여러 실험을 거듭하면서 사람의 장기 안에 쓸 수 있는 특수 파우더(미세한 가루 물질)를 찾아냈다. 이 파우더는 수분과 접촉하면 접착력 있는 젤 형태로 바뀐다. 이 파우더를 전달할 도구는? 내시경이다. 내시경에 파우더를 묻혀 해당 부위에 도포하면 곧바로 지혈이 됐다. ‘이거다!’ 싶었다. 그렇게 2014년 창업했고 약 10년이 지난 올해 8월, 이돈행 교수가 아니라 넥스트바이오케미컬 대표 자격으로 한국거래소에서 상장을 알리는 북을 쳤다.
개발하면 다 될 줄 알았지만
시장에 없는 혁신형 치료제.
한국은 물론 미국 임상 때부터 제품은 호평 일색이었다. 내시경용 지혈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겠다, 이름도 ‘넥스파우더’로 명명했겠다, 곧 상업화가 될 듯했다. 회사 이름도 임상적으로 필요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What’s Next?’라는 의미로 넥스트바이오메디컬이라 지었다.
의사 출신 창업인 데다 제품이 혁신적이니 당장 투자금이 물밀듯 밀려들 줄 알았다. 그런데 회사를 차리고 엔젤 투자를 받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후 투자 유치까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됐다. 임상은 물론 FDA 승인 등 외부 인증까지 시간이 걸려서다. 시장성 면에서 갸우뚱하는 이도 많았다. 이미 다양한 지혈술이 있는데 의사들이 이 새로운 기술을 쓸지 의문이라는 시선이었다.
시장은 가능성을 증명하는 곳
결국 시장에 맞는 제품을 만들어 스스로 가능성을 증명해야 했다. 이때 활용한 것이 국제학회 발표다. 세상에 없는 제품인 만큼 한국보다 해외에서 주목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실제 이런 전략은 제대로 먹혔다.
“과연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높은 점착력, 최적의 분사 압력, 낮은 흩날림 현상 등 사용이 쉽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또 수분이 있는 상태에서 지혈을 할 수 있어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점에 주목해줬습니다. 또 혈액이 없는(출혈이 발생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출혈을 예방할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없던 시장(표준치료제)을 만들 수 있다고 인정받았지요. 학회에 나가면 경쟁사 제품 대비 비교 우위에 있다는 걸 확실히 과시할 수 있다는 점도 호재였습니다.”
학회 발표 후 매출 46조원대 세계 굴지의 의료 플랫폼 기업인 ‘메드트로닉’이 이 대표 기술에 주목했다. 이후 글로벌 판권 논의가 본격 전개됐다.
글로벌 외쳤지만 준비는 낙제점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벽이 생겨났다. 메드트로닉은 넥스트바이오메티컬 기술력은 인정하지만 회사 품질 관리가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고 시스템 역시 탄탄하지 못해 당장 계약은 어렵다고 했다. 낙심하던 차에 2019년 메드트로닉으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그래도 성장 잠재력이 있으니 넥스트바이오메디컬의 품질 수준을 높이기 위한 품질 협력 협약을 체결하자는 내용이었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계약서에 사인하자마자 곧바로 메드트로닉 본사에서 QA 품질 전문가가 1년 기한으로 파견을 왔다. 이후 두 회사 각 부서가 협력해 글로벌 수준의 개발, 품질, 생산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어 메드트로닉은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인허가 전담팀을 별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이 대표는 권고를 받아들여 제품 설계이력파일(Design History File)을 글로벌 기준에 맞춰 작성하고 그렇게 미국 FDA, 유럽 CE-MDR, MDSAP 인허가를 받아냈다.
그 결과 2020년 넥스트바이오메디컬은 메드트로닉과 글로벌(한국, 일본, 중화권 제외) 독점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 판매 유닛당 수입이 발생하는 계약 구조라 메드트로닉이 잘 파는 만큼 매출과 이익도 늘어나는 구조다. 메드트로닉의 영업력과 마케팅 파워는 금세 작동하기 시작했다. 시장 반응이 좋자, 메드트로닉은 이 기술로 다른 증상에도 쓸 수 있게(추가 적응증 확대) 해외 시판 후 임상 비용까지 모두 대겠다고 제안해온 상황. 실제 일부 제품 개발에는 메드트로닉 투자금이 들어와 진행 중이다.
이돈행 대표는 “처음에는 (메드트로닉에서) 초등학생 가르치듯 너무 소소한 것까지 관여하는 듯해서 임직원 스트레스가 많았다”며 “막상 글로벌 품질 기준에 맞추고 나니 다른 제품 개발, 인허가도 두렵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이런 경험은 신시장 개척에 중요한 역량으로 작용했다.
김충현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는 “FDA 등 국제 인허가를 자체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역량, 동일 기술을 응용해 무릎 통증을 완화하는 골관절염 색전술(비정상 혈관을 막는 기술) 시장에 진출하는 등 분야를 다양하게 확장해나갈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국내보다 해외!
처음부터 해외로 눈을 돌린 덕분에 해외 매출이 90%를 넘길 때도 있었다. 증권가에서는 넥스트바이오메디컬의 지난해 매출액이 약 49억원, 올해는 100억원, 내년에는 350억원을 각각 기록할 것으로 내다본다.
이를 위해 회사는 해외 개척에 더 힘을 집중하고 있다. 넥스트바이오메디컬 관계자는 “현재는 위 내시경에만 제품 사용이 가능한데 올해 말까지 대장 내시경에 사용할 수 있도록 FDA 승인을 받기 위한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며 “관절염에 쓰이는 색전물질 ‘넥스피어-F’도 개발, 유럽에서 관절염에 적용할 수 있는 유일한 제품으로 승인받았고 결과적으로 유럽 수출도 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시작부터 글로벌’을 염두에 두라 조언한다.
“세계 시장에 나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외국 제품을 저렴하게 만들거나 약간의 기능을 추가한 제품으로는 힘들다고 봐요. ‘First in Class(업계 최초) 제품’이되, 반드시 ‘임상적 근거가 확보’돼야 합니다. 가장 듣고 싶은 말은 ‘당신 제품이 사용하기 편하고 환자에게 효과가 우수하다’입니다. 이런 임상적 근거를 확보해 완제품을 생산·수출하는 ‘글로벌 혁신형 치료재료 회사’로 키워나가겠습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8호 (2024.10.02~2024.10.0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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