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우리말 찾아 실었습니다"
[이윤옥 기자]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
– 김민기 '늘푸른나무(상록수)' 가운데-
기쁨수레와 서로믿음님이 부르는 노랫말을 들으며, 나는 책 잔치가 열리는 대강당 구석에 앉아 눈시울을 붉혔다. 김민기의 노랫말처럼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던 일"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 잔치 내내 <푸른배달말집>을 만드느라 "멀고 험한 길을 뚫고 나온 한실 님"의 집념에 옷깃을 여몄다.
▲ 푸른배달말집 <푸른배달말집> 책 꺼풀(표지) , 안그라픽스 펴냄 |
ⓒ 안그라픽스 |
지은이 한실 님은 "오늘날 우리가 배곳(학교)에서 배워 쓰는 말은 거의 모두 일본말에서 왔습니다. 우리말 낱말이 모자라서 말을 넉넉하게 하려고 들여다 쓴다면 다른 나라 말이라도 받아들여 써야겠지요. 그런데 일본말에서 온 말은 멀쩡한 우리말을 밀어내고 안방을 차지한 말들입니다. 이런 말을 한글 왜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쓰는 말 속에 남아있는 일본말 찌꺼기를 뿌리 뽑고자 하는 뜻에서 이 말집(사전)을 만든 것이다.
이날 책 잔치 여는 말(축사)은 정토회 법륜 스님이 했다. 법륜 스님은 "우리 겨레는 일제강점기에는 일본 한자말을 배워야 했고, 서양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다시 영어를 배워야 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말(배달말, 우리 겨레가 예부터 쓰던 말)을 제대로 배울 기회를 놓쳤다. 그런 까닭에 쉬운 우리말을 두고 어려운 한자말을 나날살이에서 쓰게 되다 보니 좀처럼 고쳐지지 않는다. 그러나 아름답고 쉬운 우리말을 쓰고자 하는 노력을 그쳐서는 안된다"라고 말했다.
▲ 주중식 님이 만든 <푸른배달말집>이 나오기까지 영상으로 소개된 화면 갈무리 |
ⓒ 주중식 |
▲ 한실과 김수업 왼쪽이 한실 님, 오른쪽은 '배달말집'을 만들고자 뜻을 세운 빗방울 님 (전 우리말 대학원장 김수업 교수), 빗방울 님은 2018년 6월, 말집(사전)을 만드는 도중에 안타깝게 돌아가셨다. 영상 갈무리 |
ⓒ 주중식 |
내가 한실 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14년 5월의 일이다. 한실 님은 그 무렵, 빗방울이라는 덧이름(호)를 쓰며 우리말 살리기와 고장 삶꽃(지역 문화) 살림이로 삶을 바친 김수업 교수님을 만나게 되는 데 빗방울 님은 '우리말을 살리고 가꾸어 서로 뜻을 쉽고 바르게 주고받고 겨레말 속살을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풀이한 책을 짓는 것'을 큰 과녁으로 골잘 최인호, 날개 안상수, 들꽃 주중식, 마주 박문희, 한꽃 이윤옥, 한실 최석진과 함께 우리말 '세움이'가 되어 "배달말집"을 짓기로 뜻을 모았다.
우리들은 낱말 하나라도 모으기 위해 번개글로 서로의 뜻을 나누고, 그리고 많은 모임을 가졌다. 그러는 동안 함께 하는 이들이 더욱 모여들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말집 만들기에 한 걸음씩 다가섰다. 그대로만 가면 곧 말집을 만들 수도 있다는 부푼 꿈도 꿨다. 그러나 2018년 6월, 겨레말 살리는 이들을 이끌던 빗방울 김수업 님이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우리의 일은 잠시 멈춰서야 했다. 배가 바다 한가운데로 나간 때에 선장이 숨을 거둔 격이었다.
하지만 한실 님의 활약은 이 시기에 더욱 빛났다. 빗방울 님이 돌아가시자 한실과 모둠살이(지역공동체) '푸른누리'에서 뜻을 이어받아 여섯 해 동안 책을 펴내려고 우리말을 찾아 모으고 다듬었다. 책은 나날삶에서 마땅한 듯 쓰이는 한자말과 서양말에 가려져 잊힌 우리말을 찾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풀이를 우리말로 쓰고, 새롭게 들온 말을 우리말로 바꾼 새말을 실었다.
지은이 한실은 말한다. "이 말집 어느 쪽을 펼치더라도 구슬 같고 깨알 같은 아름다운 우리말을 만나게" 된다고 말이다. 구슬을 함께 꿴 이들은 나무 님, 높나무 님, 별밭 님, 아침고요 님, 살구 님, 고르 님, 달개비 님, 아무별 님, 보배 님, 아라 님, 쑥부쟁이 님, 소나무 님, 시냇물 님, 숲길 님, 숲노래 님, 채움 님, 미르 님, 윤슬 님, 미리내 님이 그들이다.
▲ 주중식,미리내,이기상, 마노 들꽃 주중식 님, 미리내 님, 이기상 교수님, 책을 펴낸 안그라픽스 대표 마노 님이 그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왼쪽부터) |
ⓒ 이윤옥 |
▲ 최한실 <푸른배달말집>을 펴낸 최한실 님이 그간 쌓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
ⓒ 이윤옥 |
▲ 책에 이름을 써주는 한실 <푸른배달말집>을 펴낸 최한실 님이 책에 이름을 써주고 있다. |
ⓒ 이윤옥 |
▲ <푸른배달말집> 책 잔치 <푸른배달말집> 책 잔치에 기쁨을 나누려고 모인 분들, 서울 서초구에 있는 정토사회문화회관 대강당 |
ⓒ 이윤옥 |
<푸른배달말집> 안그라픽스 펴냄, 2024.10. 책값 80,000원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우리문화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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