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 씨앗 갖고 태어나는 아기, 싹 틔워 키우는 건 어른 몫
폴 블룸 지음, 최재천·김수진 옮김
21세기북스, 344쪽, 2만2000원
“도덕 감각 또는 양심은 팔이나 다리처럼 사람의 한 부분이다. 모든 인간이 다 가지고 있지만 사람에 따라 더 강하기도 하고 약하기도 하다. 마치 팔다리의 힘이 사람마다 더 세기도 하고 약하기도 한 것처럼. 이 감각은 훈련을 통해 강화할 수 있다.” 미국 3대 대통령이자 사상가인 토머스 제퍼슨이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한 말이다. 도덕성의 일부는 타고난 것이지만 씨앗일 뿐이고 키워나가야 한다는 책의 주장을 잘 요약했다. 발달심리학자인 저자는 진화생물학, 문화인류학, 행동경제학 등의 다양한 연구 성과를 토대로 도덕성의 근원과 본성을 새롭게 조명한다.
저자는 우선 타고난 도덕적 자질을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각종 심리학적 실험을 통해 입증한다. 한 사람이 공을 가지고 놀다가 굴려 버린다. 공을 굴려 돌려주는(착한) 인형이 있고, 공을 들고 달아나는(나쁜) 인형이 있다. 생후 5개월 아기들은 나쁜 인형보다는 착한 인형을 더 좋아했다. 기본적으로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을 구분하는 도덕 감각을 갖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아기들은 타인의 고통에도 반응한다. 생후 6개월밖에 안 된 아기는 엄마가 우는 척하면 우울한 표정을 짓고, 한 살짜리 아기는 다른 아기들이 괴로워하면 쓰다듬으며 달래준다. 주변 사람들의 고통에 아파하고 고통을 없애고 싶어하는 공감과 연민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기중심적이다. 생후 14개월 영아는 우는 친구를 친구의 엄마가 아니라 자기 엄마에게 데려간다는 실험도 있다. 실험자는 “아이들은 남의 입장이 되는 데 필요한 정교한 인지 능력이 아직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실제로는 나이와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고통을 마주할 때 자기중심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초보적인 의미의 공정심도 갖고 태어난다. 어릴수록 평등 편향이 강하다는 다양한 실험이 소개된다. 세 살 아이들은 자신과 다양한 관련이 있는 두 사람에게 스티커와 막대사탕을 짝수로 나눠주게 하는 실험에서 친구나 가족, 모르는 사람이라도 거의 항상 똑같은 양을 각각 나눠주고 싶어한다. 홀수로 나눠주는 다른 실험에서는 남는 하나를 누군가에게 더 주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을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기의 도덕성은 완벽하지 않다. 달래주기 나눠주기 도와주기 등 본능적인 친절한 행동은 가족이나 친구에게만 향하고, 낯선 사람에게는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어른들은 다르다.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돕는다. 때로는 철저하게 익명일 때도 그렇다.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1965년 미국 뉴헤이븐 지역에서 주소도 적혀 있고 우표도 붙어 있는 편지를 무작위로 뿌렸다. 편지 대부분은 봉투에 적힌 주소로 안전하게 도착했다. ‘착한 사람들’이 편지를 주워 우체통에 넣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런 도덕성이 타고난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우리의 도덕성이 향상된 건 인간의 상호작용과 인간의 독창성이 낳은 결과”라며 “우리는 부분적으로만 도덕적이었던 아기를 매우 도덕적인 어른으로 변화시키는 환경을 만들어 낸다”고 설명한다.
타고난 도덕의 씨앗을 온전하게 키우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최근 실험에서 3~6세 아이들에게 부모가 스탬프 10장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10장 중 1장만 주는 이기적인 부모도 있었고, 9장을 주는 너그러운 부모도 있었다. 아이들은 이기적인 부모를 더 모방하는 경향을 보였다. 아이들은 다른 사람의 착한 행동을 모방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사람’이 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우리의 도덕성은 부모에서 시작해 자신이 속한 문화와 관습을 통해 쌓이고, 문학 작품과 미디어를 통해 더욱 확대된다. 저자는 “아기는 초보적인 이해력을 갖춘 도덕적 동물이지만 우리는 그저 아기로만 그치지 않는 그 이상의 존재”라면서 “우리의 도덕성 가운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부분은 우리의 연민, 우리의 상상력, 우리의 훌륭한 추론 능력의 산물”이라고 강조한다. 책의 원제는 ‘그저 아기일 뿐(Just Babies)’이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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