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의 만남] “유능한 지도자 되려면 ‘소프트 스킬’ 길러라”
자연재해나 테러, 대형 교통사고 등 예상치 못한 위기 상황이 닥치면 지도자의 리더십은 시험대에 오른다. 지도자와 해당 조직의 위기 극복 역량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자리이기도 하다. 미국 헌팅턴대와 테일러대 총장 등을 역임한 유진 하베커(78) 전 미국성서공회(ABS) 회장은 대학과 비영리기구 수장으로 살아온 35년간 이런 경험을 두 차례 겪었다. 2001년 9·11테러와 2006년 테일러대 취임 직전 학생과 교직원이 당한 불의의 교통사고다. 지난달 26일 인천 송도의 한 카페에서 만난 하베커 전 회장은 당시 상황을 생생히 기억했다. 그는 최근 열린 ‘2024 서울·인천 제4차 로잔대회’에서 35~50세의 젊은 기독교계 지도자를 멘토링하기 위해 방한했다.
2001년 9·11테러 당시 ABS 회장이던 하베커 전 회장은 뉴욕의 사무실에서 불과 2~3마일 떨어진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두 번째 비행기가 충돌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봤다. 테러로 대중교통이 마비되자 혼란에 빠진 시민들은 사고 현장에서 ABS 사무실이 있는 미드타운까지 걸어내려왔다. 이들을 마주한 그는 즉시 직원들과 성경 말씀이 담긴 소책자를 제작했다. ‘하나님은 피난처입니다’란 제목의 소책자는 실의에 빠진 뉴욕 시민과 수많은 시신을 수습해야 하는 경찰관과 소방대원에게 배포됐다.
하베커 전 회장은 이를 ‘소프트 스킬’(soft skill)을 활용한 사례로 소개했다. 소프트 스킬이란 전략 수립과 성과 측정 등 정량적 지표를 뜻하는 ‘하드 스킬’(hard skill)과 대비되는 정성적 개념으로 ‘리더십 능력을 끌어올리는 지도자의 행동이나 습관, 태도’를 일컫는다. “유능한 지도자가 되려면 하드 스킬만 연마해서는 충분치 않다”는 내용을 담은 책 ‘부드러운 리더십’(대한기독교서회)의 한국어판을 최근 발간한 그는 “위기 상황에서 지도자에게 진정 필요한 능력은 소프트 스킬”이라고 강조했다.
테일러대 총장 취임식 이틀 전에 발생한 인명사고에서도 하베커 전 회장은 소프트 스킬을 활용해 “공동체에 평안과 희망을 제공하며 혼란을 수습”했다. 졸음운전으로 중앙선을 침범한 트럭과의 충돌 사고로 학생 4명과 교직원 1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였다. 설상가상으로 생존자와 사망자의 이름이 뒤바뀌면서 이 사건은 미국 전역에 알려졌다. 소식을 듣고 대학 강당에 모인 학생과 유가족 수천 명 앞에 선 그가 신임 총장으로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같이 눈물을 흘린 것이었다.
여러 기관의 최고경영자로 일하며 140여개국의 지도자와 교류해온 하베커 전 회장은 “하드 스킬과 소프트 스킬을 고루 갖춘 지도자에겐 ‘견고한 기초’가 있다”고 했다. 결국 “효과적인 리더십은 견고한 기초, 즉 영적 기반을 갖춘 지도자에게서 나온다”는 이야기다. 그는 “영적 기반은 주로 성경 묵상과 기도로 마련되는데 특히 한국의 기독 리더가 이를 잘 갖추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교회가 성경 읽기와 말씀 실천, 열정적인 기도 생활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섬기고 따르는 이를 사랑하는 것’ 역시 소프트 스킬을 갖춘 지도자의 특성이다. 하베커 전 회장은 “가장 위대한 소프트 스킬은 사랑”이라며 이를 실천한 본보기로 ‘예수 그리스도’를 꼽았다. 예수는 “주어진 사명을 따라 사랑으로 제자를 성장시켰고 이들에게 지식과 전문성을 공유했으며 혼란 중에도 이들을 위로하는” 소프트 스킬을 선보였다.(요 17:4)
다만 이는 경영학의 한 이론인 ‘서번트 리더십’과는 거리가 있다고 했다. 서번트 리더십은 자신이 원하는 걸 얻기 위해 섬기는 것이라면 예수의 소프트 스킬은 상대의 반응과 관계없이 “겸손하게 동행하는 섬김”이다. 그는 “가장 중요한 기독 리더의 품성은 3가지다. 겸손과 겸손, 그리고 겸손”이라며 “스스로 겸비(謙卑)한 예수를 따라 사랑으로 겸손의 리더십을 실행한다면 자신뿐 아니라 조직에도 분명 긍정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삶의 여러 영역에서 지도자로 살아가는 한국 기독교인에게 ‘제자도적 리더십’을 키우는 데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인천=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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