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새 둥지를 태우는 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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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원주에 있는 이서 책방에 들른 적 있다.
어미는 둥지에 폭신한 새털을 깔아두고, 바지런히 먹이를 나르며 새끼들을 살뜰히 보살폈나보다.
어미가 편안히 새끼들을 돌보도록 시인도 자리를 비켜주었던 모양이다.
고양이가 딱새 둥지를 습격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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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원주에 있는 이서 책방에 들른 적 있다. 이서화 시인이 꾸린 공간인데, 골목 안쪽에 아담하게 자리한 곳이다. 부슬부슬 비 오는 날 커피를 얻어 마시며 시인이 들려준 이야기가 짙게 남아 여기 옮겨 본다. 시인의 시골집에 딱새가 둥지를 틀었나보다. 사진을 보니 둥지 안에 알이 여섯 개나 들어 있었다. 그중에 네 마리만 부화했고, 털이 보송보송하게 올라온 새끼들이 노란 주둥이를 벌리며 어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미는 둥지에 폭신한 새털을 깔아두고, 바지런히 먹이를 나르며 새끼들을 살뜰히 보살폈나보다. 어미가 편안히 새끼들을 돌보도록 시인도 자리를 비켜주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어느 새벽 딱새 울음소리가 심상치 않아 마당으로 나가보았단다. 어미가 빨랫줄에 앉았다가 지붕 위에 앉았다가, 놀라서 분주히 날더란다. CCTV를 돌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고양이가 딱새 둥지를 습격한 것이었다. 봄부터 딱새를 보아온 기쁨도 컸던 만큼 시인의 상심도 컸을 테다. 시인은 한동안 새끼를 잃은 어미의 울음소리에 귀가 쟁쟁했으리라. 그사이 헛간에 사는 고양이도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다. 어미 고양이도 먹이를 구하러 다니며, 제 새끼에게 젖을 물려야 했을 것이다.
딱새는 다시 오지 않았다고 했다. 빈 둥지를 보며 시인은 얼마나 허전했을까. ‘생태의 이치’야말로 인간의 감정으로 납득하기 힘든 질서다. 하지만 새 둥지를 태우며 맑은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비는 마음도 자연에 포함된 마음일 것이다. 시인의 시처럼 우리는 언제쯤 자연의 이치라는 가혹하고도 높은 뜻을 ‘비로소’ 받아들이게 될까. “그 비로소는 어떤 곳이며 어느 정도의 거리인가/ 비로소까지 도달하려면/ 어떤 일과 현상, 말미암을 지나고/ 또 오랜 기다림 끝에 도착할 것인가.”(‘날씨 하나를 샀다’, 여우난골, 2021) 우리는 이미 그곳을 지나왔는지도 모른다. 망각이라는 시간의 선물이 있기에.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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