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칼럼] 기억의 조작술

2024. 10. 3.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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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광운대 교수

“위증교사인지 직접 판단해 보라.” 이재명 대표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2018년 말과 이듬해 초에 김진성씨(김병량 전 성남시장의 수행비서)와 가졌던 통화의 녹취록을 올렸다.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해 30분 분량의 녹취록을 들어 보았다. 녹취는 이재명 대표가 구사하는 어법의 전형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이 전형성은 녹취만이 아니라 이 사건 재판의 변론에도 자주 눈에 띈다. 그러므로 사건의 이해를 위해 한번 정리하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먼저 눈에 띈 것은 거짓말의 낮은 수준. 거짓말은 모름지기 그럴듯해야 하나, 그의 거짓말은 상식을 벗어난 음모론 수준이다. ‘KBS와 성남시가 짜고 자신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웠다.’ 이걸 믿으라는 건가.

「 이재명 대표 스스로 올린 녹취록
음모론, 허구 주입, 교묘한 압박 등
위증교사의 전형적인 어법 노출
사법 문제를 정치로 풀려는 의도

‘KBS와 성남시의 거래’라는 주장의 근거는 오직 본인의 말뿐이다. “KBS하고 우리 시장님하고는 실제로 얘기가 좀 됐던 건 맞아요.” 물론 법정의 증인신문을 통해 그런 거래는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PD에게 사칭할 검사의 이름을 대주며 ‘불법 취재라 방송이 불가능하다’는 PD를, ‘익명의 제보자에게 받은 걸로 하자’며 설득하고, 직접 그 ‘익명의 제보자’가 되어 사진까지 찍은 것도 본인이 아니었던가. 이것만 봐도 그는 검사사칭의 ‘공범’임에 분명하다.

게다가 그 사건 재판의 2심과 3심에서는 본인도 그것을 주장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문제가 되니 자신도 포기했던 그 주장을 다시 들고나온 셈이다.

둘째, 상대의 기억을 조작하는 것. 그 녹취의 핵심은 대화 상대에게 반복적으로 자신이 창작한 허구를 주입하는 것. 괴벨스의 말대로 거짓말도 끝없이 반복하면 듣는 이의 의식 속에서 진실로 둔갑하는 법이니까.

하지만 없었던 일에 관한 기억이 있을 리 없다. 그래서 김진성씨는 ‘기억에 없다’며, 자신은 당시 회의현장에 없었기에 (KBS와 성남시 사이의 거래를 증언하는 게) “애매할 수 있을 거”라 말한다.

그리고 결정적인 대목이 등장한다.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해주면 되지.” 기억도 없는 이에게, 아예 현장에 없었던 이에게 ‘그런 얘기를 들었다’고 해달라는 것이다. 위증교사의 고전적이며 전형적인 사례다.

반복적 주입으로 거짓말을 기정사실화하고, 상대가 말려들면 서둘러 그걸 둘 사이의 공통의 ‘사실’로 선언하고는, 기억이 없는 상대에게 변론요지서를 보내 증언을 뜯어 맞추도록 유도한 것이다.

셋째, 협박 혹은 압박. 네 번째 녹취에서 이재명은 느닷없이 이상한 얘기를 한다. 김진성씨에게 조서에 ‘누군가에게 3천몇백만 원을 주었다고 적혀 있다던데’라고 말하며 ‘흐흐흐’ 징그럽게 웃는다.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다. 도대체 이 사건과 아무 관계도 없는 다른 사건 얘기를 꺼내는 걸까? 내막은 잘 모르지만 내 귀에 그 말은 ‘내가 너의 약점을 쥐고 있으니 알아서 기라’는 협박으로 들린다.

넷째, 알리바이 만들어 두기. 녹취록에서 앞의 거짓말만큼 강박적으로 반복되는 말이 있다. 사실만 말해 달라는 주문이다. “있는 대로 얘기해 달라”, “없는 사실 얘기할 필요 없다”, “사건을 재구성하자는 게 아니다.”

지시의미(denotation)와 함축의미(connotation)를 뒤섞는 말장난이다. 가령 내가 여행을 간다고 했더니 누군가 농으로 “선물 사오지 말라”고 극구 당부를 한다. 이 말의 지시의미는 ‘사오지 말라’이지만 함축의미는 ‘사오라’는 것.

정말로 ‘사실대로만’ 말해주기를 원했다면 상대가 ‘기억에 없다’고 했을 때 증언 받기를 포기했어야 한다. 그 주문이 30분 동안 12번이나 반복됐다는 것은 외려 그 행위의 불법성을 본인이 잘 알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다섯째, 언어를 혼란시키기. “‘나는 일본사람 아닙니다’에서 ‘아닙니다’를 빼면 내가 일본사람이라고 말한 게 되겠죠.” 사실대로 말해 달라고 한 부분을 뺐으니 검찰의 공소장은 ‘악마의 편집’이라는 것이다.

공소장 안에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으니 ‘편집’은 필수. 하지만 모든 편집이 맥락의 왜곡인 것은 아니다. 실제로 법정에서 녹취록 전체를 재생했지만, 일본사람이 한국사람이 되는 반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여섯째, 나 혼자 살기. 김진성이 위증을 자백하자 그를 대하는 태도가 돌변한다. “김씨와 저는 애증 관계이자 위험한 관계로, 거짓말을 해달라고 요구할 관계가 아니다.” 이 꼬리 자르기에 김씨는 “인간적 배신감”을 토로했다.

2002년 구속 당시 최모 PD는 자신의 구명을 위해 이재명에게 아내를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여긴 왜 왔냐’며 문전박대를 당했단다. 이 꼬리 자르기는 이재명이 관련된 모든 범죄에 등장한다.

그 녹취는 위증교사의 강력한 물증이다. 대부분 그렇게 생각할 게다. 그런데 이 대표는 그걸 스스로 공개했다. 이 비합리적 행동은 이제 전장을 사법이 아닌 정치의 영역으로 옮기겠다는 뜻일 게다.

진중권 광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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