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게임백과사전] 뒤통수 얼얼한 '배신' 캐릭터들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 등 여러 미디어에서 주인공에게 주어지는 시련 중 가장 으뜸은 바로 배신입니다.
'출생의 비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신뢰하는 동료의 '배신'은 독자들의 도파민을 그야말로 폭발시키는데요. 동료의 배신으로 주인공이 나락으로 향하고,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되어 삐뚤어지거나, 영원히 가슴 속에 상처를 안게 되는 등 극적인 변화를 겪는 작품은 손에 꼽을 수도 없이 많죠.
이 배신은 게임에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입니다. 더욱이 드라마나, 영화, 소설은 그냥 보고, 읽는 것에 그치지만, 게임은 해당 캐릭터를 직접 플레이하다가 갑자기 배신당해 아이템이 없어지거나, 이야기 전개가 확 바뀌는 등 더 극적으로 다가오죠.
그렇다면 게임 속에서 아주 인상적인(?) 배신으로 오랫동안 게임 유저들에게 길이길이 이름을 남긴 캐릭터는 무엇이 있을까요?
[“나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파판4 - 카인 하이윈드]
1991년 발매된 '파이널판타지4'에는 게임 역사에 길이 남을 배신자가 등장합니다. 바로 게임 초반부터 등장하는 '카이 하이윈드'가 그 주인공이죠.
'카이'는 주인공 ‘세실’의 아주 절친한 친구로 군사 국가 바론의 용기사단 대장직을 맡고 있는 인물인데, 사실 주인공의 연인인 '로사'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게임에서 '카이'는 주인공과 임무 수행 도중 큰 공격을 받고 행방불명되는데, 이때 이 게임의 흑막이었던 '골베자'에게 세뇌되어 버립니다.
이후 다시 돌아와 주인공 일행과 함께 모험을 하던 ‘카이’는 ‘골베자’의 속삭임에 괴로워하고, 괜찮냐는 주인공 일행의 걱정에 “나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라는 외침과 함께 ‘로사’를 공격해 중요한 아이템을 빼앗고 달아나죠. 결국 이런저런 일 속에 ‘골베자’의 지배에서 벗어나 다시 아군으로 합류. 최종 보스전까지 함께하는 동료가 되지만, 엔딩에서 주인공과 ‘로사’의 결혼식에 참가하지 않고, 홀로 수련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여기까지 보면 배신은 했지만, 동료로 다시 돌아온 만큼 행보가 그리 인상적이지 않을 수 있지만, ‘카이’는 일본 RPG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바로 배신 캐릭터의 클리세를 완성 시킨 캐릭터라는 것이죠.
우선 ‘카이’는 게임 주인공의 친구로, 초반부터 강력한 능력치를 지니고 있고, 얼굴을 가리고 등장합니다. 여기에 주인공의 연인을 사모하는 삼각관계이기도 하고, 주인공에게 밀린 2인자인데다. 스토리 중반 잠시 사라지죠. 거기다 왼손잡이라는 특징도 있습니다.
이 ‘카이’의 캐릭터 특징은 이후 게임에 지대한 영향을 주어 숱한 배신자 캐릭터들이 저 특징을 지닌 채 등장했습니다. 그래서 “주인공 절친인데 히로인을 좋아해? 얼굴을 가려? 근데 왼손잡이!”와 같이 ‘카이’의 특징과 2개 이상 겹치는 캐릭터가 등장하면 의심부터 하고 일부러 육성하지 않거나 좋은 장비를 장착해 주지 않는 경우도 많았죠.
실제로 지금도 일본 RPG 팬들에게 “최고의 배신 캐릭터는 누구?”라는 질문을 하면 단연 '카이 하이윈드'가 한 손에 꼽히고 있고, 저 “나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라는 대사는 다양한 곳에서 패러디되어 사용되고 있기도 하죠.
[“RPG에 왜 사랑과 전쟁이..” 바하무트 라군- ‘요요’]
스퀘어(현 스퀘어에닉스)에서 1996년 발매한 ‘바하무트 라군’은 여러모로 큰 충격을 준 작품인데요. 이미 PS1이나, 세가 세턴이 나온 시기에 슈퍼패미컴으로 나온 탓에 그래픽은 그리 좋지 못했지만, 아주 충격적인 스토리를 보여줬기 때문이었죠.
바로 주인공의 소꿉친구이자, 히로인 위치의 캐릭터 ‘요요’ 때문이었습니다. ‘요요’는 주인공의 친구로 별 도움 안 되는 떼쟁이 포지션에서 신룡을 각성시키며, 힐과 광역 마법을 가진 어엿한 전투 파티로 성장하면서 주인공의 사랑을 받아주는 히로인으로 가는 듯했는데...
1막부터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데다 국가까지 멸망시킨 장군 파르파레오스와 이상한 분위기를 연출하더니, 주인공과 추억이 담긴 교회까지 같이 용을 타고 가서 “우리들은 이제부터 시작이야”라는 엄청난 반전을 보여줍니다. 특히, 이 교회는 주인공의 용인 ‘샐러맨더’를 타고 함께 날면서 ‘다시 돌아오자’라고 약속을 한 곳인데, 파르파레오스와 용을 타고 교회를 돌면서 “와! 샐러맨더 보다 빨라!”라고 말을 하기도 했죠. 마치 주인공은 안중에도 없는 듯..
이후 파르파레오스와 같은 방을 쓰는데, 신룡의 시련이 끝났음에도 방에서 신음소리가 난다거나, 이 사건 이후 캐릭터 모습이 어른스럽게 변화하는 등 여러모로 엄청난 메시지를 줍니다.(이상한 소리가 난다고 해서 방에 들어가면 침대에서 둘이 같이 폴짝 뛰어내리는 장면도 등장...)
본 기자 역시 당시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일본어를 몰라서 파악이 안 됐지만, 나중에 공략집을 보고 “아 그래서 침대에서 뛰쳐나온 거였어? 그래서 캐릭터가 어른스러워진 거야?”라고 너무나 놀랐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요요’는 지금도 '스퀘어의 3대 악녀’라는 타이틀을 만든 장본인으로 불리고 있는데요, 차라리 그냥 다른 진영으로 배신해서 그냥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게 나을 정도네요.
[“니들 때문에 주인공 흑화했잖아!!” 라이브어라이브 알리시아 & 스트레이보우]
1994년 출시한 ‘라이브 어 라이브’에서 등장하는 알리시아와 스트레이보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이 중 ‘알리시아’는 직접적인 배신을 한 것은 아니지만, 주인공의 흑화를 일으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데다 워낙 악명이 높아서 위에 ‘요요’와 함께 스퀘어 3대 악녀로 불리는 인지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라이브 어 라이브’ 중세편의 주인공 ‘올스테드’는 왕국의 공주 알리시아를 납치한 마왕을 찾아 모험을 떠나게 되는데, 어린 시절부터 친구이지만 주인공보다 한 수 아래인 2인자 소리를 듣는 ‘스트레이보우’와 함께하게 됩니다.(어디서 많이 보던 배경)
주인공 일행은 가짜 마왕을 물리치지만 ‘스트레이보우’는 탈출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성에 깔리게 되는데, 이것은 예전부터 주인공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던 ‘스트레이보우’가 일부러 연출한 것이고, 몰래 왕국으로 돌아와 주인공에게 환각을 걸어 왕을 살해하도록 만들죠.
결국 환각에서 벗어난 ‘올스테드’는 친구의 희생 속에서 마왕산에 올라 온갖 찌질한 말을 내뱉던 ‘스트레이보우’를 물리치는데, 뜬금없이 일리시아 공주가 ‘스트레이보우’를 감쌈과 동시에 주인공을 원망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배신으로 친구를 베었고, 모시던 왕녀까지 자기를 원망하며 목숨을 끊자 주인공 ‘올스테드’는 인간에 대한 절망과 혐오로 흑화하게 되었고, 결국 마왕 ‘오디오’로 각성하게 됩니다. 이 마왕 ‘오디오’를 물리치는 것이 바로 게임의 마지막 스테이지 ‘최종편’입니다.
이 알리시아가 ‘스트레이보우’를 언제부터 좋아하게 된 건지는 자세하게 설명되지 않는데요. 거기다 이 중세편이 ‘일리시아’ 하나만 보고 진행이 되는데, 갑자기 목숨을 끊어서 당시에 상당한 충격과 함께 “아니 근데 왜 죽어?”라는 의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 이외에도 아버지는 정통적인 배신을, 아들은 배신할 것 같은데 배신을 하지 않는 배신(?)을 한 스타의 멩스크 부자나, 든든한 아군에서 “죽고 싶지 않으면 저항해 봐라.”라는 명대사와 함께 시원하게 배신한 ‘슈로대 알파’의 잉그램 등 다양한 배신 캐릭터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히로인인 인줄 알고 금이야 옥이야 키웠더니 두 번째 CD를 넣자마자 사망하는 파판7의 ‘에어리스’나 기껏 목숨 걸고 자료 갖다줬더니 갑자기 고스트를 쏴버린 셰퍼드 대령 등 다양한 캐릭터가 생각도 나네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인상적인 배신캐는 또 무엇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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