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칼럼] 카멀라의 유쾌한 도전

최훈 2024. 9. 30.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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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주필

키 158㎝에 청바지 차림. 미국 부통령 카멀라가 아이들과 춤추는 37초 유튜브는 수백만 조회를 넘어섰다. 유쾌한 막춤이다. 트럼프 지지의 골통 보수들은 “경박하다”는 냉소를 아끼지 않는다. 최근엔 “(내 어머니가 자주 말하시길) 너는 네가 그저 코코넛 나무에서 뚝 떨어져 태어난 줄 아니. 너희는 지금의 모든 것과 이전의 모든 것, 그 맥락 속에서 존재하는 거란다”며 웃음 터진 카멀라의 틱톡 밈이 수백만 클릭이다. 힌두교의 ‘윤회’도 떠오른다. 놓칠세라 트럼프가 “웃음 헤픈, 제 정신 아닌 여자”라고 인상 쓰자 카멀라 지지자들은 이 밈을 퍼나르며 그를 ‘꼰대’로 만들어 간다.

인도(모)·자메이카(부)를 섞어 받은 1964년생 비백인 여성의 미 대통령 도전은 역사적이다. 68혁명 세대인 47년생 힐러리가 첫 도전에 실패한 뒤 그녀보다 더한 마이너리티가 주류 백인 남성 트럼프에게 재도전이다. 카멀라의 말대로 ‘그녀의 맥락(context)’을 탐구하는 데서 이 도전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겠다.

지난 25일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펜실베이니아주 카네기 멜런대 유세장에서 경제정책에 관한 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 비백인 여성의 첫 미 대통령 도전
여성성·진보·문제해결형 검사 등
모든 측면서 트럼프와 역사적 대척
‘카멀라 맥락’ 이해가 최선의 접근법

#여성, 그리고 어머니=Kamala Devi Harris란 풀 네임 중 가장 선명한 그녀는 카멀라다. 산스크리트어로 ‘연꽃’. 그녀는 “혼탁한 수중의 바닥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자라 수면 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고 설명한다. 데비란 힌두교의 최고 여신. 조혼·지참금의 인도는 성평등지수가 가장 낮은 국가였다. 마누 법전은 여성을 ‘미숙하고 독립 불가능한’ 존재쯤으로 여겼다. 아내 순장의 사티(Sati)가 미덕이었다. 이런 ‘폄하’와 여성성에 대한 ‘숭상’이 묘하게 공존했다. “여신처럼 내 딸이 강하게 자라 연꽃처럼 피어나길 바랐다”는 게 이 유방암 의학자의 LA타임스 인터뷰였다.

멘토 샤말라는 “누구도 네가 누구인지 말 못하게 해. 네가 누구인지는 오직 네가 말해야 돼. ‘너무 어렵다’는 절대 변명일 수 없어”라고 주문했다. “넌 많은 첫 번째가 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절대 마지막은 되지 말아라(You may be the first. Don’t Be the last)”였다. 카멀라는 “키 152㎝ 어머니가 185㎝ 같았다”고 했다. 그녀의 취미는 뉴욕타임스 등의 요리 레시피 따라 만들기. 역시 요리를 즐기던 어머니는 인도 최고 계급 브라만 혈통이다. “사람 먹는 요리는 신성한 손으로”란 믿음에 인도 요리사 상당수가 브라만인 연(緣)도 모녀의 DNA를 느끼게 해준다. 각 재료의 식감·풍미를 고루 살리며 소스를 잘 배게 해 절제된 플레이팅에까지 정성이 필요한 조화·융합의 예술 ‘요리’란 정치의 목적과도 많이 닮아 있다.

2019년 4월 카말라 해리스 캠페인에서 공개된 샤말라 고팔란(25세)과 카멀라 해리스의 사진. AP=연합뉴스


#모태 진보=유모차의 다섯 살 아이는 민권의 에너지 가득한 샌프란시스코의 시위 한복판에 있었다. 칭얼대는 아가에게 “뭘 해줄까” 달래자 카멀라가 “Fee-dom”이라곤 했다는 게 어머니의 기억. “자유(Freedom)”의 외침 속에 아가까지 “다~유”라 웅얼거렸다.

13세 때 아파트 놀이터의 잔디밭 봉쇄에 대한 항의 시위로 개방을 이끈 게 첫 승리였다. 그녀는 “작은 행동부터 사람들이 단결하면 어떤 변화가 오는지 깨달았다”고 했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 뒤의 서민주택 줄압류에 카멀라 캘리포니아 법무장관은 막강한 월스트리트 권력인 JP모건 체이스 등 5대 은행과 ‘맞장’을 뜬다. 200억 달러를 따내 오며 압류반대법을 통과시켰다. 당시 그녀의 원군이던 바이든 대통령의 아들 보(델라웨어 법무장관, 2015년 별세)와의 우정은 행운이었다. 바이든은 “먼저 간 보의 그녀에 대한 얘기를 가장 중시했다”며 카멀라를 부통령에 앉혔다. 진보가 문제가 아니라 ‘일류’ 진보 정치인이 잘 보이지 않는 우리 정치야 못내 아쉽다.

지난 2일(현지시간) 미국 대선 경합주인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열린 공동 유세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껴안는 조 바이든 대통령. UPI=연합뉴스

#‘문제 해결자’ 검사 26년=인권 침해 트라우마의 어머니는 검사엔 반대였다. 카멀라의 답. “이해하나 시스템을 고치려면 그 안에 들어가야겠어요. 난 ‘이 방에 없는 사람들’을 포식자들로부터 보호하렵니다.” 사형제 폐지 소신에 따라 경찰관 살해범에게 종신형을 구형하며 경찰의 따돌림도 당했다. 반면에 ‘무조건 투옥’보다 죄의 재발을 줄이자는 ‘범죄기록 말소’ ‘가혹한 삼진아웃법 개혁’ ‘약물남용 예방 중심 마약 대응’ 등 형사사법 개혁에 전력했다. 실용적이자 스마트했다. 인권 시비, 정치 외압 불공정과 수직적 복종에 갇혀 늘 자기개혁을 놓쳐 온 우리 검찰이야 못내 아쉽다.

#동맹, 그리고 우리=“마르크스주의자(도널드 해리스 전 스탠퍼드대 경제학 교수)가 잘 가르친 딸”이란 트럼프의 색깔론에 카멀라는 “중산층·서민을 위할 뿐 난 자본주의 지지”라고 맞선다. 둘의 가장 선명한 차이는 동맹관. 카멀라는 “미국이 뭘 위해 힘쓰고 피흘려 왔는지 잊어선 안 된다”며 “평화·협력의 국제 질서, 민주주의에의 헌신, 섬겨야 할 이들 아닌 자기 이익만 위해 통치하는 독재자의 배제”를 내걸었다. “미국 홀로는 안 돼. 이 가치를 공유한 동맹과의 동반이 최선”이란 소신이다. 오바마와 가장 닮은꼴인 카멀라에게의 접근법은 그녀의 삶에 대한 충분한 이해일 수밖에는 없겠다. 그 유쾌한 ‘유리천장’ 도전이 36일 남았다.

최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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