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철의 시시각각] 검찰 개혁 도돌이표
2017년 8월 초, 문무일 검찰총장은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검찰 개혁안을 발표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 도입이었다. 채동욱 전 총장이 혼외자 논란으로 물러난 뒤 검찰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통제에 순응했다.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국정농단 사건의 전초전이었던 정윤회 의혹 무마, 김학의 전 차관 성접대 의혹 무혐의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해 물러나자 검찰에도 비판이 쏟아졌다. 헌법에 보장된 기소독점의 권한을 외부 인사들로부터 검증받겠다는 파격을 검찰 스스로 내놓은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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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품백 사건 하나에 수심위 두 차례
권고 엇갈려도 검찰은 무혐의 고수
권력 눈치 검찰, 개혁 압력 더 커져
」
물론 새 제도가 도입된다고 바로 체질이 바뀌진 않는다. 이전에도 검찰권 남용에 대한 비판이 거셀 때마다 자의든, 타의든 개혁안이 나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제자리로 복귀하곤 했다. 완전한 회귀가 어려우면 개혁 방안의 껍데기만 남기고 내용은 과거로 되돌아갔다. 그때마다 눈길을 끄는 대형 수사가 나와 검찰 입지를 다졌다. “그래, 검찰이 없으면 거악은 누가 척결하겠나”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순간, 승부는 결정났다. 수심위도 7년 만에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
지난주까지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사건에 대한 수심위가 두 차례 열렸다. 한 사건 두 수심위라는 외양도 전례가 없는데, 피의자는 자신의 죄를 물어달라고 요구하고 검찰은 죄가 안 된다고 역설하는 모양새도 고약했다. 이를 논의한 두 수심위의 결론마저 달리 나왔다. 이쯤 되면 검찰은 법원의 판단을 구해 보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지난주 심우정 검찰총장에게 최종 수사 결론을 보고했다. 양쪽 다 불기소하겠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심 총장 역시 별 이견이 없어 보인다. 여론은 들끓는데 검찰 수뇌부는 정해진 결론을 향해 가고 있다.
그렇다고 검찰의 곤란한 상황이 다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여론을 전혀 고려치 않는 수사 결론은 특검의 명분만 키웠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도 계좌를 빌려준 다른 전주가 방조범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상, 김 여사를 불기소 처분하려면 또 한번 수심위 개최가 불가피해 보인다. 집권 4년 차쯤에 나올 법한 대통령 지지율 탓에 잠복해 있던 문제가 폭로돼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시점도 빨라졌다. 관사 이전 문제나 공천 개입 문제는 이미 가시권에 들어왔다. 또 어떤 문제가 터질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때마다 상식과 어긋나는 결정이 반복되다 보면 근본적인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검찰개혁 도돌이표다.
문재인 정부는 검찰 수사권 박탈이라는 방안을 추진했다. 하지만 자신들을 겨냥하는 수사의 칼날만 어떻게든 피해보려는 얄팍한 의도가 빤히 들여다보인 탓에 검찰의 반발을 넘지 못했다. 경찰의 수사 역량을 고려하지 않고 서두르다 부작용만 도드라졌다. 결국 민심을 잃고 정권까지 내줬다. 최근 민주당이 추진하는 ‘법 왜곡죄’ 역시 비슷해 보인다. 형법상 직권남용과 직무유기죄로 처벌할 수 있는데 굳이 새로운 조항을 만드는 것은 이재명 대표를 수사하고 재판하는 검사와 판사를 겁박하겠다는 의도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러나 대안이 부실하다고 원인마저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다. 권력자와 자기 식구에게만 한없이 너그러운 검찰의 행태는 언제든 개혁 요구로 돌아올 것이 분명하다. 기소배심제일 수도 있고, 공소청으로의 전환이 될 수도 있다. 더구나 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이 권력의 부당한 요구에 저항하는 모습에 환호했던 국민은 요즘 실망이 더 크다. ‘사람에게 복종하지 않는다’ ‘수사를 가지고 보복하면 깡패지 검찰이냐’ 같은 아름다운 말은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자각이 고스란히 검찰에 투영된다. 다음 대통령에 누가 당선되더라도 검찰을 대놓고 두둔하기는 어렵게 됐다. 검찰이 다음에는 개혁의 압력을 어떻게 회피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최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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