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여당 대표와 독대도 못 하는 대통령

이종선 2024. 9. 30.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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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선 정치부 기자

'알리바이 정치' 되돌아보고
무슨 말 하는지 들어는 봐야
감정 싸움, 국민이 불행한 일

언론 입장에서 싸움 이야기만큼 흥미진진하고 기사 쓰기 좋은 소재도 드물다. 하지만 어떤 싸움은 그런 것과는 별개로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걱정이 드는데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 간 싸움이 딱 그렇다.

두 사람 간 갈등이야 이미 지난 총선에서부터 여러 차례 불거진 만큼 새삼스럽지 않지만 최근 ‘독대(獨對)’를 두고 불거진 다툼은 여러 측면에서 괴이하다. 일반적으로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는 수시로 여러 정보와 의견을 주고받는데 여당 대표가 굳이 독대를 요청한 것도, 독대를 요청한 게 언론을 통해 사전에 보도된 것도 이례적이었다. 그러다 보니 ‘무슨 얘기를 하려고 독대를 요청했을까’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게 됐고, 대통령과 여당 대표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도 드러나게 됐다. 독대 요청 보도에 대해 대통령실의 불쾌감 내지는 당혹스러운 분위기가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다만 지난 24일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만찬 이후에도 독대 논란의 여진이 이어지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한 대표와 가까운 여당 주요 당직자가 ‘가을밤을 즐기는 여유로운 분위기였다’고 만찬 분위기를 전한 한 참석자에 대해 “성질 같아선 가서 싸대기 한 대 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표현하면서 독대 논란은 여권 내 친윤(친윤석열)-친한(친한동훈) 인사들 간 감정싸움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그러나 지금 여권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은 그런 문제로 감정싸움이나 할 만큼 녹록지 않다.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최근 들어 김건희 여사 관련 여러 의혹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야당은 이런 논란에 불을 지피기 위해 다음 달 7일 시작되는 국정감사에서 김 여사 관련 의혹에 화력을 집중하려 하고 있다.

의료개혁에 대한 의료계 반발로 몇 달째 이어진 의료대란 우려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다. 지난 추석 연휴 때는 의사들의 헌신과 정부의 조치에 힘입어 의료대란을 막아냈지만 앞으로는 어찌할 것인가. 의료계 안팎에서도 호흡기 환자가 늘어날 겨울과 신규 의사 공급이 거의 끊기는 내년부터 진짜 문제가 터진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어떤 해결책을 가졌는지 아직 듣지 못했다.

여러 국정 난맥상의 책임은 궁극적으로 대통령에게 향하게 된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이미 냉랭하다. 한국갤럽의 최근 조사에서는 여권 텃밭이라는 대구·경북에서도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해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60%)이 ‘잘하고 있다’(31%)를 압도했다. 이러니 여권 내부에서조차 “대통령이 총선 패배 이후에 뭘 배운 건지 모르겠다”는 한숨이 나오는 것이다.

꼬인 매듭을 풀려면 먼저 대통령이 손을 내밀어야 한다. 독대 요청이 어떻게 언론을 탔는지 따지기에 앞서 여당 대표가 독대를 청하면서까지 논의하려던 게 무엇인지 만나서 들어는 봐야 할 것 아닌가.

한 대표 역시 ‘알리바이 정치’로 불리는 소통 방식을 되돌아봐야 한다. ‘국민 눈높이’를 강조해온 한 대표가 김경수 전 경남지사 복권이나 의·정 갈등 등 대통령과 여론의 온도 차가 있는 현안에서 대통령과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는 얘기가 언론에 흘러나오면서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가 더 부각됐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독대가 이뤄지더라도 한 대표의 건의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면 대통령이 그대로 이행해도 한 대표의 공이 되고, 대통령이 수용하지 않으면 대통령 이미지만 악화하기 때문에 대통령이 독대를 거부했다는 해석도 있다.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두는 한 대표 입장에서 윤 대통령과 차별화가 불가피하겠지만 우선은 여권이 당면한 파고를 넘는 게 대통령과의 차별화보다 더 시급한 일이다.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대도 녹록지 않은 여건에서 사소한 일로 감정싸움만 벌이는 건 여권을 넘어 국민에게 불행한 일 아닌가.

이종선 정치부 기자 rememb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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