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임종석의 두 국가론과 한반도 평화체제
민주당에서조차 비판 쏟아져
과도한 ‘색깔론’ 없지 않지만
‘민족주의적 평화론’에 머물러
대륙·해양 세력 접점서 벌어진
지정학적 역학관계 이해해야
문재인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장을 했던 임종석 전 실장이 뉴스의 중심에 섰다. 9·19 평양공동선언 6주년 기념식 때 했던 “통일, 하지 맙시다” 발언 때문이다. 지난 24일에는 윤석열 대통령도 비판에 가세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평생을 통일운동에 매진하면서 통일이 인생의 목표인 것처럼 이야기하던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두 국가론’을 주장하자 자신들의 주장을 급선회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민주당도 비판에 가세했다. 이해식 당대표 비서실장은 “헌법정신에 위배되고 당 강령과도 맞지 않는 주장이며 평화통일을 추진하는 그간의 정치적 합의와도 배치된다”며 비판했다. 임 전 실장은 윤 대통령과 민주당의 비판을 동시에 받는 상황이 됐다. 도대체 어떤 주장이길래. 임 전 실장의 발표 전문(全文)을 직접 읽어봤다. 주장에 대한 동의 여부를 떠나 최소한 북한 주장에 동조한다는 비판은 과도한 색깔론이다.
윤 대통령은 8·15 때 ‘통일 독트린’을 발표했다. ‘자유통일’에 대한 지향을 분명히 한 내용이었다. 사실상 흡수통일을 추진하자는 내용이었다. 한국은 핵을 보유한 북한을 군사적으로 흡수통일할 능력도 안 되고, 그럴 필요도 없다. 아주 먼 미래는 모르겠으나 당분간은 ‘흡수통일론’ 자체가 비현실적인 주장이다. 불필요한 군사적 긴장만 고조시킬 뿐이다.
다시 돌아와서, 임 전 실장의 주장은 타당한 것일까. 문제의식으로 이해할 부분과 비판 지점이 공존한다. 임 전 실장의 기본 문제의식은 ‘통일 노력은 오히려 긴장 고조로 연결되니 당분간은 통일을 포기하고 두 개의 국가론을 인정하자’는 것으로 집약된다. 이와 유사한 주장은 김대중정부 출범 이후 ‘사실상의 통일론(de facto unification)’으로 제출된 적이 있다. 통일 그 자체를 추진하기보다 ‘평화 공존’에 집중하면 그게 바로 사실상의 통일이라는 논리였다. 그러나 임 전 실장의 주장은 사실상의 통일론과 구분된다. 헌법 3조의 영토조항 폐지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분단을 인정하는 ‘두 개의 국가론’이다.
그렇다면 임 전 실장의 주장처럼 통일을 포기하고 헌법을 개정해 두 개의 국가를 인정하면 한반도 평화체제는 정말로 실현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가장 중요하다. 이 질문은 한반도 분단의 본질이 무엇인지, 통일은 언제 가능한지, 한반도 평화체제는 어떻게 가능한지와도 직결된다.
사회과학에서는 구조의 본질을 알기 위해 최초의 발생 시점으로 되돌아가는 게 효과적인 경우가 있다. 한반도 분단도 같은 경우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한반도 분단은 남과 북의 ‘정부 수립 이전’에 발생했다는 점이다. 결론부터 말해 분단, 통일, 한반도 평화체제는 모두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와 연결돼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한반도 분단 과정부터 살펴보자. 1945년 8월 일본의 패망 즈음, 미군은 아직 한반도에 도착하지 못했는데 소련군이 먼저 진군했다. 소련군이 한반도 전체를 점령할 기세였다. 미국은 38선을 제안했고 소련이 수락했다. 1945년 8월 13일부터 26일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한반도가 ‘분단된’ 이유다.
같은 이유로 1950년 한국전쟁은 내전이자 동시에 국제전이었다. 북한의 남침은 소련과 중국의 동의 및 지원하에 이뤄졌다. 미국이 주도한 유엔군의 참전, 중공군의 개입, 1953년 휴전협정 체결 과정은 모두 국제정치학적 역학관계의 산물이었다. 한반도는 소련·중국의 대륙세력과 미국·일본의 해양세력이 마주치는 지정학적 단층선에 위치하고 있다. 분단과 한국전쟁은 냉전의 시작이라는 시간축과 한반도라는 공간축이 만나 벌어졌던 사건이다.
한반도 분단도, 한반도 평화체제도, 먼 미래의 통일도 남과 북의 문제로 바라봐선 안 된다. 임 전 실장은 한반도 분단을 남과 북의 문제로만 사고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를테면 민족주의적 평화론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반도 문제를 국제정치적 역학관계와 연동해 사고하는 것이다. 지정학적 평화론이 필요하다. 군사독재 유지법을 만든다고 군사독재가 지속되지 않듯 통일부를 없앤다고 통일의 열망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정학적 평화론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 한국을 위협하는 것은 북한·러시아·중국의 연대가 강화되는 것이다. 한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도 과거보다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가 필요한 이유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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