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직의 이코노믹스] 의사 절대 수 적지만 의료서비스 공급량·수준 세계 최고

2024. 9. 30.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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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보건 통계로 본 의사 부족 논란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의정 대립 속에 의료사태가 장기화하면서 환자와 국민의 고통이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 심각한 의정 대립을 불러온 원인은 우리나라 의사 수 부족에 대한 견해차다. 지금이라도 과연 의사 수가 부족한지에 대해 모든 국민이 공감하는 객관적인 답을 도출할 수 있다면 지난 7개월을 끈 의정 대립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정부나 의사 어느 쪽도 아닌 객관적인 자료에 입각한 경제학적 분석이 도움될 수도 있다. 선입견 없이 오로지 데이터, 특히 2024년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보건 통계(Health Statistics) 데이터에 입각해 건설적 논의를 시작해보자.

의사 부족 문제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먼저 인구 1인당 의사 수를 확인해야 한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의사는 질병의 진단과 치료 같은 의료서비스를 생산하는 노동자다. OECD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1년 기준 13만명의 의사가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고 있다. 이를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로 환산하면 2.6명으로 OECD 평균인 3.7명보다 훨씬 낮다.

「 한국, 인구 1000명당 의사 2.6명
OECD 평균인 3.7명보다는 적어

환자 연간 진료 횟수, OECD 2배
암환자 생존율, 회원국 최상위권

의료 장비 투입, 자본집약적 방식
의사 크게 부족하다기는 어려워

만약 의사 수에 비례해서 의료서비스가 생산된다면, 우리나라는 의사 수가 적은 만큼 의료서비스도 과소하게 공급될 것이고 이 경우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게 된다. 이런 인식이 정부가 의사 수를 늘리려 한 근거였을 것이다.

다음 단계로는 적은 의사 수만큼 의료서비스가 실제로 과소하게 공급되는지를 데이터로 확인해야 한다. 이를 위한 하나의 지표로 국민이 1년 동안 진료받은 의료서비스의 양을 측정할 필요가 있다. 의료서비스의 양을 측정하기 위한 기초적인 방법으로 국민 개개인이 의사를 만나 진료받은 횟수를 고려해보자.

국민 진료 횟수, OECD 평균 2배
OECD 국가에서 국민 한 사람이 의사에게 진료받은 횟수는 평균적으로 연간 8회다. 만약 의사 수에 비례해서 의료서비스가 생산된다면, 인구당 의사 수가 적은 우리나라 국민 한 사람의 의사 진료 횟수는 OECD 평균보다 적은 연간 6회 미만이어야 한다.

박경민 기자

실제로 데이터를 보면 우리 국민 한 사람이 진료받은 횟수는 연평균 16회로 OECD 평균에 비해 두 배나 된다. 상대적으로 적은 의사가 투입되면서도 국민 한 명이 진료받은 횟수로 측정한 의료서비스 생산은 놀랍게도 OECD 1위 수준이다. 이를 의사 1인당 의료서비스 생산량, 즉 노동 생산성으로 환산해 보면 대략 6000회다. 이렇게 진료 횟수를 기준으로 측정하면 우리나라 의사는 OECD 평균보다 3배나 높은 노동생산성을 보인다.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의사의 노동생산성이 3배나 된다면, 의사 수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이 필요로 하는 의료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만큼 의사 수가 크게 부족하다고 말하기는 어렵게 된다.

물론 의사 1인당 연간 6000회라는 많은 수의 진료가 과연 환자의 성공적인 치료로 이어지는지 의료 생산의 품질도 평가해야 한다. 많은 진료 양으로 인해 오히려 진료의 질에서 커다란 저하가 있다면 이는 궁극적으로 의사 부족을 뒷받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음 단계로 진료 양 증가에 따른 진료 서비스의 질 저하가 있는지도 데이터로 평가해야 한다. 즉 진료 횟수만 아니라 치료 성공률 같은 치료 효과도 평가해야 한다.

박경민 기자

OECD 데이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암환자의 5년 생존율은 OECD 국가 중 최상위에 위치한다. 위암과 대장암의 5년 생존율이 1위고, 폐암 5년 생존율은 3위다. 이는 진료의 질까지 반영한 의료서비스 생산량도 다른 나라에 비해 결코 낮지 않음을 시사한다. 종합적으로 볼 때 우리 의사 수가 인구당 비율은 낮지만 높은 생산성과 질적 수준까지 감안해 보면 크게 부족하지는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상대적으로 의사 수가 적음에도 OECD 최상위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공급할 수 있는 이유는 의사 수는 적지만 기계 장비를 많이 이용하는 자본 집약적인 생산 방식을 이용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박경민 기자

자본 집약적 방법을 택하면 의사 한 명당 의료생산량이 많아진다. 특히 의료 기계와 진단 장비의 투입을 늘리면 의사가 환자를 보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예를 들어 위가 아픈 환자에게 의사가 문진하고 위산 억제제를 처방한 뒤 3~4주 뒤에 약의 효과가 나는지 아닌지를 보면서 진단하는 대신 위내시경을 이용하면 1시간 만에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이렇게 기계를 이용해 환자 보는 진료 시간을 줄이면 의사 한 명이 진료할 수 있는 환자 수가 증가해 적은 수의 의사로도 많은 수의 환자를 돌볼 수 있게 된다.

박경민 기자

실제로 의료 기계를 이용하는 비율에서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최상위 수준이다. 컴퓨터 단층(CT)을 이용한 진단 검사는 인구 1000명당 280회로 OECD 평균인 160회에 비해 거의 두 배 정도 많다. 인구 100만명당 CT와 자기공명영상(MRI), 맘모그래프(MG) 기계 수도 미국에 이어 OECD 2위다. 우리 의료 산업은 매우 기계 집약적인 생산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3분 치료’와 필수 의료 문제 풀어야
이상의 과정을 통해 데이터가 말해주는 제반 증거를 편견 없이 검토해 보면, 우리나라 의사 수가 크게 부족하다는 주장을 지지하는 객관적인 증거를 찾기는 그다지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인구당 의사 수가 OECD 평균에 비해 적지만 다량의 의료 기계를 투입하는 자본 집약적, 시간 절약적 생산 방식을 사용해 어떤 OECD 국가보다도 많은 양의 국민 1인당 의료 서비스를 생산 공급하고 있다고 보인다. 따라서 국민이 필요로 하는 의료서비스를 공급 못 할 만큼 의사 수가 크게 부족하다고 결론 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3분 진료’로 상징되는 짧은 진료 시간으로 인해 우리 의료서비스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국민도 존재한다. 짧은 진료 시간이 진단과 치료라는 핵심 의료 서비스의 공급 부족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지만 의료계 역시 국민의 불만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또한 전체 의사 수는 크게 부족하지 않더라도, 중증 필수 의료 분야나 소아청소년과와 산부인과 등 일부 분야와 지방 의사 부족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할 의료개혁 과제다. 의료 부문 간 및 지역 간 의사 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적의 인센티브 시스템 고안 등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야 할 의료개혁 과제는 산적해 있다. 정부와 의료계는 그간의 입장 차이와 감정적 앙금을 뒤로하고 오로지 국민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하루속히 머리를 맞대고 해법 모색에 나서기를 기대한다.

■ 인간 의사 vs 아바타 AI 의사

「 의료서비스의 핵심은 진단과 치료다. 그러나 환자들은 의사로부터 질병과 치료 방법에 대한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도 기대하는데, 현재의 ‘3분 진료’로는 이것까지 충족시키기 어렵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안할 아이디어는 급속히 발달하는 인공지능(AI) 기법을 활용한 ‘아바타 AI 의사’다.

개별 의사마다 자신의 AI 의사를 만들어, 이 아바타 AI가 컴퓨터 화면 등을 통해 환자의 질환과 치료 방법, 결과 등에 대해 설명하고 환자의 질문에 답하며 면담을 분담케 하자는 아이디어다.

의사들은 자신의 아바타 AI에게 글로벌 표준치료법과 자신만의 치료법을 미리 학습시켜 놓는다. 본인의 얼굴과 목소리도 입력시켜 최대한 본인과 비슷하게 만들어 환자가 신뢰를 갖게 한다. 의사 본인의 짧은 대면 진료에 더해 이런 아바타 의사가 컴퓨터나 핸드폰 등으로 추가 면담을 함으로써 환자가 충분한 설명을 듣고 위안도 받을 수 있다. 법과 제도 및 인식의 변화가 선행돼야 하지만 아바타 의사가 도입되면, 인간 의사는 자기복제를 통해 시간 제약 없이 수많은 환자를 동시에 볼 수 있게 돼 의사 부족 현상이 발생할 때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10년 뒤 의사 부족 여부는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율을 공급 증가율이 따라갈 수 있을지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들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예측을 위해 어떤 가정을 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향후 의료 수요는 고령화로 인해 인구가 감소함에도 증가할 수 있다. 의료서비스 공급은 의료 기계화 진전과 의료기술 발전 및 사실상의 정년 연장을 통한 의사 증가 등 3가지 요소의 속도에 따라 수요 증가를 앞설 수도, 뒤질 수도 있다.

한가지 시나리오로서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의료 수요가 65세 이하보다 4~5배 크다고 가정하면 전체 의료 수요는 향후 10년간 매년 1.6~1.9%씩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더해서 최근의 2% 넘는 의사 증가율, 3% 넘는 CT와 MRI 등 의료 기계의 성장률 및 기술 진보율 추세가 지속한다고 가정하면, 의료 공급은 매년 2% 이상씩 증가해 수요 증가를 앞설 것으로 추정된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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