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여당의 금투세 토론
학창 시절 토론에 한 번이라도 나서 본 사람은 안다. 더 이상 반박할 말이 없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막막함을. 야속하게 움직이는 초침, 나만 바라보는 청중. 얼굴에 열이 오르고 언성이 높아지는 순간 깨닫는다. 아뿔싸, 나 밑천 다 떨어졌다.
토론은 잔인하고 적나라한 의견 조율 방법이다. 그래서 효과적 검증 수단이기도 하다. 지난 10일 미국 대선 첫 TV토론에서 해리스 부통령의 질문을 끊고 거짓말을 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토론 직후 여론조사에서 해리스와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미국 역사상 첫 대선 TV토론에서 케네디 전 대통령이 자신감 있는 태도로 닉슨 전 부통령을 역전한 건 유명한 사례다. 국내에서도 “아바타”나 “살림살이” 같은 토론 명언이 한 정치인의 캐릭터로 자리 잡곤 했다.
토론에 임하려면 단단한 논리를 갖춰야 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비공개 회의 때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궁금증이 해소될 때까지 집요하게 질문을 한다고 한다. 논리가 있으면 토론이 되고, 없으면 자연스레 다음부터 말수가 줄어든단다. 무논리를 타파하는 효과적인 방식이다.
민주당이 24일 금투세 유예 여부를 놓고 연 공개 토론은 그래서 반가웠다. 시행 측이 유예 측에 맥없이 무너지는 ‘역할극’일까봐 걱정했는데, 막상 토론대에 선 의원들은 얼굴까지 붉혀가며 치열하게 토론에 임했다. 정중하게 발언을 청하고 거침없이 공격해 흥미진진했다. 의원들은 토론 뒤 입을 모아 “오랜만에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정당 같았다”고 자평했다. 동의했다. 일부 실언도 있었지만, 처음으로 금투세 시행과 유예의 논거를 나란히 비교해 볼 수 있었다.
반박 시 “니 말이 다 맞다”는 논쟁 회피가 교양처럼 여겨지는 요즘, 국회에서도 논리를 갖춘 토론은 보기 드물다. 설득 대신 상대 말을 자르고 언성부터 높이는 게 당연한 초식이다. 이런 정치에선 탄탄한 논리보다 목소리 큰 게 장땡이다. 최근 민주당도 그랬다. ‘당심=민심=무조건 옳음.’ 이 대전제 하에선 여론 찬반 한 쪽이 50%를 넘긴 주제에 국회의원 개인의 주장이 설 자리가 없었다. 금투세도 그 대전제를 따라 결국 유예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시행 측에 설 용기를 낸 의원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사실 금투세는 2020년 여야가 합의해 도입하기로 한 세제다. 도입 당시 양당 모두 조세개혁이라고 했는데, 여당은 4년 만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입 모아 금투세 폐지를 외치고 있다. 민주당 토론을 비난할 게 아니라, 국민의힘도 내부 토론 한 번 하는 게 어떨까. 금투세와 패키지인 증권거래세는 어떻게 고칠 건지, 도입 당시 주장하던 조세개혁은 어디로 간 건지 말이다. 5년 전 법안을 주도했던 추경호 원내대표부터 나섰으면 좋겠다.
성지원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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