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본 사람들, 덕분에 쾌변한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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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혁진 기자]
얼마 전 1년에 한 번 있는 정화조 청소를 진행했다. 정화조 청소는 1년에 한번 의무적으로 하게 돼 있는데, 지난 8월 말 구청명의로 정화조 청소 실시 안내 공문을 받았다.
▲ 정화조 청소차량 |
ⓒ 이혁진 |
두 사람은 이어 능숙하게 정화조 뚜껑을 열어서, 똥호스를 정화조에 길게 찔러 넣었다. 부릉 부릉 시동 거는 소리와 함께 호스가 빨아들이는 것은 우리들이 매일 싸대는 똥과 오줌이다.
호스는 빨아들이는 양에 따라 구렁이처럼 꿈틀대기 시작했다. 마치 살아있는 뱀을 연상시켰다.
정화조 기사들의 전문성... 냄새도 거의 안 났다
옆에서 지켜보니 청소 시간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정화조 작업은 일정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정화조 기사들은 그 품새가 당당했다. 힘들거나 귀찮다는 내색은 전혀 없었다. 이들은 직업에 긍지와 자부심으로 무장된 듯 보였다.
호스를 잘못 다루거나 이음새가 벌어진 구멍에서 새거나 쏟아지는 식의 상상을 하면 기분이 아찔해진다. 그러나 이런 걱정은 한낱 기우에 불과하다. 정화조 작업이 끝나고 나서 보니, 바닥에 흐르거나 남긴 것은 하나도 없다. 정화조 맨홀과 주변을 세척하고 나니 되레 예전보다 더 청결해졌다.
▲ 정화조 청소차량 |
ⓒ 이혁진 |
'똥 바가지' 시절은 이제 정말 옛 일인가 봅니다
정화조 청소를 새삼 자세히 살펴보니, 과거 '똥 바가지'로 분뇨를 푸던 시절과는 확연히 다르다. 곁에서 지켜봐도 분뇨 냄새도 거의 나지 않는다. 이 정도에 코를 막는다면 사람코가 아니라 후각이 예민한 개코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어릴 적 동네에는 뒷간 똥 치우는 동네 어르신이 있었다. 거름용으로 쓸 똥을 푸는 직업이다. 집안 어른들은 똥 푸는 어르신을 찾아가 이른바 길일(?)을 받아오곤 했다.
똥 푸는 작업을 보면서 당시 철없는 어린이였던 우리는 코를 막았고, 그러고 있다보면 꼭 어르신들에게 한 소리를 듣곤 했다. 어르신들은 그런 식으로 똥 치우는 사람들을 배려하고, 이들의 자존심을 세워주셨던 기억이다.
이날 보니 정화조 청소기사들은 내가 예상한 것 이상으로 자신의 직업에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나 또한 '아무나 할 수 없는' 작업, 이들의 직업에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싶다. 이들은 우리 집 청소를 마친 후 다음 장소로 급히 이동하려고 했다. 나는 떠나려는 이들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내년에 또 봅시다. 고생했습니다."
그들도 나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친절한 사장님이십니다. 오늘 수거량이 생각보다 많더군요. 복 많이 받으실 겁니다."
그런데 희한하다. 오래 별렀던 정화조 청소를 마치니, 밀린 숙제를 마쳤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기분이 시원하고 좋을 수가 없다. 마치 쾌변을 보고 물을 시원하게 내린 기분이다. 한동안 정화조 청소 걱정 없이 우리 집에 사는 사람들이 마음 놓고 일(?)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생겼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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