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나스랄라 암살에 "레바논 파병 가능"…중동 전면전 치닫나

임선영 2024. 9. 2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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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군의 표적 공습으로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사망하면서 중동 내 확전 우려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이란은 28일(현지시간)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레바논에 군대를 파병할 수 있다"고 경고했고, ‘저항의 축’으로 불리는 친이란 무장세력들도 일제히 보복을 다짐했다. 이스라엘군의 탱크와 병력은 레바논과 인접한 북부 국경에 집결해 지상 침투 태세를 갖추고 있고, 확전 우려에 미국은 중동에 병력 증파를 검토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무너진 레바논 다히예에 있는 건물 잔해. 이번 공습으로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가 사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 "헤즈볼라 전면 지원" 선언

뉴욕타임스(NYT)·CNN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27일 F-15I 전투기 편대로 헤즈볼라 지휘부 회의가 열린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의 남부 외곽 다히예의 건물을 공습했다. 이스라엘군은 이 공격으로 나스랄라가 사망했다고 밝혔고, 헤즈볼라도 이를 확인했다. 나스랄라는 '저항의 축' 핵심 세력인 헤즈볼라를 약 32년간 이끌었다. 이스라엘은 '새로운 질서(New Order)'로 명명된 이번 공습 작전에서 2천파운드(907㎏)급을 포함해 폭탄 100개를 투하했다고 NYT는 전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미국 유엔 총회 일정을 마치고 귀국한 직후 영상 연설을 통해 "'악의 축'의 중심이자 이스라엘·미국·프랑스 등의 국민을 대거 살해한 나스랄라 제거는 역사적 전환점"이라며 "이스라엘 북부 주민을 안전히 귀환시키고 역내 힘의 균형을 바꿔놓으려면 나스랄라 제거가 필수 요건이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발발 후 헤즈볼라의 로켓 공격 등으로 이스라엘의 북부 주민 약 6만 명이 피난길에 오른 상태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AP=연합뉴스


그간 이스라엘과 헤즈볼라의 충돌에 직접 개입을 자제해 온 이란은 헤즈볼라에 대한 전면 지원을 선언했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성명을 통해 "사악한 (이스라엘) 정권에 맞서고 있는 이들을 돕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레바논과 자랑스러운 헤즈볼라 지원에 나서는 것은 모든 무슬림의 의무"라고 주장했다.

이란 외교부의 모하마드 하산 악타리 차관은 이날 "우리는 1981년에 그랬듯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레바논에 군대를 파병할 수 있다"며 "레바논에 군대를 배치하는 것에 대한 승인이 분명히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을 향해 "누구든 우리를 때리면, 우리는 그들을 때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스라엘·헤즈볼라 공격 지속…지상전 태세 갖춰

이스라엘과 헤즈볼라는 끝까지 싸우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이스라엘은 나스랄라 사망 직후 베이루트 인근에 대한 폭격을 이어갔다. 지난 23일부터 이스라엘은 '북쪽의 화살'이란 작전을 통해 레바논 일부 지역과 베이루트의 헤즈볼라 시설에 여러 차례 공습을 단행해 누적 사상자가 수천 명에 이른다고 알려졌다.

이스라엘은 지상전 태세도 갖추고 있다. 이날 워싱턴포스트(WP) 등은 "이스라엘군이 지상전을 대비해 레바논과의 국경에 탱크를 비롯한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CNN도 "미 당국자들은 이스라엘이 북부 국경으로 병력을 이동시킴에 따라 레바논에서 제한적 지상전을 벌일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헤즈볼라는 "적과의 성전을 계속하겠다"고 선언하며 이날 이스라엘 북부와 텔아비브 등을 향해 미사일 90발을 발사했으나 인명 피해는 없었다. 예멘 후티 반군도 유엔 총회 참석 후 귀국한 네타냐후 총리의 도착에 맞춰 벤 구리온 공항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했으나 이스라엘의 방공망에 요격됐다.

하산 나스랄라의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가 28일(현지시간) 벌어지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란, 행동 나설 것" VS "이란에도 부담"

전문가들은 이란이 어떤 식으로든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이란 입장에선 나스랄라의 사망을 계기로 '저항의 축'이 구심점을 잃으면서 '중동 맹주'로서의 위상에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사남 바킬은 BBC에 "이란은 구겨진 체면을 세울 방법을 찾고 있을 것"이라며 "저항의 축'이 같이 움직이거나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한 직접 공격을 감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 퀸시 연구소의 트리타 파르시 부소장은 CNN에 "만약 이란이 행동하지 않는다면 나머지 대리 세력들 사이에서 이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위험이 있다"고 짚었다. 워싱턴 연구소의 파진 나디미는 "만약 헤즈볼라가 실질적 붕괴 상황에 처한다면, 이란이 최소한 지난 4월처럼 (이스라엘 본토에 대한) 드론과 미사일 공격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반면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중동연구센터장은 중앙일보에 "이란으로선 헤즈볼라가 큰 전력 손실을 입은 상황에서 사태에 개입하는 건 국내 여론을 감안할 때도 부담일 것"이라며 "때문에 이란이 전면에 나서거나 실제 파병을 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CNN은 "이번 사태가 이란의 온건파 대통령 마수드 페제시키안이 서방과의 관계 회복을 모색하는 시점에 발생해 이란의 입장에선 사태 개입이 '이스라엘의 덫'에 걸어 들어가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짚었다.


"美, 중동에 병력 증파 검토"

한편 확전 우려가 커지자 미 국방부는 중동에 병력 증파를 검토하고 있다고 NBC가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미 당국자는 "군 관계자들은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에게 중동 지역에 대한 미군 추가 배치 방안을 제시했으며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등과 이 지역에서의 군사 태세에 대해 논의했다"고 말했다. 현재 중동엔 약 4만 명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는데, 앞서 미 국방부는 지난 23일 "중동에 소규모 병력을 추가 파견한다"고 밝힌 적이 있다.

미국 등 서방 각국은 "충돌 자제"를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나스랄라 사망에 대해 "정의의 조치"라고 평가하면서도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의 외교적 해법을 강조했다. 프랑스는 이스라엘에 "레바논에서의 지상 작전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영국은 양측에 즉각 휴전을 요구했다. 미국·영국·캐나다 등은 자국민을 향해 재차 레바논을 즉시 떠나라고 권고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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