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정권, '제2기시다' 정권될 듯", "한일관계, 정상 신뢰관계에 달려"
오는 10월 1일 일본에서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7) 정권이 출범한다. 지난해 12년 만에 한·일 셔틀외교가 재개된 지 불과 1년여만에 변화를 맞이했다. 자민당 내 '비둘기파'이자 오랜 비주류인 이시바의 총리 등극이 가져올 변화에 대해 한·일관계 전문가인 니시노 준야(西野純也) 게이오대 교수, 정치학자 나카키타 고지(中北浩爾) 주오대 교수,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임은정 공주대 국제학부 교수의 의견을 들었다.
전문가들은 “이시바 정권이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권을 계승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이시바 신임 총재 앞에 닥친 중의원(하원) 해산과 총선거 승리가 첫 과제가 될 것으로 진단했다. 이시바 신임 총재가 과거사 등에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지만 총선을 포함한 일본 내 정치 상황에 따라 한·일 관계 등도 영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다. 한·일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던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제3자 대위변제)에 대해 이시바 정권이 남은 ‘반 잔의 물컵’을 채울 수 있을지에 전문가들은 “신중하게 지켜봐야 한다”는 유보적인 의견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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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첫 과제는 '가을 총선' 승리
이원덕 교수는 “다카이치가 당선돼 한·일 관계가 손상되고, 한·미·일 연계에 금이 갈 경우, 러시아·중국·북한에 대처하지 못할 것이라는 시선이 이시바 당선에 영향을 줬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미국에서도 야스쿠니 참배를 고집하는 다카이치가 될 경우 한·일, 한·미·일 안보 공조협력을 이완시키게 될 거라는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고 짚었다. 일본 언론의 분석처럼 자민당의 이시바 선택은 ‘나쁜 후보 골라내기’였던 만큼 자민당의 총선 승리를 통해 이시바 스스로 지지기반을 확립해야 한다는 의미다.
나카키타 교수는 “이시바 정부는 ‘제2차 기시다 후미오 정권’과 같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총재 결선에서 기시다 진영에 의지해 당선된 데다, 정책 계승, 기시다 정권에서 외상과 관방장관을 지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를 관방장관 자리에 유임시키는 것 등을 근거로 들었다. “참모가 적어 기시다에게 의지할 부분이 크다”고도 평했다.
그는 “정권 운영이 잘 이뤄지면 최근 자민당에서 볼 수 없었던 안정적인 중도 노선을 취해갈 수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시바 정권이 총선에서 패해 구심력을 잃을 경우엔 다카이치가 재부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신 공동선언' 가능성…"과잉 기대는 말아야"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는 내년에 신(新) 공동선언이 가능할지에 대해선 “단언할 순 없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전망했다. 그는 “양국 정상 간의 신뢰관계가 구축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이시바 정권 출범이 바로 일·한관계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지는 신중하게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과거사 문제에서도 이시바는 갈등을 관리하자는 입장으로 이전만큼 과거사 마찰이 빈발하지 않고, 문제가 있더라도 관리 태세로 임할 듯 하다”고 예상했다. 한·일 60주년과 관련해선 “일본 정부가 얼마나 협조적으로 나올 지가 관건으로, 기시다 때보다 오히려 적극적일 수 있다”고 했다. 이시바 총재가 “윤석열 정부에 일본이 도움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던 점을 거론하며 “기시다 때보다 더 케미가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기도 했다.
반면 징용공 문제에 일본 측의 전향적인 태도가 있을 것이라고는 보지 않았다. “이시바도 징용판결을 국제법(청구권협정) 위반으로 인식하고 있는 데다 기존 일본 정부의 라인을 고수할 것”이란 설명이다. 이 교수는 “이시바가 상대적으로 전향적인 역사인식을 가졌다 해도 그에 대한 과잉 기대는 금물”이라고 덧붙였다.
임은정 교수는 “내년이 한·일수교 60주년이긴 하지만 제2의 김대중-오부치 선언이나 사죄보다 국민들의 실생활 및 경제와 관련해 양국 정부 간 진전된 합의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징용공 해법 등 기시다가 못 채운 '물잔'의 반 컵을 채울 것이라는 기대를 하긴 녹록지 않다”는 전망도 내놨다.
11월 미국 대선, 새 변수로
또 다른 변수도 있다. 오는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선이다. 이 교수는 카멀라 해리스 당선 시엔 큰 변화가 없겠지만 도널드 트럼프 당선시엔 한·미·일 관계가 달라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트럼프가 되면 미국 제일주의를 내세우며 동맹 위주의 외교 정책보다는 단독주의적 행동을 할 것이기 때문에 한·미·일 관계도 와해 혹은 이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시바 총재는 중국을 염두에 둔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창설, 미 핵무기의 공유와 반입, 미·일 지위협정 개정 등을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나카키타 교수는 “어디까지나 이상론이지 실현을 위해 성급히 진행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아시아판 나토는 현재의 한정적 범위가 아닌, 완전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의미하는 만큼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일·미 협력은 종전대로 진행될 것”이라며 “중국에 대한 입장도 기시다 정권과 같다. 약간의 독자적인 색깔을 낸다면 일·미지위협정 운용을 조금 개선하는 정도가 될 것”이라고 풀이했다. 이 교수 역시 “이시바가 내세우는 아시아판 나토는 현실성이 없다”면서 “미국이 원하지 않고 각국도 따르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기시다 정권이 북·일 정상회담을 물밑 추진했던 것과는 달리 이시바 정부가 당장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임 교수는 “이시바가 북한과 대화의 물꼬를 트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아시아판 나토 창설 등 평소의 지론과는 논리적으로 충돌이 발생할 수 있어 대북 관계에 당장 이벤트는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중·일 관계에 대해선 급격한 관계 개선은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했다. 임 교수는 “미국 민주당, 공화당 모두 일본 등 동맹국가들에게 부담을 더 지라고 요구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미·중 대결 구도에 낀 일본 입장에서) 중·일 관계가 급격히 개선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 교수는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다카이치의 경우 야스쿠니 참배 문제 때문에 충돌 요소가 있었지만 이시바는 유화적인 태도인 점도 근거로 들었다. 총재 선거에 앞서 이시바가 대만을 방문했던 데 대해 “최근 일본이 동중국해·남중국해 등 해양에서의 마찰, 어업 문제 등 현안에 대응하기 위해 이시바가 대만을 간 것”이라며 “대만에 가는 일본 지도자를 중국이 환영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중국이 이시바에 등을 돌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쿄=오누키 도모코·정원석 특파원, 서유진 기자 onuki.tomok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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