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조선’ 러브콜 보내는 美해군…HD현대·한화오션 연달아 찾았다
미국 해군 함정사업 고위급 관계자들이 최근 방한해 HD현대·한화오션의 연구개발(R&D) 기지를 각각 둘러보고,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등 한국 조선소들과의 협력 확대 방안을 모색했다.
29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미 해군 함정 프로그램 총괄 책임자인 토마스 앤더슨 소장과 미 해군 지역유지관리센터 사령관 윌리엄 그린 소장(수상함 MRO 총괄책임자)은 지난 27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HD현대 글로벌R&D센터와, 경기 시흥시 한화오션 R&D캠퍼스를 각각 방문했다.
HD현대는 미 해군 관계자들에게 디지털융합센터·디지털관제센터 등을 소개하고, 친환경·디지털 선박 분야의 첨단 기술력에 대해 브리핑했다. 또 인공지능(AI) 기반 함정 솔루션과 하이브리드 전기 추진 선박, 디지털트윈 가상 시운전 등 주요 R&D 현황을 설명하고, 미 해군의 함정 MRO 전략을 제안했다.
주원호 HD현대중공업 특수선사업 대표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HD현대와 미국이 향후 함정 건조 및 MRO 사업 협력을 확대해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앤더슨 소장은 “향후 미국과 한국이 조선 분야에서 상호 협력할 다양한 기회에 대해 생산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어 뜻깊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같은날 미 해군 관계자들은 한화오션의 R&D캠퍼스를 찾아 친환경 연료 육상시험시설(LBTS), 공동수조, 예인수조, 모형제작실 등 주요 R&D 시설을 둘러봤다. LBTS는 상용급 연료전지, 리튬이온배터리, 암모니아 추진 등 탈탄소 친환경 연료 기술을 시험할 수 있는 설비다.
한화 측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잠수함용 리튬이온 에너지저장장치(ESS)도 미 해군에 소개했다. 잠수함에 ESS와 수소연료전지 기반 공기불요 추진 체계(AIP)를 탑재하면 함체의 부양 없이 수중에서만 최대 3주동안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앞서 한화오션은 국내 조선업계 중 처음으로 미 해군의 군수지원함 월리 쉬라호의 MRO 사업을 수주한 바 있다. 배수량 4만톤(t)급 윌리 쉬라호는 이달 초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 입항해 현재 정비·검사 등을 진행 중이다.
김희철 한화오션 사장은 “이번 미국 해군의 시흥R&D센터 방문이 미 해군의 MRO사업은 물론 향후 함정 건조에 필요한 기술적 교류로 이어지는 교두보가 됐으면 한다”고 했다. 앤더슨 소장은 “한화오션의 역량과 투자가 매우 인상적이고 향후 한미 양국 간 조선 R&D 분야에 있어 상호 이익을 위한 기회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업계에선 미 해군 함정사업 고위급 관계자들이 방한해 각 조선사의 R&D 기술력을 점검한 것을 두고, 일종의 ‘러브콜’이라고 보고있다. 세계 최대 방위산업 시장을 보유한 미국의 함정 MRO 시장은 한국 조선소들도 새로운 먹거리로 집중하고 있는 분야다. 양측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는 만큼 향후 사업의 확장성이 크다는 평가가 많다.
전통적으로 미 선박 산업은 외국 기업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1920년 제정된 미국 연안무역법(존스법)에 따라, 미 해상에서 군함 등 선박을 운용하려면 미국 조선소에서 건조·개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 조선업계에 기회가 열린 건 코로나19 기간을 지나며 미국 조선사들의 경쟁력이 떨어진 영향이 크다.
여기에 최근 미·중 갈등 등으로 미 해군 함정 가동률이 높아지면서 미국 내 조선사만으로는 MRO 수용력이 한계에 도달했다. 미 정부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시장 일부를 개방하면서 미 우방국 중 조선업 경쟁력이 뛰어난 한국과 협업을 확대하려는 상황이다.
거대한 군함을 분해하다시피 하면서 정비하는 MRO 사업은 선박의 전 주기에 걸쳐 이뤄지기 때문에, 조선사가 장기적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업계에 따르면 미국의 해군 함정 MRO 사업 규모는 세계 최대로, 연 2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전 세계 해군 함정 MRO 시장 규모는 2029년 636억2000만 달러(약 87조7400억원, 시장조사업체 모르도르인텔리전스)까지 커질 전망이다.
미 군함 MRO 사업권을 따내는 건 신뢰할만한 기술력을 가졌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기에 국내 조선업계의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현재 미 해군은 한국 한화오션 외에, 일본에서 미쓰비시중공업 요코하마조선소에 USS 밀리어스 구축함 MRO를 맡기고 있다.
윤지원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는 미 해군 MRO 사업에 한국 조선소들의 참여가 확대되는 상황에 대해 “한국 방산 기업들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로, MRO 수주는 지상 무기 위주였던 한국 방산 수출의 외연이 확대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며 “다른 방산 기업들의 기술경쟁을 촉발하고, 기술 간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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