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의 도시'로 차별화, 창원조각비엔날레 27일 개막

이은주 2024. 9. 29.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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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0일까지 45일간 대장정
성산아트홀, 성산패총 등 네 곳
16개국 86명(63팀) 작가 참여
"비엔날레 통해 지역 이야기 발굴"
조각을 통해 생명의 에너지를 드러낸 정현의 목전주(2006). 2007년부터 경기도미술관 마당을 지켜온 작품으로, 이번 비엔날레를 위해 잠시 창원으로 이동해 설치됐다. 높이가 17미터다. [사진 창원조각비엔날레]
홍승혜 작가의 시트 드로잉 작품이 큰 유리창을 장식한 성산아트홀 건물 모습. [사진 창원조각비엔날레]


경남 창원시 대원동 창원복합문화센터 넓은 공터(옛 동남운동장)에 나무로 만들어진 키 큰 여섯 개의 기둥이 세워졌다. 마치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하늘로 뻗어 올라가는 듯한 형상이다.
조각가 정현(67)의 대형 작품 '목전주'(2006)다. 2007년부터 경기도미술관 마당에 서 있던 것을 이번에 창원으로 잠시 옮겨 왔다. 이곳에서 만난 정 작가는 "과거에 쓰이던 목전주는 나중에 콘크리트 전신주가 만들어지면서 모두 자취를 감췄다"며 "2006년 작품 제작 당시 수소문해서 창원 변전소에 남아 있던 것을 찾아 재료로 썼다"고 말했다. 정 작가에게 목전주는 오랜 세월을 견디며 역할을 다한 나무의 물성을 날 것 그대로 드러내는 매력적인 재료다.

그는 "아버지가 전기 일을 하시며 우리 5남 4녀 중 큰 누님 빼고 8남매를 대학까지 보내셨다. 목전주는 내게 평생 묵묵히 일만 하신 아버지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며 "이 안엔 거침없이 위로 뻗어 올라가고자 하는 인간의 정신, 생명력에 대한 경외심이 겹쳐 담겨 있다"고 말했다. 과거 새마을회관으로 건립됐지만, 지금은 낡은 붉은 벽돌 건물과 공터만 남은 동남운동장에서 정현의 목전주는 그렇게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이야기로 우뚝 섰다.

조각을 내세운 창원조각비엔날레가 지난 27일 창원시 일대에서 시작했다. 창원조각비엔날레는 한국 추상조각의 선구자 김종영(1915∼1982)과 문신(1923∼1995), 박석원(82) 등 국내 대표 조각가들을 배출한 '조각의 도시'를 내세워 2010년 문신국제조각심포지엄을 모태로 2012년부터 비엔날레 형식으로 열려왔다. 올해로 7회째다.

창원조각비엔날레 첫 여성감독인 현시원 예술감독이 이끄는 올해 행사는 김혜순 시인의 시 '잘 익은 사과'에서 따온 '큰 사과가 소리없이'를 주제로 16개국 86명(63팀)의 작품 177점을 창원 곳곳에 배치했다. 현 감독은 "사과껍질처럼 나선형 길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떠올리며 동시대 조각의 수평성, 여성과 노동, 도시의 역사와 변화 등을 다각도로 다루고자 했다"고 말했다.

이번 비엔날레는 기존 전시장인 성산아트홀과 창원시립마산문신미술관(이하 문신미술관) 외에도 도시의 역사가 담긴 성산패총과 창원복합문화센터(동남운동장)를 전시장으로 활용했다.

이마즈 케이의 설치 작품. 관람객이 작품 속으로 들어가 작품을 볼 수 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한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 김종의 작품들. 유실된 작품 사진들이 벽에 걸려 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정숙의 'K양',1952, 테라코타, 40X22X17m.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정숙의 '비상', 대리석, 1990.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산업 도시의 특성을 살려 노동의 역사를 주제로 한 작품들이 배치된 점이 가장 눈에 띄었다. 우선 홍승혜 작가는 영화 '모던 타임즈'(1939)의 대표 장면을 차용해 낙하하는 찰리 채플린 등의 모습으로 성산아트홀 대형 유리창을 시트 드로잉으로 장식했다.

철기시대 조개 무덤이 있는 유적지로 창원 주민들에게는 어릴 적 소풍 장소로도 친숙한 성산패총은 이번에 처음으로 비엔날레 공간으로 쓰였다. 이곳 야외 언덕에 자리한 창원(진해) 출신 조각가 박석원의 화강석 작업 '적의(積意)-중력'과 알루미늄 작품 '핸들'은 거친 돌과 매끈하고 반짝이는 알루미늄의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눈길을 끌었다.

성산패총의 유물전시관 2층 발코니에는 거대한 용수철 모양의 최고은의 작품 '에어록'이 놓였다. 금속 파이프의 반복되는 곡선으로 멀리 바라다보이는 장복산과 인근 공장 풍경을 하나로 엮은 드로잉 같은 조각이다.

성산패총 유물전시관 2층 발코니의 기둥을 둘러싼 최고은의 나선형 조각 '에어록'.[사진 창원조각비엔날레]
성산패총 야외 언덕에 전시된 박석원의 '핸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성산패총 야외 언덕에 설치된 박석원 조각가의 '적의'.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문신미술관에 설치된 크리스 로의 설치 작품.작가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한편 마산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문신미술관 제2전시관에선 건축을 전공한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미술가인 크리스 로가 창원을 '졸린 도시'로 해석한 설치 작업을 선보였다.

이번 비엔날레는 전시 정보를 담은 일반적인 가이드북 대신 조각가의 에세이 등을 담아 무크지 형식의 책을 출간했다. 현 예술감독은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여행 가방을 메고 도시 곳곳을 이동하며 창원이라는 도시를 새롭게 보게 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조영파 창원문화재단 대표도 "비엔날레를 통해 지역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새로운 문화가치를 창출하는 모델을 만들겠다는 의지로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이번 비엔날레는 한국 1세대 여성 조각가 김정숙(1917~1991)의 1952년 작 '명상', 마사 로슬러(81)의 대표 영상 작품 '부엌의 기호학'(1975) 등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나는 즐거움도 선사했다. 그러나 정현의 '목전주' 등 몇몇 작품을 소개하는 것 외에 동남운동장의 드넓은 공간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점에선 다소 아쉬웠다.

이번 비엔날레는 11월 10일까지 열리며, 행사 기간 전시장소 네 곳과 창원중앙역을 오가는 무료 셔틀버스가 화∼일요일 운행한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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