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AEA 사무총장 "北 핵보유국" 논란…"잘못된 시그널 전달 우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국제사회가 '북한이 핵을 보유(possess)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recognize)하고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발언에 대한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IAEA 측은 "사무총장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의 타당성을 재차 강조하며 대화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이라고 밝히며 진화에 나섰지만,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자신들의 핵 능력 증강에 골몰하고 있는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北비핵화 회의론 확산되나?
한국과 미국은 각급 회담이나 주요 정치행사 계기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재확인하면서 기존 북핵 접근법을 고수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을 비핵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북핵 용인론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미국 조야를 비롯한 일각에선 북핵 문제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을 관리하기 위해 북한의 새로운 핵무기 개발·생산을 막는 동결이라도 추진하자는 의견도 있다.
워싱턴포스트(WP)의 외교·안보 칼럼니스트인 조시 로긴은 2019년 하노이 노딜 직후 "결국 (북한이 주장하는) 스몰딜이 유일한 외교적 해법"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 이용석 외교정책연구소(FPRI) 선임연구원도 지난해 말 보고서에서 "미국 정부가 향후 대북 정책을 비핵화에서 군축 중심으로 옮겨야 한다"는 제언을 내놨다.
그로시 사무총장의 이번 발언도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 회의적인 국제사회의 시각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핵 문제가 컨트롤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의식의 흐름이 존재하고 있다"며 "그로시 총장의 이번 발언도 그런 전문가들의 시각을 일부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핵군축 가능성도 우려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북정책이 북한 비핵화를 목표로 하는 반확산이 아니라 사실상 북핵을 용인하는 비확산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핵을 관리하고 억제해 핵기술의 확산을 막고 궁극적으로 핵무기를 사용하지 못 하게 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방점이 상당 부분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라며 "북한의 비핵화를 최종적인 목표로 하는 한국의 입장에선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미국이 제한적인 북핵 용인을 토대로 북한과 핵군축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그는 재임 당시 미국의 전통적인 외교 문법을 따르지 않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비핵화 협상에 나선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북한 비핵화를 추구하지 않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일부 매체의 보도에 대해 "허위 정보"라고 부인하면서도 "단 하나 정확한 것은 김정은과 잘 지낸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은에 잘못된 시그널 줄 가능성도
그로시 사무총장의 이번 발언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열린 틈새를 활용해 최대한 빨리 핵보유국 지위를 얻으려는 전략을 가진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가능성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대화에 나선다는 건 북한이 현 수준에서 핵을 동결만 해도 국제사회와의 핵담판을 통해 제재를 완화하는핵군축이 가능해진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은 건 국제 비확산 체제를 떠받치는 IAEA 수장으로서 대단히 부적절한 행동"이라며 "북한 핵보유의 부적절성과 불법성을 훨씬 강조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도 "김정은 입장에선 핵 고도화를 통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는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29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담화를 통해 최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가 무기 거래로 북한과 이란을 전쟁범죄 공범으로 만들었다"고 말한 것에 대해 "어불성설"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여정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무모한 정치적 도발"이라며 "젤렌스키의 논리대로라면 우크라이나 전쟁터에 가장 많은 무기와 탄약을 들이민 미국과 서방이야말로 마땅히 특등 공범국 지위를 부여받아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의 엄숙한 경고를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하지 말아야한다"며 "미국과 서방이 핵 초대국인 러시아를 앞에 두고 지금처럼 겁기 없이 불 장난질을 해대면서 그로 하여 초래될 수 있는 후과를 과연 감당할수 있는가"라며 러시아를 옹호했다.
정영교 기자 chung.yeong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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