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농부의 시름, 이렇게 달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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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규현 기자]
▲ 농로 포장 공사 모습. 지난 폭우로 농로 옆 하천이 넘쳤지만 농로 포장 공사를 했기 때문에 농로 흙이 파이거나 떠내려 가는 일은 없었다. |
ⓒ 곽규현 |
매년 장마철이나 태풍이 비바람을 몰고 오면 하천이 넘치곤 해서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여름 장마가 오기 전에 농로 포장 공사를 하여 농로가 파손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큰비가 오면 하천이 넘쳐서 비포장 농로가 파이고 흙이 떠내려가 지자체에서 중장비를 동원하여 복구 작업을 했었다.
폭염과 폭우로 인한 텃밭과 농작물의 상황
이번에는 중장비로 복구 작업을 할 정도는 아니어서 농막에 있는 농기구를 들고나와 농로에 떠내려온 나뭇가지와 쓰레기들을 깨끗하게 치웠다. 텃밭에는 하천물이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폭우가 할퀴고 지나간 흔적은 남아 있었다.
▲ 제대로 싹이 올라오지 않은 쪽파와 녹아내려서 구멍이 비어있는 배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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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를 뿌려놓은 무도 예년보다 싹이 잘 올라오지 않고 성장이 더디다. 쪽파는 씨앗을 심은 지 20일이 지났는데도, 이제 겨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마저도 듬성듬성 씨앗이 상해서 땅위로 올라오지 못하는 것도 있다. 폭염과 폭우로 생사의 갈림길에서 텃밭 작물들이 살아남기 위해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이를 바라보는 도시농부의 마음고생도 마찬가지다.
올해 폭염과 폭우로 우리 텃밭 작물만 수난을 당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전국의 배추 작황이 좋지 않아 배추 가격이 급등한다는 우울한 소식도 들린다. 배추 한 포기에 2만 원을 오르내리는 소매 시장도 있다고 하니, 김치 먹기가 겁날 만도 하다.
배추 농사를 짓는 농민이나 배추를 구매하는 소비자나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폭염으로 녹아내리고 타들어 가는 배추와 함께 농민들의 가슴도 타들어 간다. 농촌에서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농부들의 심정은 생계가 달려있어 더욱 참담할 것이다.
▲ 새가 물고 가다가 떨어뜨린 벌레 |
ⓒ 곽규현 |
참새보다 조금 크다 싶은 새 한 마리가 갑자기 나타나 부리에서 불고 있던 뭔가를 떨어뜨리고 날아가는 것이었다. 잡초 방지 부직포 위에 새가 떨어뜨린 것은 작은 벌레였다. 죽을 뻔하다 살아난 벌레는 미처 정신을 못 차렸는지 이리저리 몸을 비틀더니, 좌우로 몸 구르기 몇 번, 앞뒤로 몸 말았다 펴기 몇 번을 한 후에야 정상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몸을 숨길 곳을 찾는지 재빠르게 이곳저곳을 기어다녔다. 그 순간 '텃밭의 작물이나 벌레나 사람이나 모든 생물이 위기의 순간에는, 살아남기 위해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는 것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잠시, 어디선가 지켜보다 다시 나타난 새가 숨을 곳을 찾아 헤매는 벌레를 날렵하게 물고 날아갔다.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을 쳐도 '약자는 강자의 먹잇감이 되는구나'하는 자연생태계의 냉엄한 먹이 사슬이 머리를 스쳤다. 그것으로 상황이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잠깐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가 되돌아오니 여전히 벌레가 기어다니고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분명히 새의 먹잇감이 되어 새의 배 속으로 들어갔을텐데. 새 부리 끝에서 버둥거리며 물려가는 걸 봤는데... 설마 또 새가 몸부림치는 벌레를 어쩌지 못하고 떨어뜨려서 살아난 건가.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더니 정말 그런 건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 없이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연쇄적으로 일어난 의아한 상황이 여러 가지를 생각게 했다.
▲ 배추 잎에 붙어 있는 방아깨비와 잠자리, 무 싹 옆에 앉아 있는 나비 |
ⓒ 곽규현 |
배추 잎에 내려앉은 잠자리를 보면 어릴 적, 거미줄 잠자리채를 휘젓고 다니며 잠자리를 잡으러 다녔던 모습이 떠오른다. 무밭에 놀러 온 나비도 반갑다. 곤충 중에서는 나비가 제일 아름다워 어릴 때부터 나비를 좋아했다. 잠시나마 어릴 적 동심으로 돌아가 기분이 맑아진다.
나는 머리가 복잡하고 우울할 때마다 텃밭에서 '농멍'을 하거나 저렇게 만나는 곤충들과 장면을 보면서 기분 전환을 한다. 어두워진 마음을 내려놓고 비우려고 한다.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와 벌레를 보면서도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이상 기후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의 상황이 예년 같지 않다. 타들고 병들고 죽어가는 작물들을 바라보는 농민들의 심정이 어떨지 내가 농사를 지으면서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다. 아무쪼록 농민들의 농작물 피해가 최소화되기를 빌어본다. 농민들도 살아갈 새로운 힘을 얻는 일이 많았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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