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뒷모습을 바라본 소녀, 그렇게 성장하게 됐다
[이재윤 기자]
<룩백>은 <파이어 펀치>와 <체인소 맨> 작가로 유명한 후지모토 타츠키의 단편 만화다. 영화관을 찾기 전 원작을 감상하고 나서는 기대가 배로 불어났고, 개괄적으로 원작보다 더욱 좋은 영화였다. 내용은 뻔할 수 있어도 연출이 훌륭했던 만화이기 때문에 영상 매체로 마주했을 때 전달력이 훨씬 직관적이었다.
귀여운 두 소녀의 만화에 대한 순수한 감정과 이들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볼 때면 스토리라인에 흠뻑 취해 동화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작가라면 특히 공감할 만한 내용이기도 한데, 창작에 있어서 내가 왜 이 행위를 지속해야 하는가에 대한 동기를 전달한다. 영화 <룩백>은 58분이라는 작은 상자 안에 배스킨 라빈스의 아이스크림처럼 꾹꾹 눌러 담아냈다.
▲ 영화 '룩백' 스틸컷 |
ⓒ 메가박스중앙㈜ |
두 소녀는 만남이 시작되고부터 서로에게 있어 성장의 발판이 된다. 후지노는 쿄모토라는 팬을 등에 업고 만화를 다시 그리게 되고, 쿄모토는 후지노를 통해 방으로부터 나와 세상의 깊이를 이해하게 된다. 그렇게 둘은 단숨에 호혜적 관계로 발전하며 둘의 이름을 딴 '후지노 쿄'라는 필명으로 단편을 그리고 공모전에 입상까지 하며 환상의 만화 콤비로서 일약 한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끝까지 하나로 혼연일치되기란 어려운 법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후지노 쿄 콤비가 바라보는 목표지점은 달랐으며, 쿄모토는 그림을 더욱 잘 그리고 싶다는 꿈을 안은 채 이젠 서로에게 등지며 각자의 길로 들어선다.
▲ 웹툰 작가 지망생 시절 나의 작업실 |
ⓒ 기자 본인 |
그 모습은 마치 창문 밖의 세상을 스리슬쩍 쳐다볼 여유조차 찾아볼 수 없는 창작자들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당장 뛰쳐나가도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그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어루만지듯 달래는 중요한 씬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자리에서 어떤 무언가의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릴레이를 이어 나가야만 하는 것이 창작의 길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뇌하며 맹렬히 작업에 열중하는 모습을 내보이는 것이야말로 창작자가 보여야 할 자세라는 것이다.
후지노에게는 더 이상 창작자의 등을 보이는 대상(쿄모토)이 없다. 호혜적 관계를 이루던 둘의 갈라섬의 결과는 샤크킥이 11권에 정체되어 있는 것처럼 자극을 받거나 동기를 느끼지 못하는 상태다. 바라볼 등(동경의 대상)이 없어지자 동력을 잃어버렸다. 유아기 땐 부모를 청소년기에는 선생님 또는 재능 있는 친구를 성인이 되어서는 선배를 군대에서는 전우의 뒷 발을 바라보며 우리는 걸어왔다. 바라볼 '등'이 있었기에 성장해왔다.
▲ 영화 '룩백' 스틸컷 |
ⓒ 메가박스중앙㈜ |
▲ 영화 '룩백' 스틸컷 |
ⓒ 메가박스중앙㈜ |
스토리라인은 원작과 거의 동일하게 진행되지만, 원작을 접한 이들에게는 영화광으로 유명한 후지모토 타츠키의 연출을 영상으로 감상하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특히 개성 넘치는 러프한 그림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 두 소녀의 작고 소중한 이야기가 괜스레 울컥하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 그만큼 <룩백>은 깊은 여운을 남기며, 창작자들에게 다시금 초심을 일깨우고 예술혼의 불씨를 되살려준다. 58분의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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