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고민과 슬픔을 슬로건으로 만들지 말라"...이승윤의 뚝심이 빛난 ‘역성’ 콘서트
「 “우리의 ‘역성’은 성공이 보장되지 않아요. 낙담하고 좌절할 거예요. 그래도 동참하시겠습니까?” 」
가수 이승윤(35)이 세상을 거스르는 소리를 함께 내보자고 외치자, 팬들은 함성과 박수로 동조했다. 그는 28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전국투어 ‘2024 이승윤 콘서트 역성(易聲)’에서 세상의 틀을 깨는 노래들을 연달아 선보였다.
지난 7월 발매한 정규 3집 선발매 앨범 ‘역성’을 기념해 개최한 이번 투어는 ‘세상의 이치나 흐름이 소리친다고 바뀌지는 않겠지만, 소리에 담을 이야기들을 마음대로 뒤바꿔 힘껏 소리 내어 보자’는 의미를 담았다. 서울에서 시작해 10월 12일 전주 한국 소리 문화의 전당, 19일 부산 영화의 전당 등에서 펼쳐진다. 29일까지 이틀간 진행된 서울 공연은 6500여 명의 관객이 모였다.
무대 아래서 대기하던 이승윤이 무대 위로 튀어 오르면서 공연은 시작됐다. 오프닝곡은 ‘영웅 수집가’였다. 누군가의 모습에 자신의 욕망을 투영해 무리하게 찬양하는 모습을 비꼬는 ‘나의 진열장에 놓을 영웅이야’라는 가사가 인상적인 노래다. 이승윤은 망토가 달린 듯 디자인 된 가죽 롱코트를 입고 노래에 몰입했다.
전국투어 ‘역성’ 첫날 무대를 시작한 그는 “우리가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세상을 깨부숴 보려는, 그리고 폼나게 살아보려는 역성의 길을 나섰다. 굉장히 벅차오르고, TV에서 봤던 장충체육관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 영광이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뒤이어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 원태인 투수의 등장곡이기도 한 ‘게인주의’를 선곡했다. 소수 의견도 경청해보자는 메시지가 들어 있다. 원으로 이뤄진 세상에 삐뚤게 선 마름모를 자신의 모습에 빗대, 원을 삼키는 마름모가 되어보겠다는 자신감을 담은 ‘우주 라이크 섬띵 투 드링크’, 절망 속에서 꿈을 찾는 희망가 ‘흩어진 꿈을 모아서’ 등 자작곡이 이어졌다.
앨범 ‘역성’에 수록된 8곡도 모두 들려줬다. 폭죽이 터지는 순간에 나만의 빛을 내보자는 이야기를 담은 노래 ‘폭죽타임’, 규정된 순도에서 벗어나 뜨거운 사랑을 해보자는 가사의 ‘28K 러브!!’, 자신만의 예술을 하고 싶으면서도 매진(품절)을 바라는 예술가의 역설적인 삶을 노래로 표현한 ‘솔드아웃’,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마음을 고쳐먹고 재경기에선 상대방을 K.O. 시키겠다는 각오를 다진 ‘리턴매치’ 등 재치있는 노래들이 공연장을 가득 채웠다.
특히 전주만 1분, 총 음원 길이가 6분 3초에 달하는 타이틀곡 ‘폭포’는 몽환적인 LED를 배경으로 웅장하게 연주됐다. 2층까지 자리한 팬들의 응원봉 물결이 폭포의 물방울처럼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하는 모습이 노래와 어우러졌다. 노래는 폭포를 뒤엎으면 분수가 된다는 내용으로 ‘관성을 거슬러 보자’는 주제를 담고 있다.
이승윤은 “음악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은 다 거짓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세상이 꼭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바뀌었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만들며 느낀 점을 공유했다.
보통 마무리 단계에서 찍는 단체사진 촬영은 공연 초반에 이뤄졌다. 아홉 번째 노래 ‘허튼소리’ 전주가 나오는 가운데 이승윤과 그의 음악적 동료이자 밴드 멤버 조희원, 이정원, 지용희 등이 함께 포즈를 취했다. 이렇게 찍은 공연 사진은 무대 영상에 삽입돼 재미를 줬다. ‘허튼소리’는 ‘사랑에 빠지면 그 어떤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심장 소리만 울린다’는 러브송이다.
이승윤이 이날 들려준 러브송의 가사는 대체로 독특했다. ‘굳이 진부하자면’은 특별하게 고백하고 싶지만 사랑 앞에선 진부해질 수 밖에 없는 감정을 녹인 곡이고, ‘캐논’은 바로크 시대 음악가 파헬벨이 만든 캐논 코드를 사용해 가장 완벽한 사랑곡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던 이승윤이 완벽이 아닌, 그냥 좋은 이야기를 전해주겠다며 쓴 노래다.
공연 말미엔 준비 중인 정규 3집에 담길 미발매곡을 들려줬다. 우리의 삶을 멋대로 이용하고 선동하지 말라는 간곡한 외침이 담긴 노래다. 체스판을 뒤엎고 모래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무대 영상이 이어졌다.
이승윤은 "이 시대가, 세계가, 사회가 여러분들의 고민과 슬픔 등을 매번 훔쳐와 슬로건으로 만들어버린다고 느꼈다"면서 "그게 너무 싫어서 이 앨범과 공연을 만들게 됐다. ‘우린 슬로건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전국투어 외에도 내달 4일 ‘2024 부산국제록페스티벌’, 5일 ‘서울 잔다리페스타 2024’ 무대에 올라 관객을 만난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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