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새고 악취 진동… 부산항 ‘흉물’ 장기계류 선박 처분, 해수청 칼 뺐다
지난 22일 0시20분쯤 부산항 북항 5부두 물양장. 태풍 영향으로 전날부터 부산에 400㎜ 넘는 폭우가 이어진 가운데 이곳에 정박해있던 유조선 A호(42t)가 고인 빗물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았다. 이 사고로 선박 내 벙커시유 등 오염물질이 바다로 흘러들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부산해경은 유출된 기름이 퍼지지 않도록 오일펜스를 설치한 뒤 유흡착재를 이용해 긴급 방제 작업에 나섰다.
장기계류선 160척, 사고 위험 도사린다
부산해경 조사 결과 A호는 2021년 7월부터 이곳에 방치된 유조선으로 파악됐다. 보험에 가입되지 않은 선박으로 방제와 인양, 재정박 조치가 끝난 현재까지도 선주에겐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한다. 28일 부산항을 관리하는 부산항만공사(BPA)에 따르면 지난 7월 기준 부산항 내에 A호처럼 장기계류 중인 선박은 160척에 달한다. 1년 넘게 관제ㆍ입항기록이 없거나, 6개월 넘게 이동 없이 운항을 중단한 배를 장기계류 선박으로 분류한다.
장기계류 선박 가운데 일부는 사고 위험이 있다고 한다. BPA 관계자는 “장기계류 선박 중엔 영세한 급유선과 무동력 바지선 등이 많다. 일거리가 없는 등 사정에 따라 선주가 신고를 마치고 계류하는 선박”이라며 “다만 이들 가운데 일부는 선령이 오래되고 선주에게 연락이 닿지 않으며, 항만시설사용료를 미납하는 등 문제가 있다. 폭우 등 기상 이변 상황 땐 A호와 비슷한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배는 관리가 되지 않아 심한 악취를 풍기며 항구 미관을 해쳐 흉물이 됐다. 하지만 사유 재산인 데다 비용이 많이 들어 인양 등 처치도 쉽지 않다. 근저당권이 설정된 선박을 처분하려면 선주와 저당권자 등 모든 이해 당사자 동의를 구해야 해 절차가 더 까다롭다고 한다. 항만 관리는 BPA가 하지만, 선박 입항과 출항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선박 이동 명령을 내리거나 대집행할 수 있는 곳은 부산해양수산청으로 이분화돼 있다. 이에 장기계류 선박 문제 대처에 어려운 요인으로 꼽힌다. 실제 장기계류 선박을 행정대집행해 해체 등 조처한 적은 없다고 한다.
“40년 넘은 고위험 선박부터 정리”
부산해경과 BPA, 부산해수청 등 기관이 여러 차례 모여 장기계류 선박 문제 대처를 논의했지만, 해법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A호 사고를 계기로 이들 기관은 부산항 내 선령이 40년 넘고, 파손되거나 기울어져 사고 위험성이 큰 고위험 장기계류 선박부터 처리하는 데 뜻을 모았다. 해수청 관계자는 “고위험 선박 7척을 대상으로 다음 달 말까지 배를 이동하는 이동 명령을 내렸다. 이행하지 않으면 계고장을 보낸 뒤 해수청이 대집행하고, 구상권을 청구하거나 해당 선박을 공매 처분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BPA는 선주에게 연락이 닿지 않는 등 소재가 불분명한 고위험 장기계류 선박은 해경과 공조해 합동점검, 사전 안전조치를 강화하기로 했다. 부산항 운영 세칙을 개정해 계류 시설 허용 허가 요건 등을 조정하며, 항만 기관이 협력해 운항 중단 선박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체계를 마련하는 방안도 추진된다. BPA 관계자는 “장기계류 선박 가운데 안전사고와 해양오염 가능성이 있는 선박은 제도 개선과 함께 체계적인 관리 규정을 세워 항만 질서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부산=김민주 기자 kim.minju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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