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감소지역에 '복수주소제'?…"지방 활성화"vs"위장전입 합법화"

나상현 2024. 9. 2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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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분을 앞두고 경기도 여주시의 한 논에서 농민이 콤바인으로 벼를 베고 있다. 연합뉴스

지방 도시의 인구 소멸이 가속화되는 가운데 복수주소제 도입을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오지만, 위장 전입을 사실상 합법화하는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27일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인구감소지역 복수주소제 도입의 가능성과 한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수도권 인구는 2604만명으로, 비수도권 인구(2521만명)보다 많다. 특히 시군구 수준 소멸위험 지역은 130곳으로, 전체 대상 지역의 57%를 차지했다. 시도 수준에선 올해 처음으로 부산이 소멸위험단계에 진입했다.

이같은 지역 소멸 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새로운 인구관리 정책의 하나로 ‘복수주소제’가 거론되고 있다. 복수주소제란 자신이 거주하는 주민등록주소 외에 제2주소(부주소)를 등록할 수 있는 제도다. 정주 인구 외에 체류 인구까지 포함하는 ‘생활인구’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개념이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한 사람이 하나의 주소만 법적으로 등록할 수 있는 ‘주소 단수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생활 방식 다양화…지방재정 확충도”


찬성 측에선 복수주소제가 지역 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보통신·교통의 발달과 근무환경·생활방식의 다양화로 사람들의 생활 활동반경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복수주소제 도입으로 주소지가 두 곳으로 늘어나게 되면, 사람들이 새 주소지를 중심으로 소비 활동을 늘릴 가능성이 크다.

납세 의무를 부여한다는 전제로 비수도권의 주민등록상 인구를 늘리면서 지방 재정 확충에 도움이 될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제2주소지에도 주민세·지방소득세 등 지방세 일정 비율을 납부하는 방식을 통해서다.


일각 “부동산·교육 목적 위장전입 남용 우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우선 위장 전입이 사실상 합법화될 수 있다. 위장 전입은 실제 거주지를 옮기지 않은 채 주민등록법상 주소만 바꾸는 행위를 의미한다. 복수주소제가 도입되면 지역 경제 활성화보다 부동산·교육 분야 등에서의 기대심리로 남용될 수 있다.

또 복수주소제가 지방 재정 확충에 도움이 되려면 납세 의무도 부여돼야 하는데, 이 경우 납세 부담으로 인해 제도 자체가 활성화되지 않을 수 있다. 이에 일정 기간만 비과세 또는 감면 규정을 두자는 의견도 나오지만, 자칫 실익이 없이 허수 주민만 추가할 우려가 있다.


독일은 일부 지역 납세 의무


유럽에선 복수주소제가 활성화 돼 있다. 독일의 경우 법적으로 주민이 ‘주 거주지’와 ‘부 거주지’로 구분해 여러 곳에 주소지를 가질 수 있다. 다만 참정권은 주 거주지를 기준으로 부여되고, 일부 지역에선 부 거주지에 대한 납세의무도 부과하고 있다. 오스트리아, 스위스도 비슷한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일본은 법적으로 한국과 같은 단수주소제를 운영하고 있지만, 국민의 2개 지역에 거주하는 것을 촉진하는 두 지역 거주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입법처 “비수도권 등 지역 제한…최소한 납세 의무도”


입법조사처는 부작용을 줄이면서 한국에 복수주소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비수도권 지역 ▶89개 인구감소지역 ▶18개 인구 관심 지역 등 지역을 제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경우 주소는 본가에 두고 지방 기숙사에 거주하는 대학생과 직장인, 5도2촌(5일은 도시에서, 2일은 농촌에서 생활)을 즐기는 인구, 요양원 거주자, 혁신도시 이전기관 재직자 중 가족과 분리거주 중인 직장인이 주 대상이 될 수 있다.

주 주소지 주민과 제2주소지 주민 간 권리·의무를 동일하게 적용할지 문제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입법조사처는 참정권이나 주민참여 등 정치적 권리는 부여하지 않는 것이 좋지만, 제도 활성화를 위해 행정 혜택, 공공시설 이용 등 행정적 권리는 부여하면서 최소한의 납세 의무는 지키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다.

하혜영 국회 입법조사관은 “복수주소제는 지난 56년간 운영해온 현행 주민등록제도와 다른 새로운 주소 개념인 만큼, 제도 도입 시 행정 현장에서 상당한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므로 사전에 철저한 준비와 시행착오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며 “전면적으로 실시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시범 적용하는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세종=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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