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 고수열전]③이창연 쌍용C&E 영월광산팀장…광산 안전·복구 최고수
광산 벤치 높이 낮추기, 전자 뇌관 도입…영월광산 무재해·무사고 5580일
120만㎡ 규모 동해 폐광산, 호수 2개 품은 '무릉별유천지'로 복구
"내가 편하면 후배들이 고생한다."
광산(鑛山)에서 3년을 일하면 일하지 못한 곳이 없다는데 그 열 배인 30년 가까이 이곳에서 일한 이창연 쌍용C&E 영월공장 영월광산팀장은 석회석 채굴과 광산 안전의 '최고수(最高手)'다.
이 팀장은 "광산 업무는 눈앞에 보이는 일만 해서는 안 된다. 장기적 플랜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면서 "내가 편하게 일하면 일할수록 내가 떠난 뒤에 업무를 이어받는 후임자와 후배들이 더 힘들기 때문에 지금 더 불편한 일을 찾아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적을 위해 채굴하기 편한 곳, 광물 집하장과 가까운 곳만 챙겨서 편하게 일하면 후임자나 후배들이 더 힘들게 일해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채굴하기 더 멀고 불편한 곳에서부터 채굴을 시작한다는 의미다. 이는 광산업계 종사자들 모두가 공감하는 불문율과 같지만, 모두가 지키지는 않는다. 개인의 실적과 직결되는 문제여서다.
스물여섯에 영월광산 첫 근무…내년 30년째
이 팀장은 26세 때인 1996년 쌍용C&E의 전신인 쌍용자원개발에 입사 후 영월광산으로 발령받았다. 함께 3명이 입사했고, 쌍용양회에서도 30명이 입사했는데 지금은 혼자 남았다. 동해광산과 신기(삼척)광산 등 광산에서만 29년을 근무했다.
그는 "첫 발령지가 지금 책임자로 근무하는 이곳 영월광산이었는데, 첫 발령지에서 광산근무 30년째를 맞이하게 됐다"면서 "감회가 새롭다"고 했다. 강원도 홍천이 그의 고향이다. 평소 자연환경 보호나 지하자원 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있었는데, 대학 입시를 앞두고 각 대학에서 고등학교에 보낸 학과 소개자료를 보고 진로를 결정하게 됐다.
거대한 채굴기가 땅을 파면서 광물을 채굴하는 사진에 마음을 빼앗긴 그는 강원대학교 자원공학과에 진학했다. 그의 과 동기가 70명이었는데, 그들 대부분이 그와 엇비슷한 진로를 선택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광산을 채굴하는 회사에 취업한 뒤 동기들을 만나보니 정작 전공을 살려 광산에 근무하는 동기는 자신뿐이었다는 점에 놀랐다.
그는 "당시에도 광산은 기피하는 업종이었던 같다"면서 "그런데도 나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다. 거대한 중장비의 움직임, 수시 발파작업 등 군대를 갓 전역한 20대 중반 청년에게는 모든 것이 흥미로웠다. 산으로 둘러싸인 사택 생활도 산골 태생인 그에게는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었다.
순식간에 발생한 사고에 충격 "안전에 방심 없다 다짐"
그러다 충격적인 사고를 목격하게 되면서 그의 일에 대한 태도는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됐다. 1997년 영월광산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석회석을 쏟아붓던 32t 덤프트럭이 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전복되면서 운전자가 깔려 숨진 것이다. 눈 깜짝할 새 발생한 사고였다. 당시 유가족에게 멱살을 잡히며 고초를 겪으면서도 선배들은 상가를 꿋꿋이 지켰고, 막내였던 그가 상처받지 않도록 배려했다.
이 팀장은 "당시 사고로 많은 것을 깨달았다. 한순간에 생명이 꺼질 수 있음을 처음으로 실감했다"면서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깨우쳤고, 안전을 두고 절대 방심하지 않겠다는 다짐하는 계기가 됐다"고 회상했다.
40대 초반이었던 이명박 정부 때 해외자원 개발붐이 불면서 해외로, 국내 대기업으로 떠나는 광산 전문가들이 많았다. 업계에서 기술 좀 가진 사람이라면 보다 나은 곳으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그들 중 대부분은 불과 몇 년 새 국내로 다시 복귀하거나 광산과 연관 없는 사업가로 변신하는 풍운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 팀장에게도 헤드헌터들로부터 제의가 많았으나 모두 거절했다. 그는 "다른 회사보다 월급도 많았지만, 무엇보다 끈끈한 선후배 관계가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광산 기술자로 근무하기 시작한 지 1년 만에 겪었던 사망사고와 그 사고 이후 선배들의 행동과 배려에서 이곳보다 나은 직장은 없을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고 했다. 당시 아내로부터 "그렇게 광산에 틀어박혀 있는 것이 좋으냐, 나도 대도시에 나가서 한번 살아보자"는 핀잔도 들었지만, 당시의 선택은 확고했고,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광산에서 일하기는 쉽지 않았다. 업무가 그만큼 위험하기도 하지만, 버티기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 자신은 적성에 맞았지만, 가족은 그와 달랐던 것 같다. 자녀들이 자랄수록 교육 문제도 부각됐다. 결국 아내와 자녀들은 비교적 교육환경이 나은 동해시에 거주하고, 자신은 이곳 사택에서 거주하며 주말에 가족을 만난다.
최근 10년 천인률 4.8…광산업무 여전히 가장 위험
석회석 광산은 지하로 파고들어 가 채굴하지 않고 지표면에 노출된 노천광산이 대부분이다. 지하 채굴광산보다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노천광산은 하루하루가 자연과의 싸움이다. 오랜 시간 퇴적돼 생성된 석회석 광체의 형태와 품위를 정확히 예측해 채굴 순위를 결정해야 하고, 비·눈·바람 등 기후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이 팀장은 "자연을 이기고자 해서는 안 되고, 자연의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시기적절하게 대응 방안을 모색해 가는 순발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노천광산인 영월광산은 하루 1만4000t, 연간 350만t의 석회석을 생산한다. 2023년 기준 국내에서 여덟 번째로 큰 광산이다. 65t 덤프트럭과 로더 등 초대형 중장비 20여대와 파쇄기 6대가 동시에 가동되며, 하루 2t 이상의 폭약을 사용해 세 번 이상의 발파가 진행된다. 영월광산에는 45명의 직원이 근무하는데 한순간의 실수가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종일 긴장의 연속이다.
실제 재해가 가장 자주 발생하는 곳도 광산이다. 광산 재해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지원으로 감소 추세지만, 최근 10년간 천인률(1년간 평균 근로자 1000명당 발생하는 재해 건수)은 4.8로 여전히 가장 높은 곳이 광산 현장이다.
재해를 줄이기 위해 그는 다방면으로 노력해왔다. 신입사원이나 직원들의 안전 관련 교재 제작은 기본이고, 노천광산의 벤치 높이 낮추기, 전자뇌관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다. 광산은 작업이 진행될수록 마을과 가까워지면서 진동과 소음이 점점 더 심해진다. 이를 줄이고, 작업자들의 안전 보장을 위해 영월광산의 벤치(계단식으로 다진 작업 현장) 높이를 통상 13~15m에서 최고 12m로 낮췄다.
또 발파진동 저감을 위해 전자(IC)칩을 장착한 전자뇌관 도입도 추진 중이다. 기존 전기뇌관은 발파작업 때 시차의 오차가 발생해 진동을 여러 차례 느껴야 했다. 전자뇌관은 발파 시차의 오차가 없어 정해진 시간에 단 한 번의 진동만 발생한다. 이 팀장의 적극적인 요청으로 현재 영월광산에서 시험 발파를 하고 있다. 시험 발파 결과에 따라 전국 광산에 도입될 전망이다.
직원 표정 살피는 것도 중요 일과…무릉별유천지 복구도
그는 광산 복구에도 일가견이 있다. 그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채굴이 완료된 120만㎡ 규모의 쌍용C&E 동해 폐광산 부지를 호수 2개를 품은 동해시 최고의 관광지 '무릉별유천지'로 복구시켰다. 무릉별유천지는 석회석 채굴에 사용했던 산림을 단순한 원상복구가 아닌 지역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효율적인 복구를 시행한 좋은 사례로 전국 지자체에서 벤치마킹하고 있다.
그가 평소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무한불성(無汗不成)'이다. '땀 흘리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나의 노력 없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없다는 이 단순한 진리가 현실에서 가장 잘 나타나는 게 광산"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현재 담당자가 작업장 개발, 저품위 석회석의 적기 처리, 장비 재확인, 안전 규칙 준수 등등 반드시 땀 흘리며 즉시 처리하거나, 확인하지 않으면 광산의 생산성 저하는 물론, 사고의 위험에도 노출된다.
이 때문에 평소 직원들의 표정을 잘 살피는 것도 그의 일과 중 하나다. 직원들의 가족관계 등 개인 신상은 두루 꿰고 있다. 그날 아침 표정이 어두운 직원은 반드시 면담을 통해 현장 투입 여부를 결정한다. 고민거리가 있으면 중요한 순간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일 아침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직원도 현장에 내보내지 않는다.
그렇게 쌓아온 성과가 5580일(9월28일 현재) 무재해·무사고 기록이다. 무려 15년 3개월 동안 아무 사고 없이 영월광산이 운영된 것이다. 이 팀장은 "저 혼자만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면서 "모든 직원의 노력과 전사 차원의 안전관리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고 공을 돌렸다.
◆고수의 한마디
정년 퇴임을 며칠 앞둔 선배가 했던 "내가 편하면 후배들이 고생한다"는 충고를 항상 기억하면서 살고 있다. 광산 업무는 눈앞에 보이는 일만 해서는 안 된다. 장기적 플랜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 광물 집하장과 가까운 곳이나 작업하기 편한 곳만 우선 채굴하면 내가 편하고 당장 실적도 많이 올릴 수 있어서 좋지만, 후임자나 후배들은 그만큼 더 먼 곳에서, 작업하기 불편한 곳에서 채굴해야 한다. 지금 조금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좀 멀고, 험한 곳에서 채굴하면 뒤에 일하는 사람도 편하지만, 광산도 채굴할 게 많아 오래 유지된다. 광산업계 종사자 모두가 아는 얘기지만, 모두가 이를 실천하지는 않는다. 내가 문제점을 해결을 위해,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현장에서 땀 흘리며 뛰어다니는 만큼 내 업무의 진정한 주체는 내가 되고, 그 분야에서 나는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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