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청년은 못하는 ‘대학생 공기관 아르바이트’ 여전 [쿠키청년기자단]
최세희 2024. 9. 28. 16:04
-학력 차별로 아르바이트 지원도 못 하는 비대학생 청년들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15곳이 대학생 한정 선발
-지자체 공통 답변 ‘검토 중’
“공기관 아르바이트는 임금체불이나 최저임금 못 받을 걱정을 안 해도 되잖아요. 그런데 대학생이 아니라 지원도 못 했어요.”
경기 안산시에 거주하는 재수생 장예빈(22)씨는 안산시청에서 선발하는 ‘공기관 아르바이트 사업’에 지원할 수 없었다. 선발 대상이 ‘대학 재학생’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흔히 방학철 대학생 아르바이트라 불리는 공기관 아르바이트 사업은 지자체 대학생들의 행정 업무 경험이 목표다.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적게는 50명, 많게는 100명가량의 대학생을 선발한다. 이들은 시청이나 복지센터, 체육관, 관광지 같은 공공기관으로 배정된다. 보통 서류 정리나 청소, 어린이 학습 보조 같은 단순 업무를 맡게 된다. 어린이 학습 보조는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다. 주로 간단한 사칙연산 문제 풀이나 문제집 채점 등을 해주는 것으로, 특별한 학력이 필요하지 않다.
이 같은 공기관 아르바이트는 최저시급 미달이나 임금체불, 근무시간 변동 같은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어 인기가 많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줄곧 학원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해 온 장씨는 “대학생이 아닌 청년들에게도 공기관 아르바이트처럼 안전하고 좋은 환경에서 일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헌법 11조에 따라 “공기관 아르바이트 사업 대상을 대학생으로 한정하는 건 학력 차별”이라며 권고 조치를 내렸다. 헌법 11조는 모든 국민이 성별이나 종교, 사회적 신분에 의해 어떠한 차별 받지 아니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고용정책기본법 7조도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할 때 어떠한 이유로든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인권위는 “행정 업무들이 반드시 전문대학 이상 학력을 요구되는 사업이라 볼 수 없다”며 “만일 전문 지식이 필요한 업무라면 그 능력을 별도 채용 과정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1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많은 지자체가 사업 선발 대상을 대학생으로 한정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25개 자치구 중 15곳이 올해 여름방학 공기관 아르바이트 선발 대상을 ‘대학교 재·휴학생”으로 한정했다. 반면 성동구는 지난해 인권위 권고가 내려오자마자 그해 사업 대상을 청년 정체로 확대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지난해 12월 SNS를 통해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까닭 없는 관행’이라 지칭했다. 그는 “분명 성동구에도 대학생이 아닌 청년이 있을 것이고, 그들 또한 주민으로서 각자의 생각과 의견을 갖고 성동구와 함께 일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존의 대학생 아르바이트 사업을 수정한 이유를 밝혔다.
성동구를 제외한 9개 구 역시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선발 대상을 확대했다. 사업명에 들어갔던 ‘대학생’이란 단어가 모두 ‘청년’으로 대체됐을 뿐, 시급이나 업무 내용은 이전과 같다.
지방 상황도 비슷하다. 강원 철원군이나 전남 여수시 같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지자체 대다수가 여전히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고수하고 있다. 강원도는 도내 주요 도시인 원주와 강릉이 지원 자격을 대학 재·휴학생으로 한정 중이다. 충청북도도 충주시와 청주시 둘 다 대학 재학생만 선발 중이며, 부산광역시도 모집 대상을 ‘2년제 이상 대학 재학생’으로 명시했다.
재수생인 김유지(가명·20)씨가 사는 대전광역시도 마찬가지다. 대전광역시의 공기관 아르바이트는 타지역 청년이라도 대전 소재 대학에 다니고 있다면 지원할 수 있다. 반면 김씨는 대전에서 나고 자랐지만, 대학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지원할 수 없다. 김씨는 “대학 재학생만 공공기관에서 일해볼 수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럼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은 어떤 경로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또한 “학력에 따라 직업이 정해지는 것도 아닌데 대학생만 선발한다는 건 불공평하다”고 밝혔다.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고수 중인 지자체들의 공통된 주장은 “선발 대상 확대 검토 중”이다. 특히 동대문구는 지난 6월 언론을 통해 ‘아르바이트 선발 대상 확대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 밝혔다. 그러나 언제 시행할 예정인지에 대해서는 지난 16일 “검토 후 확정된다면 2025년 사업에 만전을 기하겠다”고만 밝혔다. 경기 안산시는 “선발 확대를 위한 조례 개정을 하반기에 검토할 예정”이라 알렸으며, 대전시는 “각종 행정 절차 등으로 사업 시기를 구체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인권위 권고가 있기 전부터 사업 대상자를 확대한 지자체도 있다. 경남 양산시는 지난 2022년부터, 밀양시는 2021년부터 대학생 행정 인턴 사업 대상을 청년으로 확대했다. 집안 사정으로 대학 진학을 미룬 박지민(가명·21)씨는 자신이 거주 중인 성북구와 다른 지자체를 비교하며 “진작 선발 대상을 확대한 곳도 있는데 우리 구가 못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세희 쿠키청년기자 darang1220@naver.com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15곳이 대학생 한정 선발
-지자체 공통 답변 ‘검토 중’
“공기관 아르바이트는 임금체불이나 최저임금 못 받을 걱정을 안 해도 되잖아요. 그런데 대학생이 아니라 지원도 못 했어요.”
경기 안산시에 거주하는 재수생 장예빈(22)씨는 안산시청에서 선발하는 ‘공기관 아르바이트 사업’에 지원할 수 없었다. 선발 대상이 ‘대학 재학생’으로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흔히 방학철 대학생 아르바이트라 불리는 공기관 아르바이트 사업은 지자체 대학생들의 행정 업무 경험이 목표다. 지자체마다 다르지만 적게는 50명, 많게는 100명가량의 대학생을 선발한다. 이들은 시청이나 복지센터, 체육관, 관광지 같은 공공기관으로 배정된다. 보통 서류 정리나 청소, 어린이 학습 보조 같은 단순 업무를 맡게 된다. 어린이 학습 보조는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다. 주로 간단한 사칙연산 문제 풀이나 문제집 채점 등을 해주는 것으로, 특별한 학력이 필요하지 않다.
이 같은 공기관 아르바이트는 최저시급 미달이나 임금체불, 근무시간 변동 같은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어 인기가 많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줄곧 학원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해 온 장씨는 “대학생이 아닌 청년들에게도 공기관 아르바이트처럼 안전하고 좋은 환경에서 일할 기회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헌법 11조에 따라 “공기관 아르바이트 사업 대상을 대학생으로 한정하는 건 학력 차별”이라며 권고 조치를 내렸다. 헌법 11조는 모든 국민이 성별이나 종교, 사회적 신분에 의해 어떠한 차별 받지 아니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고용정책기본법 7조도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할 때 어떠한 이유로든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인권위는 “행정 업무들이 반드시 전문대학 이상 학력을 요구되는 사업이라 볼 수 없다”며 “만일 전문 지식이 필요한 업무라면 그 능력을 별도 채용 과정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1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많은 지자체가 사업 선발 대상을 대학생으로 한정하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25개 자치구 중 15곳이 올해 여름방학 공기관 아르바이트 선발 대상을 ‘대학교 재·휴학생”으로 한정했다. 반면 성동구는 지난해 인권위 권고가 내려오자마자 그해 사업 대상을 청년 정체로 확대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지난해 12월 SNS를 통해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까닭 없는 관행’이라 지칭했다. 그는 “분명 성동구에도 대학생이 아닌 청년이 있을 것이고, 그들 또한 주민으로서 각자의 생각과 의견을 갖고 성동구와 함께 일할 수 있을 것”이라며 기존의 대학생 아르바이트 사업을 수정한 이유를 밝혔다.
성동구를 제외한 9개 구 역시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선발 대상을 확대했다. 사업명에 들어갔던 ‘대학생’이란 단어가 모두 ‘청년’으로 대체됐을 뿐, 시급이나 업무 내용은 이전과 같다.
지방 상황도 비슷하다. 강원 철원군이나 전남 여수시 같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지자체 대다수가 여전히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고수하고 있다. 강원도는 도내 주요 도시인 원주와 강릉이 지원 자격을 대학 재·휴학생으로 한정 중이다. 충청북도도 충주시와 청주시 둘 다 대학 재학생만 선발 중이며, 부산광역시도 모집 대상을 ‘2년제 이상 대학 재학생’으로 명시했다.
재수생인 김유지(가명·20)씨가 사는 대전광역시도 마찬가지다. 대전광역시의 공기관 아르바이트는 타지역 청년이라도 대전 소재 대학에 다니고 있다면 지원할 수 있다. 반면 김씨는 대전에서 나고 자랐지만, 대학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지원할 수 없다. 김씨는 “대학 재학생만 공공기관에서 일해볼 수 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럼 대학에 가지 않은 청년은 어떤 경로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또한 “학력에 따라 직업이 정해지는 것도 아닌데 대학생만 선발한다는 건 불공평하다”고 밝혔다.
대학생 아르바이트를 고수 중인 지자체들의 공통된 주장은 “선발 대상 확대 검토 중”이다. 특히 동대문구는 지난 6월 언론을 통해 ‘아르바이트 선발 대상 확대를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라 밝혔다. 그러나 언제 시행할 예정인지에 대해서는 지난 16일 “검토 후 확정된다면 2025년 사업에 만전을 기하겠다”고만 밝혔다. 경기 안산시는 “선발 확대를 위한 조례 개정을 하반기에 검토할 예정”이라 알렸으며, 대전시는 “각종 행정 절차 등으로 사업 시기를 구체화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반면 인권위 권고가 있기 전부터 사업 대상자를 확대한 지자체도 있다. 경남 양산시는 지난 2022년부터, 밀양시는 2021년부터 대학생 행정 인턴 사업 대상을 청년으로 확대했다. 집안 사정으로 대학 진학을 미룬 박지민(가명·21)씨는 자신이 거주 중인 성북구와 다른 지자체를 비교하며 “진작 선발 대상을 확대한 곳도 있는데 우리 구가 못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최세희 쿠키청년기자 darang12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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