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일본이 문제"라던 이시바... 총리 돼도 같을까
[윤현 기자]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자민당 총재 당선을 보도하는 NHK 방송 |
ⓒ NHK |
앞서 네 차례 총재 선거에 출마했다가 모두 낙선했던 이시바 전 간사장은 "38년 간의 정치 인생을 총결산하며 마지막 싸움에 도전한다"라는 각오로 이번 선거에서 결선 투표 끝에 다카이치 사나에 경제안보담당상을 꺾었다.
이시바 총재는 내달 1일 임시국회에서 제102대 일본 총리로 선출된 뒤 새 내각을 발족하게 된다. 그는 총재 당선 기자회견에서 "새 내각이 발족하기 때문에 언젠가는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라며 "가급적 빨리 심판을 받고 싶다"라고 이른 시일 내에 의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치르겠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여전한 파벌 영향력... 이시바가 바꿀까
그러나 <요미우리신문>은 이번 선거가 '나쁜 후보 골라내기' 분위기로 치러지면서 무파벌이자 비주류인 이시바 총재가 당선됐다고 분석했다.
이시바 총재와 함께 '3강 후보'로 평가됐던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은 40대 젊은 후보로 주목받았으나 정책에 대한 이해 부족, 불투명한 정책 실현 가능성, 경험 부족 등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1차 투표에서 1위에 올랐지만 결선 투표에서 이시바 총재에게 역전패한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도 일본의 첫 여성 총리에 도전했으나 '여자 아베'로 불릴 정도로 너무 뚜렷한 보수색이 발목을 잡았다.
<요미우리>는 "기시다 후미오 정권에서 개선된 한일 관계가 다시 나빠져 한미일 연계에 금이 가면 러시아, 중국, 북한의 불온한 움직임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을 지지하는 데 걸림돌이 됐다"라고 진단했다.
특히 총리가 되어도 야스쿠니신사를 계속 참배하겠다고 공언하는 등 강경 보수로서의 행보를 강조하면서 '너무 오른쪽으로 간다'는 우려가 퍼졌다고 전했다.
다만 이번 총재 선거를 통해 자민당의 파벌 정치가 여전히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드러났다는 비판도 나온다. '비자금 스캔들' 이후 자민당은 주요 아베파, 기시다파 등 주요 파벌이 대부분 해산을 선언하며 아소 다로 부총재가 이끄는 아소파 한 개만 남아 있다. 이시바 총재도 공식적으로는 어느 파벌에도 속해있지 않다.
반면에 결선 투표에서 파벌에 의한 표 몰아주기 덕분에 이시바 총재가 역전승했다는 분석이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해산한 최대 파벌 아베파, 그리고 아소파 의원들의 지지를 얻은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과의 대결에서 이시바 총재가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은 기시다 총리가 이끌었던 옛 기시다파의 지지였다"라고 전했다.
<아사히신문>도 "옛 기시다파 소속 의원들과 고이즈미 전 환경상을 지지한 세력이 결선 투표에서 이시바 총재에게 표를 던지면서 역전극이 벌어졌다"라고 "기시다 총리가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과는 정책이 맞지 않는다며 이시바 총재 투표하라는 의사를 파벌에 속했던 의원들에게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라고 보도했다.
일본 공영방송 NHK는 "자민당에 여전히 파벌의 영향력은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 네 차례나 총재 선거에서 낙선했던 이시바 총재가 이번에 당선된 것은 '탈파벌'의 상징으로 볼 수도 있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앞으로도 자민당 파벌의 영향력이 어떻게 될지 이시바 총재의 정권 운영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라고 덧붙였다.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자민당 총재 당선자 연설을 생중계하는 NHK 방송 |
ⓒ NHK |
그는 "한국이 납득할 때까지 위안부 문제를 사죄해야 한다"라고 주장했고, 2019년 8월 한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연장하지 않겠다고 결정했을 때 일본 측에 책임이 있다며 한국을 두둔했다. 당시 자신의 블로그에 "일본의 전후 전쟁 책임을 정면으로 직시하지 않았던 것이 많은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했다.
이시바 총재는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기시다 총리의 외교 노선을 계승할 것으로 보인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을 합사하며 일본 군국주의 상징으로 꼽히는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다만 정권을 향해 쓴소리를 해왔던 과거와 달리 총리가 된 이상 일본 정부이 기본적인 입장에서 파격적으로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당내 비주류인 이시바 총재가 장기 집권을 하기 위해서는 자민당의 존재 기반인 보수층을 외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자신을 '안보 전문가'로 내세우며 자위대의 헌법 명기, 미국과의 핵 공유, 미일 공조를 위해 미국에 자위대 훈련기지 설치 등을 주장하고 있어 이 과정에서 한국이나 중국과의 갈등도 예상된다.
또 다른 공약인 북한과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아시아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창설 등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최대한 신속하게 총선을 치르겠다고 말했지만, 기시다 내각의 부진과 비자금 스캔들 등으로 자민당의 인기가 떨어진 터라 쉽지 않은 승부를 해야 하는 이시바 총재로서는 어쩔 수 없이 보수색을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
자민당의 한 간부는 산케이신문에 "다카이치 경제안보담당상이 비록 패했지만 기대 이상의 지지를 얻으면서 자민당은 보수층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보여줬다"라며 "이시바 총재가 어떻게 처신하느냐가 중요하다"라고 짚었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가 원활한 과거사 해결 및 관계 증진을 위해 이시바 내각과 신중하면서도 빠르게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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