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2품 벼슬 버리고 의병 투쟁, 망국 직후 순국

정만진 2024. 9. 2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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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독립운동가 16] 9월 28일 순국한 송병우 지사

[정만진 기자]

 선산 출신 독립유공자 공적비(구미시 선산읍 선주로 127-4, 충혼탑 아래)
ⓒ 정만진
1910년 9월 28일 송병우(宋秉祐) 지사가 타계했다. 연월일로 가늠해볼 때 "순국하셨구나" 싶은 판단이 든다. 경북 선산군 구미면 선기리(현 구미시 선기리) 257번지에서 1867년 6월 21일 출생했으니 향년 43세였다.

'디지털 구미문화대전'에 따르면 송 지사는 "평소 애국심이 투철하고 천성이 강직하였으며 한학을 닦아 문장이 지역에 널리 알려졌다. 일본군에 항거하기 위해 참찬(參贊)에서 물러"났다.

참찬은 조선시대 의정부 정2품으로, 요즘에 견주면 장관급 고위 관직이다. 을사늑약(1905년)이 체결되는 것을 보고 참찬 벼슬을 내던진 송 지사는 "왕산 허위(許蔿, 허위 또한 참찬, 현재의 대법원장 서리인 평리원 서리재판장 등을 지낸 인물)와 함께 의병 모집에 나서 소모장(召募將, 의병 모집 책임자)이 되어 의병을 규합"하였다.

허위 의병장의 경기도 이동 후 독자 활동

서울 탈환에 의병 활동의 주안점을 둔 허위 의병장이 1907년 4월 군대를 경기도로 옮겨갔다. 송 지사는 지역에 남아 독자적으로 300여 군사를 지휘했다. 이때 상주 함창으로 진격해 주둔 중인 적을 격파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해 10월에는 이강년, 민긍호 등 여러 의진과 연합해 문경 갈평리 전투에서 일본군 을 무찔렀다. 그후 충북 단양 매바우에서 예천·원주·충주 방면으로 내습하는 일본군과 10여 일 싸워 타격을 입혔다. 또 노병대 의진과 합세해 성주, 거창 등에서 일본군을 사살하기도 했다.

나라는 이미 망했지만 항일전쟁은 계속

하지만 나라가 이미 망해버린 1910년 9월 금릉군(현 김천시) 지례로 이동 중에 적의 기습을 받았다. 아군에 많은 사상자가 생겼고, 송병우 본인도 총상을 입었다. 그는 겨우 포위망을 뚫어 구성면 화원리 이명균의 집에 닿을 수 있었다. 하지만 치료와 요양의 효험도 없이 끝내 9월 28일 순국하고 말았다.

송병우 의병장은 그렇게 순국으로 투쟁의 막을 내렸지만, 아직 살아남은 의병들은 대부분 국외로 망명해 독립지사가 되었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신편 한국사> '국권회복운동'은 "의병전쟁은 독립운동의 단서를 열었다는 의미에서 주목되지만 독립운동에서도 독립군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라고 기술한다.

경술국치 후의 전투는 의병인가 독립군인가

송 지사의 순국일 1910년 9월 28일은 망국 이후이다. 그의 마지막 전투는 의병전쟁인가 독립운동인가? '국권회복운동'의 다음 기술이 좋은 참고가 되는 듯하다.

"주체조건은 변하지 않았는데 객체조건만을 보면 1910년 8월 29일까지는 의병이라 하고 30일부터는 독립군이라 해야 한다는 극단 논리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주체조건을 고려하여 1910년 전이라도 독립군으로 전환한 경우가 있었던가 하면, 반면 대한제국이 멸망한 1915년이라도 의병으로 존재한 경우가 있었다고 이해되는 것이다."

선산 출신 독립유공자 공적비

국가보훈부 독립유공자 공적 정보는 송병우 지사 '관련 현충시설'로 "선산 출신 독립유공자 공적비"를 제시하고 있다. 1993년 10월 22일 건립되었고, 소재지는 경북 구미시 선산읍 선주로 127-4이다. 충혼탑 바로 아래 산비탈에 있다.

찾아가 보면, 3·1독립운동 권오환(1892~1957), 김관묵(1894~1967), 김의경(1898~1949), 이원길(1893~1920), 최재화(1892~1962) 지사, 의열투쟁 황진박(1888~1942) 지사, 국내항일 김영득(1908~1940), 이종식(1891~미상), 장재성(1914~1939) 지사, 일본방면 항일투쟁 남상순(1926~1978), 육홍균(1900~1983) 지사, 광복군 김종철(1924~미상), 전재덕(1924~2016) 지사의 비석이 각각 건립되어 있다.

송병우 지사 기념비는 없다. 어째서 국가보훈부는 이곳을 '(송병우 지사) 관련 현충시설'로 소개하였을까? 앞으로 세워질 예정이라는 말인가?

덧붙이는 글 | 국가 인정 독립유공지가 1만8천여 분 계시는데, 국가보훈부와 독립기념관의 '이달의 독립운동가'로는 1500년 이상 걸립니다. 한 달에 세 분씩 소개해도 500년 이상 걸립니다. 그래서 돌아가신 날, 의거일 등을 중심으로 '오늘의 독립운동가'를 써서 지사님들을 부족하나마 현창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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