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노동자 유입, 쿼터 확대만이 해법은 아니다"[외노자 절벽]

이현우 2024. 9. 2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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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전문가들이 말하는 바람직한 정책 방향
비자 쿼터 확대와 맞물려 노동환경 개선 필요
외노자 자녀들 국내 정착도 시급
편집자주
2004년 8월 필리핀 근로자 92명의 입국으로 시작된 외국인노동자(이하 외노자) 고용허가제가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외국인노동자 숫자는 지난해 말 기준 92만명으로 지난 20년간 1만배 늘었다.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3D업종 인력을 충당하고, 더욱 빨라지는 저출산·고령화 기조를 감안하면 앞으로 훨씬 많은 외노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외노자들은 비자 장벽에 가로막혀 숙련공이 되기 전에 추방되거나 불법체류자로 잔류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구 감소가 시작된 일본 등 주변국가들이 앞다퉈 이민장벽을 낮추며 외노자들의 정착을 적극 유도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향후 국가간 외노자 쟁탈전이 예상되는 상황이지만 한국은 이민정책을 주관할 컨트롤타워조차 만들지 못해 불법체류자만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한국의 외노자, 이민정책의 현주소와 함께 지속가능한 성장과 노동가능인구 확보를 위한 바람직한 정책 방향에 대해 짚어봤다.

노동력 부족 해결을 위해 정부가 외국인노동자의 비자 쿼터 확대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이민정책 전문가들은 쿼터 확대와 맞물려 정확한 노동수요를 파악하고, 사양산업의 구조조정과 노동환경 개선이 동반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야 지속가능한 외국인노동자의 유입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업종별 필요인력 산출부터 정확해야…근거없이 쿼터만 늘려선 안돼"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전문가들은 정부의 외국인노동자 및 이민 관리정책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먼저 노동수요를 정확히 파악하고 거기에 맞춰 비자 쿼터를 관리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확한 데이터 없이 외국인노동력 수급만 지속적으로 늘리면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이민정책 전문가인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고용허가제로 들어오는 비전문취업(E-9) 비자 쿼터를 크게 늘렸는데, 이게 정확히 무엇을 근거로 늘린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며 "매년 얼마나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지, 업종별 지역별로 정확한 데이터에 근거해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정부의 외국인노동자 관리는 여러부처에 산발적으로 걸쳐 있다. 비자별, 업종별로 법무부와 고용노동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등 4곳으로 나뉘어있다보니 통합적인 관리가 어려운 상황이다.

설 교수는 "사실 지금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감소한 시점이 아니다. 지방 소멸 문제도 노동력이 부족한게 아니라 젊은 세대들이 일할만한 일자리가 없어서 모두 수도권으로 몰리다보니 발생한 미스매칭이 주된 원인"이라며 "이러한 미스매칭으로 내국인 고용시장에서 구직난과 구인난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데, 단순히 구인난이 발생한 업종에 외국인노동자를 계속 투입하는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내국인 노동자들의 반발만 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열악한 환경 개선않고 외노자 투입으로 때우면 안돼…사양산업 구조조정 필요"
석원정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대표

노동환경이 열악한 사양산업의 구조조정과 노동환경개선도 시급한 과제로 지목됐다. 석원정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대표는 "최근 이탈자가 발생해 논란이 된 필리핀 가사관리사 문제만 봐도 결국 내국인 관리사는 비싸니까 열악한 환경에도 저임금으로 일할 외국인노동자를 쓰자는 논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입장 바꿔놓고 생각해서 우리나라 사람이 외국에 가서 가사관리사로 일하는데 통금시간에 점호까지 하라고 하면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석 대표는 "노동환경이 너무 열악한 사양산업들은 구조조정, 환경개선과 함께 정부지원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외국인, 내국인 근로자가 함께 일할 환경을 먼저 조성해야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열악한 노동환경, 저임금인 분야에는 내국인 노동자들이 기피하니 외국인 노동자들로 때우는 방식의 고용구조가 지속되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석 대표는 "필리핀 가사관리사의 사례에서도 이들을 데려오기전에 먼저 내국인 가사관리사들의 임금 보전,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면 좀더 이 문제를 풀어나가기 쉽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며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대접을 열악하게 하는 것은 결국 노동시장 환경 자체를 열악하게 만들고 외국인 혐오와 차별만 남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자 쿼터 늘리기 전에 한국서 자란 외노자 자녀들 정착부터 신경써야"
정기선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박사

국내 불법체류자와 그 자녀들이 산업인력으로 한국에 정착할 수 있도록 제도적 개선을 먼저 마련해야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기선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박사는 "주로 농촌지역 파종기나 수확기 일손으로 들어오는 계절근로자(E-8)는 최대 8개월까지만 비자 연장이 가능하다보니 한국에서 더 오래 일을 하고자 불법체류자가 된 사람이 많다. 농촌서 일하는 외국인노동자 95% 가량이 불법체류자인 상황"이라며 "비자 쿼터를 늘려 새로 외국인노동자를 더 유입시키기 이전에 불법체류자가 된 인력들부터 비자 문제를 개선할 방안을 찾고, 활용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정 박사는 "불법체류자나 외국인노동자들 사이에서 나온 자녀들이 2만명 정도로 집계되는데 한국에서 자라났지만 성인만 되면 부모 국적 나라로 추방되는 상황"이라며 "한국문화에 익숙치 않은 외국인노동자들의 유입 쿼터는 크게 늘리면서 정작 한국문화 속에서 자라난 사람들은 인력으로 활용할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노동자들과 관련한 비자체계도 현재보다 간단히 정리돼야한다고 정 박사는 강조했다. 그는 "내국인도 이해하기 어려운 너무 복잡한 비자 체계를 정리하고 법제를 이해하기 쉽게 바꿔야한다"며 "현재같은 구조가 이어지면 결국 외국인노동자들과 당국 사이에서 돈을 벌고 있는 이민 브로커들의 배만 불리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김진선 기자 caro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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