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인종차별 세계 5위 오명…반이민정서 어쩌나[외노자 절벽]
"외국인이 일자리 위협" 반감 확산
정부는 외노자 비자 쿼터 확대에만 집중
편집자주
2004년 8월 필리핀 근로자 92명의 입국으로 시작된 외국인노동자(이하 외노자) 고용허가제가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외국인노동자 숫자는 지난해 말 기준 92만명으로 지난 20년간 1만배 늘었다. 내국인들이 기피하는 3D업종 인력을 충당하고, 더욱 빨라지는 저출산·고령화 기조를 감안하면 앞으로 훨씬 많은 외노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외노자들은 비자 장벽에 가로막혀 숙련공이 되기 전에 추방되거나 불법체류자로 잔류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저출산으로 인구 감소가 시작된 일본 등 주변국가들이 앞다퉈 이민장벽을 낮추며 외노자들의 정착을 적극 유도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향후 국가 간 외노자 쟁탈전이 예상되는 상황이지만 한국은 이민정책을 주관할 컨트롤타워조차 만들지 못해 불법체류자만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한국의 외노자, 이민정책의 현주소와 함께 지속가능한 성장과 노동가능인구 확보를 위한 바람직한 정책 방향에 대해 짚어봤다.
한국의 외국인노동자·이민정책의 큰 장애물은 반(反)이민 정서다. 한국이 세계 주요국 중 다섯번째로 인종차별이 심한 국가라는 조사결과가 나올 정도로 반이민정서는 심각한 수준이다. 일부 업종에서 외국인노동자들이 내국인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지만 정부는 외국인노동자들의 비자 쿼터를 확대하는 정책에만 집중하고 있다. 정작 외국인노동자들의 정착을 돕고 문화적 간극을 메우는 역할을 하는 지원센터들의 예산은 삭감됐다.
"韓 인종차별 최악국가 5위"…반이민정서 심화미국 시사주간지인 US뉴스&월드리포트가 이달 공개한 '세계 인종차별적 국가 순위'에서 한국은 조사 대상 89개국 중 5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9위에서 4단계가 올라간 것으로 이란, 벨라루스, 바레인, 미얀마 다음으로 인종차별이 심한 국가로 조사됐다. 해당 순위는 US뉴스&월드리포트가 매년 발표하는 수치로 전 세계 1만7000명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기반한다. 외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이 얼마나 인종차별이 심한 국가로 인식되고 있는지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US뉴스&월드리포트는 "미국 국무부의 지난해 인권보고서에서 한국은 이민자 자녀를 위한 보육 지원이 부족하고, 취업 허가 정책으로 인해 이민자의 영주권 자격이 제한되는 등 사회적 차별이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며 "대구시의 이슬람 모스크 건립 예정지에서 주민들이 돼지머리를 걸고 바비큐 파티를 열었던 일도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설명은 지난 4월 미 국무부에서 발표한 '2023 국가별 인권보고서'의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미 국무부는 보고서에서 한국에 대해 '체계적인 인종 혹은 민족에 대한 폭력과 차별(Systemic Racial or Ethnic Violence and Discrimination)'이 자행된 국가라고 평가했다. 또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직장에서 차별을 받았으며 한국의 고용허가제에 따른 비자 체류기간은 4년10개월로 영주권 신청을 위한 최소 체류기간인 5년보다 짧게 설정돼 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정책이 외국인노동자를 영주권, 혹은 시민권 자격에서 제외시키기 위해 고안됐다고 주장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2023년 3월 대구시 주민들은 모스크 건설을 막기 위해 건설부지 인근에 돼지머리를 걸고 바비큐 파티를 여는 등의 시위를 벌였으며 해당 행위는 한국 국가인권위원회에서도 돼지고기를 이용해 이슬람 문화를 폄하하는 증오 표현의 한 형태라고 지적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인 도입 반대하는 건설업종…"저임금 외국인력이 일자리 위협"외국인노동자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건설업종 분야를 중심으로 외국인력 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점차 커지고 있다. 저임금 인력이 내국인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내국인 고용만 허가했던 분야에서 외국인노동자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은 올해 2월부터 정부에 외국인력 도입 논의 중단을 요구하며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총파업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건설업 전반에서 외국인노동자 비중이 높아진 상황이지만 플랜트건설 분야는 그동안 내국인 고용만 허용돼왔다. 내국인 일자리보호와 기술유출 방지 등을 이유로 2007년부터 외국인노동자 고용이 전면 금지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업계에서 인력 약 2만명 이상이 부족하다는 호소가 나오자 고용노동부는 외국인력 고용 허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혔고, 이에 반대 여론이 거세졌다.
업계에서는 비전문취업(E-9) 비자 인력들의 고용을 허가해 외국인력 도입 대상을 비숙련·단순노무직에 한정하면 내국인 일자리 침범도 없고 기술 유출 문제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 중이다. 하지만 노조 측에서는 저임금 외국인력이 도입되면 노동환경 자체가 악화될 것이라며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비자 쿼터 확대에만 집중…외국인 지원센터 보조금은 삭감인종차별과 반이민정서가 극심한 상황에서도 정부 정책의 초점은 고용허가제 대상인 E-9 비자 인력들의 연간 쿼터를 늘리는 데 집중돼있다. 올해 E-9 비자 인력 쿼터는 지난해 12만명보다 4만5000명 늘어난 16만5000명으로 2004년 고용허가제 도입 이후 최대 규모로 늘어났다. 반면 외국인노동자들의 정착을 돕고 사회통합 프로그램 교육을 담당하는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의 예산은 오히려 삭감된 상황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9월부터 전국 9개 거점센터와 소지역센터 35곳 등 40여개로 구성된 외국인노동자지원센터에 대한 지원예산 71억원을 모두 삭감한다고 밝혔다. 이에 거점센터들이 일부 폐쇄됐다. 올해 예산이 18억원으로 일부 복원됐지만, 과거 예산과 비교하면 대폭 줄어들 셈이다. 예산 삭감으로 그동안 10~18명 수준으로 운영되던 센터들은 인력을 6명 수준으로 크게 줄여야 했다.
폐쇄를 면한 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들도 극심한 일손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김재업 인천외국인근로자지원센터장은 "올해부터 세수 부족 등의 이유로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인건비를 줄여야만 했다"며 "우리 센터도 원래 13명이던 직원을 6명으로 줄였다. 매주 일요일마다 300명의 외국인근로자들이 사회통합 프로그램 수업을 들으러 오는데 일손이 부족해 이를 진행하기 벅찬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
김진선 기자 caro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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