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 기자의 안녕, 나사로] 온라인·사교육에 갇힌 자녀들에 스스로 독립할 수 있는 기회 주길

최기영 2024. 9. 28.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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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Z세대’ 위한 부모의 역할
‘불안 세대’로 살아가는 이 시대의 다음세대가 제대로 미래를 준비해나가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독립의 길로 안내해야 할 부모 역할이 중요하다. 언스플래시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음식점, 카페에서 마주하는 놀라운 장면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분실을 염려하지 않고 스마트폰, 지갑 등 귀중품을 무심하게 테이블에 올려두는 모습, 다른 하나는 스마트폰을 향해 고개를 떨군 채 망부석이 된 아이들 모습이다.

최근 가족 행사 참석을 위해 11년 만에 한국을 찾은 지인도 내게 깜짝 놀랄 만한 장면을 목격했다며 목소릴 높였다. 그의 시선에 꽂힌 건 거리를 걸을 때,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할 때, 심지어 편의점에서 컵라면을 먹으면서도 스마트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 청소년들의 모습이었다.

지난해 한국의 10대 청소년 하루 평균 스마트폰 이용 시간은 2시간 41분(정보통신정책연구원)에 달한다. 더 큰 문제는 이들이 접하고 있는 콘텐츠다. 콘텐츠의 통로는 유튜브 인스타그램 틱톡 등 10대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플랫폼이다. 성인 인증을 하지 않아도 우회적으로 회원 가입이 가능해 그동안 청소년들이 불법 유해 콘텐츠에 무방비로 노출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최근엔 이로 인해 10대 청소년들이 딥페이크 가해자 또는 피해자로 전락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 땅의 부모들이 극도의 불안감을 갖고 바라보는 현실이지만, 사실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도록 방치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부모 자신이다.

출간과 함께 전 세계를 뜨겁게 달구며 베스트셀러에 오른 ‘불안 세대’(웅진지식하우스)에서 저자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 교수는 정신 건강이 심각하게 무너져 내린 Z세대와 그들의 부모세대를 향해 폐부를 찌른다. 날카로운 경고는 수십 년간의 추이를 그래프로 구현했을 때 드러나는 시대별 10대 우울증 환자와 응급실에 실려 온 자해 환자 수를 바탕에 둔다. 그리고는 극적 전환이 벌어진 시기를 콕 짚는다. 바로 2010~2015년이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하이트 교수는 이 시기를 스마트폰 출시, 전면 카메라의 장착과 ‘셀카’의 급증,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비약적 발전으로 이어지는 대격변기로 꼽는다. 그러면서 “이 시기 청소년들이 놀이기반 아동기(play-based childhood)가 아닌, 화면 기반 아동기(screen-based childhood)를 보내게 됐으며 이 변화의 근간에 부모들의 인식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다.

인식 오류의 핵심은 안전에 있다. 아이들이 집 밖에서 부모의 관리감독 없이 놀이 활동하는 것보다 방 안에서 디지털화된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게 상대적으로 더 안전하다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며 스릴을 느끼고, 눈과 몸을 맞대며 교감하다 갈등과 다툼, 화해를 경험하는 바깥 놀이가 사라진 자리를 방구석 온라인 세계가 해일처럼 집어삼킨 형국이다.

이 세계에선 상호 소통하며 사회 규범을 배울 기회는 제공되지 않는다. 대신 불특정 다수가 올려놓은 왜곡된 콘텐츠를 반복적으로 접하며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대상에게 열등감을 느낀다. 여기에 더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비방과 모욕, 성적 착취에 노출된다. 현실 세계에서는 부모로부터 과잉보호를 당하면서도 가상 세계에서는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셈이다.

한국계 미국인 아내와 결혼한 하이트 교수는 과거 한국에 머무르며 경험한 청소년기 사회 문화를 이렇게 진단한다. “집단주의를 중시하는 한국의 문화적 특성상 대인 관계가 끈끈하다는 점이 어느 정도 방어막이 될 순 있습니다. 하지만 저출생 기조로 인해 대부분 외동으로 유년기를 보내는데도 어른 없이 또래 아이들과 노는 시간이 적다는 점, 과외와 학원으로 이어지는 과도한 사교육 등으로 인해 방어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모의 역할은 궁극적으로 자기의 필요가 없게 만드는 것이며 자녀 스스로 독립적 사회구성원이 되도록 기회를 주는 것이지요.”

성경은 부모로서 자녀가 독립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그들의 미래를 위한 중요한 기초를 마련하는 것(창 2:24)이라고 말한다. 자문해본다. 우리 사회의 다음세대를 ‘SNS가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이란 제목의 실험실에 몰아넣고 실험용 쥐를 바라보듯 어른들 스스로 묵인한 것은 아닐까.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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