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아파트 시비

이동훈 2024. 9. 28.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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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주요국의 주요 장소엔 어김없이 그 나라 대표 시인들의 시비(詩碑)가 서 있는 걸 보게 된다.

그의 유학을 도운 정지용 시인의 시비도 같은 캠퍼스에 함께 전시돼 한국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뭘 쓰든 시인의 자유지만 아파트 시비는 도시문화의 정체성을 부동산 자산에 국한하는 것 같아 갑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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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논설위원


전 세계 주요국의 주요 장소엔 어김없이 그 나라 대표 시인들의 시비(詩碑)가 서 있는 걸 보게 된다. 영국 왕 대관식이 열리는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동상과 시비가 서 있다. 한국인들에 ‘동방의 등불’로 유명한 인도의 국민 시인 타고르의 시비는 콜카타의 자다푸르 대학교에 세워져 인도인들의 민족적 자부심을 일깨운다. 각종 축제 때 그의 작품 낭독과 헌사가 이어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스페인 국민들은 페드로 살리나스의 시비가 있는 마드리드의 레티로 공원에서 그의 사랑 노래를 읊조린다.

한국에서는 주로 시인들이 태어난 고향이나 다니던 학교에 시비를 세워 문학정신을 기린다. 일제 저항시인 윤동주의 시비는 모교인 연세대는 물론 일본 유학 중 수학한 오사카의 도시샤 대학에도 있다. 그의 유학을 도운 정지용 시인의 시비도 같은 캠퍼스에 함께 전시돼 한국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전북 군산시 금강 하구에는 2007년 진포시비공원이 조성됐는데 전북 태생의 신석정, 고은 시인을 포함해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국내 시인 14명과 릴케 등 외국 시인 6명의 42점을 돌에 새겼다. 이처럼 사람들은 시비에 담긴 시를 통해 위로를 받고 휴식하며 사색한다.

그런데 최근 서울 강남에서 부동산 불패신화의 면모를 과시하듯 아파트를 찬양하는 시비가 등장했다. 한 채에 40억원 넘는 서초구 반포동 아파트 단지에 세워진 두 개의 시비로, 재건축을 기념해 2009년 세워졌다는데 한 네티즌이 소셜미디어에 올려 세간에 퍼졌다. 박모 시인이 쓴 ‘반포 래미안 퍼스티지-천 년의 보금자리’와 구모 시인이 쓴 ‘영원한 파라다이스-래미안 퍼스트지’라는 제목만 봐도 아파트 찬양시다. 이 누리꾼은 “천박하기 그지없는 탐욕의 단어들을 나열한 저 돌덩어리가 시비라니. 역겹고 부끄러운 것은 누구의 몫인가”라고 한탄한다. 뭘 쓰든 시인의 자유지만 아파트 시비는 도시문화의 정체성을 부동산 자산에 국한하는 것 같아 갑갑하다.

이동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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